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 "인생 2모작에 들어서..이제 모내기 했을뿐"
유세 차량은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각종 기계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사우나'를 무색하게 했다. 이 덕분에 2주 남짓한 유세 기간 동안 몸무게가 4kg이나 빠졌다. 그래도 총선 실패의 경험을 딛고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재·보선이라는 행운(?)을 만난 것을 운명이라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충남 천안을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김호연 의원이다. 정치인으로선 '초짜'지만 그는 이미 유명 인사다.
한화그룹 창업자인 김종회 초대 회장이 그의 부친이고, 현재 그룹을 이끄는 김승연 회장이 맏형이다. 그 역시 한양유통 대표이사 사장(1986~92), 빙그레 대표이사 회장(1992~2008) 등을 지낸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더욱이 자본 잠식 상태에 있던 빙그레를 맡아 출마 직전인 2007년 매출액 5395억 원, 영업이익 463억 원의 탄탄한 기업으로 회생시켰다.
이른바 재벌, 흔히 말하는 '재벌 2세'가 온갖 술수와 정략이 난무한다는 정치판에 뛰어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그는 화제였다. 비록 첫 경험에서 낙선의 아픔을 겪었지만 예상을 깨고 줄곧 지역에 머무르며 목표를 이뤄냈다는 것 또한 뉴스다. 조금은 핼쑥해지고 모친을 닮아 유난히 하얀 피부도 그을렸지만 험한 항해를 마친 표정에는 어느덧 여유로움이 돌았다.
당선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우선 천안 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또 저의 당선을 위해 보이는 곳,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년 전 낙선 직후 상심이 크진 않았습니까.
끝나고 나니 '왜 이렇게 준비 없이 무모하게 뛰어들었나' 하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어쨌든 내 길이니 감수하자고 정리했죠. 이후 2년간은 오히려 전화위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지역 주민들과 살을 맞댈 수 있었고 운동이라곤 숨쉬기와 헬스클럽밖에 모르던 제가 '새마을운동'에 참여하게 됐으니까요. 지금도 농촌에선 근면·자조·협동이라는 새마을정신과 활동이 활발합니다. 2년의 시간을 정말 의미 있게 보냈습니다.
잘나가던 CEO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8대 총선에 출마했을 때도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예전부터 순수하게 '언젠간 해보겠다'는 마음이 있었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는 모습을 보고 이제는 '기업인이 나서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와 이념적으로 맞는 정권이 들어선 것도 결정에 한몫했죠. 다행히 회사도 안정권에 들어 저 없이도 잘될 것이란 판단이 섰습니다.
처음 빙그레를 맡았을 때는 어땠습니까.
언론에서 자꾸 부채비율 4000%를 이야기하는데, 출처가 어딘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자본 잠식 상태에 있는 기업의 부채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죠. 회사를 살리기 위해 정말 뼈를 깎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빙그레 모든 식구들이 고통을 짊어졌죠. 20여 년간 한 차례도 노사분규가 없었다는 것에도 자부심을 느낍니다. 인원을 줄이는 데 주력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가장 큰 문제는 성장에 집중하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전 내실 있는, 지속 가능한 경영이 우선이라고 판단했죠. 어떤 악조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 말이죠.
물론 현재 빙그레는 신성장 동력도 꾸준히 찾고 있습니다. 여건만 되면 당장이라도 뛰어들 수 있는 투자 여력이 충분한 상태죠. 지금은 전문경영인이 잘하고 있어요. 더 잘 되는 듯해요. 진작 떠날 걸 그랬나요?(웃음)
CEO 출신 정치인이 많지는 않은데요.
몇 분 계셨지만 오래 하신 분은 드물죠. 이제는 정치에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동안에는 학자·군인·법조인·언론인 등이 많았죠.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정치를 위해선 구성원도 다양해져야 합니다.
창의성·효율성·경제성 면에선 기업인이 낫지 않을까요. 이제는 고향의 발전을 위해 뼈를 묻겠다는 각오입니다. 실제 묻힐 곳도 고향밖에 없고요.
출마 후 형님과의 지분 다툼 등이 새삼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미 18년 전의 이야기인데…. 이제는 뉴스거리도 안 되는 일이죠. 저 자신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만큼 오래된 일이라, 새삼 거론되는 게 부끄러울 따름이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형제간에 송사까지 갔던 건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서로 바쁘다 보니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지금이야 여느 형제들처럼 지내죠.
