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아파트 2000세대, 주인 맞기도 전에 경매 위기라는데..
분양률은 92%고속도로 IC·영어마을…과장광고로 처음부터 잡음시공사 워크아웃 들어가며 날림으로 공사 마무리 의혹
입주 시작되자 텅텅
"모델하우스와 너무 달라" 입주 미룬 계약자들계약 해제·손해배상 소송… 현재 입주율 40%도 안돼
대규모 경매사태 오나
계약자들 잔금 안 내자 시행사, PF대출 상환 못해대출연장 거부하는 은행에 계약자들 "너희도 책임" 소송
3316세대 총사업비 2조3000억원 규모의 대형 아파트가 소송과 분쟁으로 얼룩지고 있다. '유럽형 명품 단지'를 표방하며 분양률 92%를 기록한 이 아파트는 1년 전 입주가 시작됐으나 지금도 2000세대가 빈집이다. 주민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져 시행·시공사는 물론 은행 및 시청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건설사 워크아웃, 불행의 시작"
2008년 초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지구에 '하이파크시티 신동아 파밀리에' 아파트 공사가 시작됐다. 사업 주체인 시행사는 드림리츠였고 신동아건설 이 공사를 맡았다. 중대형 가구 중심으로 편성된 이 아파트의 3.3㎡(평)당 분양가는 1400만~1450만원으로 주변보다 비싼 편이었고, 2010년 말 준공이 목표였다.
이 아파트는 분양 당시부터 '잡음'이 있었다. 인근에 고속도로 IC가 들어서고 영어마을을 조성한다는 등의 분양 광고가 사실과 다르고 내용이 과장됐다는 지적이었다. 입주자 대표는 "다른 아파트에서도 생길 수 있는 민원으로 이 정도는 참을 만했다"고 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준공 6개월을 앞둔 2010년 6월 25일 벌어졌다. 신동아건설이 금융감독원 이 발표한 퇴출 업체에 포함되면서 곧바로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 상태에 들어갔다. 은행의 자금 지원이 끊기고 공사가 중단됐다. 이미 계약금(아파트값의 10%)과 중도금(60%)을 지불했던 계약자들은 속이 타들어갔다. 3개월이 흐른 뒤에야 공사가 재개됐다. 하지만 예정된 준공일을 지키지 못했고 이듬해 3월 31일이 돼서야 가까스로 임시 허가를 받았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분양 계약자들이 아파트를 살펴보니 대리석 등 건축에 사용된 각종 자재가 예전에 본 모델하우스랑 너무 달랐고 마감 공사 상태가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한 계약자는 "준공이 3개월 이상 늦어지면 계약 해제 조건이 되기 때문에 기한을 맞추려 날림 공사를 한 것"이라고 했다. 계약자들은 "엉터리 공사를 책임지고 임시 준공 허가를 취소하라"고 촛불시위까지 벌였다.
계약자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져 '투쟁'을 벌였다. 650세대는 시행사를 상대로 분양계약 해제 소송을 냈고, 700여 세대 역시 입주를 미루고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 두 그룹은 잔금(아파트값의 30%) 지급을 거부해 지금도 계약자 신분으로 있고, 1300세대는 잔금을 내고 입주자가 되었다.
