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3구 투기지역은 해제하고 DTI는 금융업계 자율에 맡겨야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국토에도 품격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품격을 높이는 수단이 토건이요, SOC 투자"라고 말했다. [김형수 기자]'토건족(土建族)'. 일본에서 건설업자·의원·관료 간에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삼각 커넥션을 지칭하는 말이다. 현 정부 들어서는 4대 강 사업,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을 비판하는 인사들이 애용했다. 뜻을 풀자면 '삽질만 좋아하는 경제판 수구꼴통'쯤 될 터이다. 경기 살리자고 토건에 돈을 쏟아붇는 건 낡은 방식이니 그 돈을 복지에 쓰는 게 국민에게도 경제에도 이롭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국토해양부는 토건족의 본진인 셈이다. 그 한복판에서 쏟아지는 공세를 막아내 온 권도엽 장관을 23일 과천 집무실에서 인터뷰했다. 그의 손에는 '방패' 대신 아이패드가 들려 있었다.
4대 강 등 주요 사업과 관련해 틈틈이 자료와 언론 보도를 챙겨보는 데 유용하게 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토건은 국토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고, 사회간접자본(SOC)은 복지의 근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비하하는 사람들은 공부를 좀 더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그의 아이패드에는 KTX 경쟁체제 도입과 관련된 자료가 떠 있었다.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 4대 강이 좀 잠잠해진다 싶으니 KTX가 논란이다. 민간 운영사를 참여시키려는 이유는 뭔가.
"과거 공기업이 독점해 온 서비스분야인 통신·전력·제철이 모두 경쟁으로 돌아섰다. 유일하게 남은 게 철도다. 철도도 이제 소비자가 골라서 탈 수 있는 시대로 가야 한다. 경쟁을 해야 요금이 내려가고, 서비스도 좋아지며, 철도 산업이 발전해 일자리가 늘어난다. 경영이 효율화되면 정부의 재정 보조 부담도 준다. 그러니 소비자, 철도산업, 정부 모두에 좋은 것이다."
-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이 크다. 큰 선거를 앞두고 추진이 되겠는가.
"수서발 부산, 목포 구간 개통이 2015년 초로 예정돼 있다. 준비 기간이 최소한 2년 반은 걸린다. 그러니 연내 누가 맡을지 확정해야 한다. 선거가 있다고 이익집단들 눈치만 보다간 포퓰리즘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국민 좋자고 하는 일인데 시기를 따질 게 뭐 있겠나."
- 반대론자들은 민영화의 폐해를 거론한다.
"이 정부에서 갑자기 추진하는 게 아니다. 국민의 정부에서 시작해 참여 정부 때 이미 로드맵이 만들어졌다. 2004년 철도산업기본계획을 만들고 철도시설공단과 철도공사를 분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인프라 건설과 관리는 국가에서 맡되 운영은 경쟁체제로 가자는 것이다. 공항 운영은 공항공사가 하지만 대한항공, 아시아나, 저가 항공사들이 경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프라의 소유구조를 바꾸거나 지분을 파는 민영화가 아니다."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제주 해군기지와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 때 결정한 것이란 얘기인가.
"그렇다."
국토부는 KTX 운영에 민간이 참여해 경쟁체제가 도입되면 요금이 20%는 내려갈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그래서 '저비용 KTX'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서울시 9호선 지하철 운영사의 요금 인상 시도와 같은 일이 KTX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토부는 이에 대해 "9호선 운임은 신고제지만 KTX는 상한제여서 맘대로 올릴 수 없다"고 반박했다.
- '토건족'이란 비아냥이 있다.
"토목·건축은 우리 국토의 품격을 높여주는 일이다. 말 그대로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기본 틀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런 걸 제대로 이해 못하고 폄훼하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라면 공부 좀 더 하시라고 말하고 싶다."
- 복지가 시대 조류가 됐다. 상대적으로 SOC 투자는 줄 수밖에 없지 않나.
"SOC는 복지의 근간이다. 하천 관리만 해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한강에서 수해 안 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과거 치수에 그만큼 투자를 해놓은 덕이다. 교통시설을 확충해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산간 지역에 살아도 긴급한 상황에서는 대형 의료기관 등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게 선진국이다. SOC 투자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히 해야 한다. 지금도 도로의 총 정체구간이 1700㎞에 달한다. 지금 복지를 늘리자고 SOC를 위축시키면 'SOC의 조로(早老) 현상'이 나타나 국가 경쟁력을 좀먹을 수 있다."
- 4대 강 사업에서 부실 공사 논란이 불거진 것은 정부가 너무 서두른 탓 아닌가.
"천천히 했다면 비용이 훨씬 더 들어갔을 것이다. 금융위기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재정투자를 늘려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전문가들이 검토해 발표했듯이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 앞으로는 활용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4대 강 사업으로 4000만 평 정도의 친수·생태 공간이 만들어졌다. 우리 국민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1인당 한 평 정도 더 마련된 거다. 이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4대 강 사업에 대한 평가도 시간이 갈수록 좋아질 거라 기대한다."
국토부가 맞닥뜨린 난제는 또 있다. 좀처럼 살아나지 않은 수도권 주택시장이다. 4대 강과 KTX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와의 싸움이고, '내부 전투'도 치열하다. 그래서 더 고전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모두 여섯 차례 대책을 내놨지만 약발이 잘 안 듣는다. 국토부와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는 다시 추가 대책을 협의하고 있다.
- 수도권 거래를 살리기 위해 강남 3구 투기지역 해제와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가 거론되는데.
"주택시장만 보면 투기지역을 해제하는 게 맞고, DTI도 금융업계에 맡겨 자율화하는 게 맞다는 게 내 소신이다. 다만 가계부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계속 논의하고 있다."
- 장관의 소신이 얼마나 반영될 것 같나.
"협의를 해봐야 한다. 앞으로는 주택 값이 폭등할 우려가 거의 없다는 게 많은 학자의 얘기다. 가격 급등기에 도입했던 정책은 정상화시켜야 한다. 또 다주택자에 대한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전·월세도 안정되고, 주거복지 수준도 올라간다. 부동산과 건설경기가 지역경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높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 장관이 생각하는 주택 가격의 이상적인 흐름은.
"길게 보면 가격이 물가보다 약간 낮게 올라가고, 소득은 그보다 빨리 늘어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조민근.최선욱.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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