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전되는 지표, 팍팍한 서민의 삶](4)30년 경력 택시기사의 하소연

박병률 기자 2010. 1. 2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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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밀집지역선 밤 9시만 돼도 손님 없어요"

"전에는 하루에 쌀 한 가마값은 갖고 갔지만, 요즘은 반 가마값도 못합니다."회사택시 10년, 개인택시 20년 등 30년째 서울에서 택시기사를 해온 이중훈씨(53·가명)는 요즘 경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손사래부터 쳤다. 이씨는 "커피 마시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을 아껴서 일해도 수입이 늘지 않는다"며 "그나마 나는 젊은 편이라서 낫지만 나이든 분들은 정말 수입이 적다"고 말했다. 개인택시 기사 평균 연령은 57세다.

이씨의 하루 일과는 세 차례로 나뉜다. 1차 작업시간은 오전 7시부터 정오. 점심을 먹고 잠시 눈을 붙인 뒤 오후 4시부터 9시까지가 2차 영업시간이다. 저녁은 기사식당에서 해결한다. 그리고 다시 3차. 본격적인 밤 시간대 영업이다. 이씨가 귀가하는 시간은 새벽 2시. 1, 2, 3차 영업을 합하면 하루 15시간가량 일한다. 이씨는 "하루 수입이 대략 13만원 선이지만 가스비, 식대 등을 빼면 순수입은 7만원도 채 안 된다"며 "어떤 날은 5만원도 벌지 못한다"고 말했다. 2일 일하고 1일 쉬는 개인택시 기사들의 월 근무일은 통상 20일 안팎이다. 산술적으로는 한 달 평균 순수입이 150만원 안팎인 셈이다.

근무시간은 길지만 실제 일하는 시간은 크게 줄었다. 경기악화로 주머니가 얄팍해진 고객들이 택시 이용을 기피한 데 따른 것이다. 이씨는 "요즘은 2∼3시간 동안 돌아다녀도 한 명 태우기도 힘든 때가 많다"며 "때론 연료비라도 아낄 요량으로 지하철역 인근 등지에서 마냥 기다린다"고 말했다.

사무실 밀집 지역은 경기 변동이 바로 느껴지는 곳이다. 구로나 영등포 등 중소기업들이 밀집한 곳은 손님도 없다. 이들 지역은 저녁 9시만 돼도 썰렁해진다고 이씨는 말했다.

반면 경기회복 기업들이 위치한 서초동, 양재동, 여의도 등은 비교적 나은 편이다.그는 "예년 같지는 않지만 강남 등은 그래도 좀 낫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강남 사람들도 회식을 하면 1차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해 전체적인 체감경기는 썰렁한 편이라고 귀띔했다.

택시 기본요금이 500원 오른 것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장 단거리 손님이 급감했다. 그는 "서민들에게는 500원 인상도 부담스럽지 않겠느냐"며 "망원역 인근의 경우 예전에는 출근길에 지하철역까지 마을버스 대신 택시를 타고 가려는 회사원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여기에 서울 지하철 9호선이 개통되면서 동서로 이동하는 장거리 이용자도 줄었다. 버스전용차로제가 계속 확대되고 버스의 심야운행시간이 늘어나면서 심야 손님도 예전 같지 않다. 삶이 팍팍해지면서 대리운전 기사들이 증가한 것도 택시운전사들에게는 위협 요인이 된다.

손님이 적다 보니 카드 결제로 인한 수수료까지 부담이 될 정도다. 결제금액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T머니카드 수수료는 대개 2.4% 수준이다. 150만원을 결제하면 3만6000원가량을 수수료로 낸다. 카드 사용이 손님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내면 좋겠지만 경기 여파로 전체 손님이 줄어 수수료만 떠안게 된 셈이다. 그는 "단말기 업자들만 배불리는 것 같다"며 "카드 사용을 장려할 수 있도록 수수료를 낮추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수입은 정체되거나 줄어드는데 물가인상으로 지출해야 할 항목은 매년 늘어난다. 당장 LPG 가격이 치솟으면서 연료비가 급증했다. 이씨는 "올 들어 벌써 연료비가 10% 정도 오른 것 같다"며 "특히 겨울철에는 시동을 켜놓는 시간이 많은 데다 추워서 연비가 더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나 지자체가 택시기사들의 수입증대와 처우개선에는 별 관심이 없으면서도 이래라저래라 규제는 많이 한다"며 "지자체 요구를 따르다 보면 택시외관도 엉망이 되고, 경비의 상당 부분을 택시기사들이 책임져야 하는 실정"이라고 푸념했다.

그는 "차량 할부금 등 택시 운전자치고 빚 없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개인택시 영업도 이제는 '빛 좋은 개살구' "라고 말했다.

<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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