당선 직후에도 전화로 "자랑스럽다. 잘 해나가길 바란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당선 이후 서울이 두 번째인데 지난번에 누님(김영혜 전 재일화재해상보험 이사회 의장)을 뵈었고, 이번엔 형님을 찾아뵌 후 내려갈 생각입니다.
감정이 풍부하고 때로 격정적이라는 평까지 듣는 형님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대기만성형'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냄비보다는 '슬로 쿠커'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진국을 우려내듯, 진가가 나오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리겠죠.
이제 인생 2모작에 들어선 입장인데, 볍씨 뿌리고 모내기했다는 느낌입니다. 정치를 끝내고 노년기가 찾아왔을 때 일도 지금부터 구상 중입니다.
재벌가 CEO라는 타이틀이 위화감을 주지는 않았습니까.
모든 일의 전제가 '재벌'이었습니다. 사실 그 부분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죠. 선천적인 경우인데도 '얼굴이 왜 이렇게 하얘'라는 말도 들었고요. 제 나름으로는 많이 탔는데도 말이죠.(웃음) 사실 빙그레는 대기업이라기보다 중견기업입니다.
하지만 회생 불능의 회사를 가치 있는 기업으로 만들었죠. 여기서 생긴 주식 지분이 제 재산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당당하고 떳떳합니다. 물려받은 건 틀림없지만, 부실한 기업을 제 힘으로 살려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특히 시장 경제에서 흠이 되는 경력은 아니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천안 유치가 최대 공약인데요.
현재 천안은 내세울만한 성장 동력이 없습니다. 다행히 세종시로 가려던 3조5000억 원 규모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수정안 부결로 원점에서 검토되고 있죠. 과학비즈니스벨트 충청권 유치는 이미 2007년 대선 공약이었습니다.
거론되는 후보지 중 하나인 대전은 이미 대덕단지가 조성돼 있고 도심도 포화 상태죠. 현실적인 공간 활용 면에서 천안만한 적지가 없습니다. 교통, 연구기관, 대학의 연구·개발 능력도 최고 수준입니다. 천안에 벨트가 조성되면 200조 원이 넘는 생산유발효과와 13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기게 됩니다.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 화두입니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상속세' 이야기를 했는데, '안티'만 늘어난 것 같습니다.(웃음) 당시 얘기는 대기업의 상속세를 줄이자는 게 아니었어요. 중소기업 문제는 한·일 무역역조와 똑같다고 봅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죠.
그동안 우리는 대기업 중심의 빠른 압축 성장 정책을 펴왔습니다. 일본을 그대로 모방한 거죠. 대기업은 궤도에 오르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반면 중소기업은 오너십이 강합니다. 상속세를 내고 나면 경영 자체가 힘들어지는 경우도 많죠. 무작정 지원하는 게 아니라 중소기업이 자생력을 갖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정치를 펼 계획입니까.
우선 확고한 국가관, 올바른 정치철학이 있어야죠. 경영학 박사이자 CEO로서의 다양한 경험과 경륜·지식 등이 의정 활동이나 지역 발전에 있어서 다른 후보와 차별화된 자산이 라고 봅니다. 어려운 기업을 회생시키면서 깨달은 가치가 '삶은 거래가 아닌 나눔'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듯이, 이제는 제가 사회에 받은 것들을 돌려줄 때라고 생각합니다. 노인·아동·여성·장애인 등 사회복지 분야에 관심이 많아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받았죠. 이제는 과거의 시혜적 복지에서 생산적 복지로 바뀌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예가 '사회적 기업'이죠. 이를 위해선 경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고 관련 창구도 일원화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김호연 의원은…
1955년생. 78년 서강대 무역학과 졸업. 85년 일본 히토쓰바시 대학·대학원 경제학 석사. 2006년 서강대 경영대학원 박사. 86년 빙그레 상무이사, 한양유통 대표이사 사장. 92년 빙그레 대표이사 회장. 백범 김구 기념사업회 부회장(백범의 손녀사위). 2010년 한나라당 천안을 국회의원(현).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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