"집값 오르면 괜찮아지겠지".. 최악의 시나리오
[오마이뉴스 이지영 기자]
하루도 빠짐없이 '하우스푸어'에 대한 기사가 쏟아진다. 하우스푸어의 문제가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에는 그 규모와 심각성이 지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똑똑한 생활경제' 연재에서도 " 집값 오르면 뭐해요, 빚만 더 늘었는데..."라는 기사를 통해 심리적 자산으로서 부동산의 한계와 하우스푸어의 어려움에 대해서 지적하고 내집마련의 의사결정에 신중할 것을 당부하였다.
하우스푸어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의견이 있지만 정작 지금 하우스푸어인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겠으나 그럼에도 하우스푸어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객관적으로 따져보는 것은 지금 하우스푸어가 상황을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하우스푸어를 정의해본다면 "내 집은 있지만 집 때문에 발생한 부채가 가정재무상태를 악화시켜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심지어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추가적인 부채까지 일으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상황을 다음과 같이 가정해보자.
집값이 오르면 문제가 해결될까?
앞으로 집값이 오른다면 어떻게 될까? 이건 하우스푸어에게 과연 희소식일까? 일단 지금도 집값이 비싸다는 인식 때문에 주택 거래가 안 되고 있는 상황에서 집값이 오른다면 거래 가능성은 더 낮아질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특성상,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되어 과거 2006~2007년처럼 집값도 오르고 거래도 활성화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시세차익이 생겼다고 집을 팔 수 있을까?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아마도 집을 팔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우스푸어라는 상황에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집을 팔았다면 어떨까? 그러나 나는 살 집이 필요하다. 우리 집만 오른 것이 아니기에 비슷한 수준의 집을 다시 산다면 역시나 상황은 그대로이다. 집값이 올랐지만 집을 팔든 안 팔든 간에 빚도 그대로고 우리 집은 여전히 빚으로 생활에 쪼들려야 하는 하우스푸어 신세이다.
그럼 하우스푸어에서 탈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더 오를 것이라는 욕심을 접고 과감히 집을 팔아 빚을 갚는다. 그리고 남는 돈에 맞는 집을 구해야 한다. 물론 생활조건이나 환경은 분명 이전보다 낮아질 것이다. 내 집이었면 전세로, 30평대 집이었다면 20평대로, '지하철역 도보 10분'이 마을버스를 타야만 하는 상황으로 바뀔 것이다. 결국 주거비 구조조정, 생활비 구조조정 없이는 집값이 올라도 하우스푸어에서 탈출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이라면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도 그리 다르지는 않다. 집값이 올라도 욕심 때문에 집을 팔려고 하지 않지만 떨어져도 사람들은 본전 생각에 집을 팔기 어렵다. '내가 얼마에 샀는데 손해 보고 팔 수는 없지'라고 생각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다 '어차피 집은 필요하니 그냥 내 집이라 생각하고 눌러앉아 살자'라고 자포자기하게 된다. 결국 하우스푸어의 삶은 계속 반복된다.
만약 집을 판 경우는 어떨까? 하우스푸어에서 벗어나려면 은행빚을 갚아야 한다. 빚을 갚고 나머지 돈으로 집을 얻는 것도, 집값이 오른 상황처럼 역시나 생활의 업그레이드가 아닌 '디그레이드'를 각오해야 한다. 하우스푸어라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통스럽지만 경제적 구조조정이 필수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집값이 오르거나 내리거나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 집은 그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팔기 어렵다 ▲ 그럼에도 주거비와 생활비의 구조조정 없이 하우스푸어 탈출은 불가능하다.
"아이들 위축될까봐 집 줄이는 건 포기했어요"
40평대 아파트를 보유했지만 집 담보대출 2억 원 때문에 마이너스통장만 늘어가는 한 가정을 상담한 적이 있다. 아파트 매각도 생각해봤지만 집값하락으로 매수자들은 거저 먹으려 든다며 집은 팔지 않겠다고 했다. 그럼 지금 집을 전세 주고 더 작은 평수의 전세로 옮긴 후 그 차액으로 일부 빚을 상환하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했으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물론 그 방법도 생각해봤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더 작은 집으로 이사는 걸 싫어하더라구요. 한창 예민한 때이기도 하고 아이들의 위축될 거 같아 집을 줄여 이사 가는 건 포기했어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환경과 조건을 포기하는 것은 이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말이 구조조정이지 실제로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심리적 상실감과 절망감도 무척 클 것이다. 아이들의 받을 상처까지도 생각하다 보면 나의 무능함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 같아 자괴감도 들 것이다.
자산 구조조정, 즉 집을 매각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과감히 집을 팔고 전세로 옮겼는데 내가 팔고 나니 집값이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그것이다. "그때 괜히 집 팔았어"라는 후회가 두려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않은 채 현실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빚으로 장만한 20평 집, 애초부터 10평만 내 것일 뿐
불행하지만 하우스푸어를 만족시킬 해결책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냉정하지만 이걸 먼저 인정하자. 아이들이 위축될까봐, 내가 팔면 집값이 오를까봐 갈등과 고민이 분명 많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집값이 오르건 떨어지건 간에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하우스푸어 탈출은 불가능하다.
생활비를 줄이는 노력을 넘어 자산을 매각하는 적극적인 구조조정 없이는 빚은 절대로 갚아지지 않고, 빚을 갚지 않으면 하우스푸어의 현실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빚으로 산 20평짜리 집은 10평만 내 것일 뿐 나머지 10평은 은행 것이고, 잠시 빌려 썼으나 결국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물론 팔고 싶어도 집이 안 팔린다는 고충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손해도 각오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내가 손해를 보고 집을 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하우스푸어라는 어려운 현실을 조금 더 감내하겠다 결정한 것이라 냉정하게 결론을 내려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우스푸어에게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집값 오르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지금 국내외 경제상황은 온통 빨간불이다. 여기에 불황으로 인해 수입이 줄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 내가 하우스푸어라고 생각된다면 하루라도 빨리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경제적 구조조정을 가족과 함께 심각하게 고려하고 행동에 옮길 것을 권고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지영 시민기자는 생활경제상담센터 '푸른살림'에서 교육활동가 및 생활경제상담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네이버 푸른살림 카페 : cafe.naver.com/goodsa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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