◇쌓여가는 소송과 대출 연기가 새 문제로
분양계약 해제 소송은 세 번에 나눠 진행됐다. 두 번은 계약자들이 이겼고 한 번은 시행사가 이겼다. 서울중앙지법은 "계약금과 중도금을 돌려주고 위약금도 지급하라"며 계약자의 손을 들어준 반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분양계약 해제는 부당하다"며 시행사 입장에 섰다. 같은 내용을 놓고 상반된 결과가 나온 이 사건은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계약자들이 소송의 최종 승자가 되더라도 시행사로부터 돈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시행사는 자본금 3억원에 직원 7명을 둔 사실상 페이퍼컴퍼니로 아파트를 짓고 나서 남은 돈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법원은 은행에서 대출받은 중도금의 경우 채무자는 시행사가 아니라 계약자라고 판단했는데, 이 말은 계약자가 재판을 이겨도 시행사에서 중도금을 받지 못하면 그 빚은 계약자의 몫이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다른 계약자 그룹인 700여 세대는 분양 계약 자체를 무효로 해봐야 손해보는 것은 계약자라고 판단했고, 계약을 유지하되 공사 과정에서 생긴 하자와 허위 광고 등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전략을 택했다. 계약자들이 입은 피해액만큼 잔금을 깎아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작년 11월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계약자들이 잔금을 내지 않자 시행사가 은행에서 대출받은 PF(프로젝트파이낸싱) 자금을 갚지 못하게 된 것. 시행사는 3100여억원에 대한 만기 연장을 요구했는데, PF에 참여한 8개 금융기관 중 일부가 대출 연장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신동아건설의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이 대출 연장에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고 한다.
시행사 측은 "계약자들의 입주가 이뤄지면 대출금보다 훨씬 많은 자금이 들어오는데 왜 대출 연장을 해주지 않느냐"고 했다. 채권단 중 1곳만 반대해도 대출 연장은 불가능하다. 시행사가 PF 자금을 갚지 못하면 채권은행은 미분양 물량 등 아파트를 상대로 대규모 공매나 경매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소송 중인 계약자들의 아파트도 경매될 수 있는데, 막상 경매가 시작되면 아파트 가격 폭락으로 기존 입주자의 재산 피해도 피할 수 없게 된다.
◇피해 주민들 "은행과 시청도 책임져라"
계약자와 입주자들은 은행과 고양시청이 현 사태의 공동 책임이 있다고 보고 지난 30일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입주자·계약자 대표는 "아파트가 엉망이 된 데는 은행의 책임이 크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시기에 공사를 중단시켰고 이번 사태의 원인 제공자였다. 그러면서도 빠짐없이 이자를 챙겨갔다"고 했다.
여기에 워크아웃 상태에 빠진 신동아건설이 준공 전에 이미 공사비를 모두 받아갔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 계약자는 "워크아웃 상태라면 회사 사정이 뻔한 데 공사비를 미리 주면 누가 제대로 아파트를 짓겠냐"면서 "하자 보수를 요구해도 제때 해주지 않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고 했다. 시행사 측은 "공사비를 먼저 줘야 준공 기한을 맞출 수 있다는 은행 요구로 공사비를 미리 줬다"고 주장한 반면, 은행 측은 "공사비를 미리 준 적이 없다. 적법한 과정을 거쳐 공사비가 집행됐다"고 맞섰다.
계약자들은 날림 공사를 관리·감독해야 할 고양시청도 직무를 소홀히 했다고 비판했다. 고양시는 사업 허가를 내주고 시행사로부터 학교 부지, 쓰레기 집하시설, 녹지 조성 등 3000억원 규모의 기부채납을 받았는데 이 금액은 다른 사업장의 기부채납액보다 훨씬 많은 것이라고 한다. 한 계약자는 "우리가 낸 분양 대금으로 은행과 고양시, 업체가 돈파티를 벌였고, 시행사 관계자와 조합장은 뇌물 사건으로 구속됐다"며 "집 계약하고 돈만 꼬박꼬박 낸 우리만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은 은행이 PF 자금 대출 연장을 불허하고 아파트 경매에 나설 경우 대규모 실력 행사를 벌일 계획이다.
한편, 우리은행 은 "시행사가 구체적으로 돈을 언제 어떻게 갚겠다는 계획을 제시하지 않아 대출 연장을 보류하고 있다"고 밝힌 반면, 시행사는 "은행이 시공사와 짜고 최대한 이익을 가져가려고 대출 건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악조건이 겹친 아파트 분양 현장은 매우 드문데, 시간을 끌면 결국 주민들만 손해를 본다"며 "은행과 시행사, 주민, 지자체가 모여 협의점을 찾아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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