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아파트의 화려한 반란이 시작된다?
기존 주택 거래시장에서 소형 아파트 몸값이 연일 치솟고 있다. 실제로 최근 4년간 서울지역 20평형대 미만 아파트 가격은 41.8% 급등한 반면, 40평형대는 상승폭이 절반에 불과한 20.9%에 그치며 찬밥신세로 전락했다.
이 같은 소형 쏠림현상이 심화되면서 기존 거래시장에서 '평수 넓히기'보다 신규 분양시장에서 '소형 분양'이 한동안 재태크의 대세를 이뤄왔다.
그러나 최근들어 분양시장에서 85㎡초과 중대형 아파트 선호현상이 재현되면서 대형아파트의 화려한 반란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신규 분양시장에서의 중대형 인기의 불씨가, 3년전 화려했던 기존 주택거래시장에서의 중대형 명예 회복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4년새 20평형미만 아파트, 40평형대보다 두배이상 올랐다=
지난 2007년이후 소형 아파트값 오름세는 가파르다. 은평 뉴타운 고분양가 후폭풍이 나타나면서 불안을 느낀 무주택서민들이 소형 아파트 매입에 나서면서 저가-소형 강세가 심하게 나타났다.
부동산포털 부동산1번지(www.r1.co.kr)에 따르면 서울지역에서 20평형대 미만 아파트 가격지수(재건축 제외 일반아파트)는 2009년 11월말 현재 141.86(2006년 1월 1일=100 기준)으로 상승폭이 가장 크다. 약 4년 전에 비해서 41.86% 올랐다는 얘기다. 그 다음으로 20평형대 133.31, 30평형대 126.89, 40평형대 120.90, 50평형대 117.53으로 나타났다. 아파트값 상승세는 평형이 작을수록 높아 크기와 상승률 간에는 반비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형강세, 1~2인가구 증가 & 소형주택공급부족=
소형 강세 원인은 대략 6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다.우선 1~2인 가구의 지속적인 증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현재 1~2인가구는 728만4684가구로 전체가구의 43.06%에 달한다. 이는 9년 전인 2000년(34.65%)에 비해 8.41%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2030년이 되면 1~2인가구는 전체의 51.81%로 절반을 훌쩍 뛰어넘는다.
1~2인가구의 증가는 곧바로 소형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연결시키기는 어렵더라도 소형 수요를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이어질 것이다. 인구구조상 우리나라보다 15년 정도 앞선 일본에서는 요즘 4인 가족 용 '패밀리형 주택'이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이혼자, 미혼 싱글족 등 소형 수요가 크게 늘어난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추세를 봤을 때 우리나라 역시 대형보다는 중형, 중형보다는 소형이 인기를 끌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인구로 소형 강세 현상을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바로 두번째 요인인 공급부족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1번지에 따르면 2000년만 해도 수도권에서 20평형대 이하 아파트는 6만9731가구가 신규로 입주를 하여, 40평형 이상의 대형 입주물량(3만660가구)의 2배를 넘었다. 이러한 추세는 2006년까지 이어졌다. 이러다보니 대형아파트는 희소가치가 부각되는 데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까지 겹쳐 인기가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2007년부터 역전돼 오히려 소형 희소가치가 커졌다. 그 해부터 2009년까지 소형 입주물량보다 대형 입주물량이 훨씬 많아진 것이다.
2009년 20평형대 아파트 입주물량은 1만7650가구로 40평형대 이상의 대형(3만5274가구)의 절반에 불과하다. 건설업체들이 소형 아파트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급을 기피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경우도 소형공급 부족 현상을 빚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서울지역 공급물량 27만2531가구 중 60㎡이하는 4만 8079가구(17.7%), 85㎡ 이하는 3만8155가구(14.0%)로 전체의 절반이 되지 않았으며 85㎡ 초과가 68%에 달했다.
▶경기불황도 소형쏠림 가속화=
뉴타운과 재개발 이주수요도 소형 강세에 한몫하고 있다. 최근 들어 뉴타운, 재개발 철거가 본격화한 것도 소형 수요를 늘린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기에다 소형 아파트 대체재인 다세대, 다가구주택, 오피스텔의 위축도 소형아파트의 몸값을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지난해와 올해의 경우 주택소비 패턴도 달라졌다. 경기불황일수록 '실속소비' 성향이 강한데 이번에도 소형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제도가 2010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폐지된 것도 소형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부동산시장에서는 거래활성화를 통한 시장 시스템 정상화에 정책의 초점을 두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과거 노무현정부의 유산인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1가구 2주택자 50%, 3주택자 60%)를 그대로 유지하기 힘들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다주택자에 대해 불이익을 주더라도 노무현 정부 때처럼 '융단 폭격식 벌칙'을 주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대치동의 한 중개업자는 "이런 점 때문에 최근 '똘똘한 주택 한채 갖기' 움직임이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대형의 반란은 가능할까=
1인당 주택연면적으로 볼 때 한국은 2005년 기준으로 22.8㎡다. 7평에 약간 못 미치는 수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선진국의 60% 수준에 불과하고, 좁게 산다는 일본의 30.7㎡의 74% 정도에 그친다.
심지어 미국에 비해서는 41% 가량의 면적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서 1인당 주택연면적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소득이 늘어나면서 좀 더 넓은 공간을 찾는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이른바 '쌍봉세대'인 40~50대 인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40~50대는 자녀들이 커가고 소득도 늘면서 집을 넓히려는 욕구가 왕성할 시기다. 때문에 이들이 중대형 아파트의 핵심 수요층이 될 수 있다. 통계청 추계인구에 따르면 전국의 40~50대 인구는 오는 2016년 1635만명으로 정점을 이룰 전망이다.
더욱이 수도권의 경우에는 882만명을 기록하는 2022년에 최고점을 이룬다. 전국의 40~50대 인구 정점보다는 6년 정도 늦어진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지금은 중대형 수요가 위축돼 있지만 앞으로 언제든지 시장 주도세력으로 떠오를 수 있다.
인구구조가 고령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대형주택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그럴 단계는 아니라는 분석도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집을 줄이는 시기가 60대 중반으로 선진국에 비해 10년 정도 늦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베이비부머의 시작인 1955년생들이 올해부터 본격 은퇴를 한다고 하지만, 아직 대형아파트 처분 붐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가격도 주요 변수다. 향후에 소형 아파트 가치가 아무리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가격이 비싸다면 메리트가 없다.박원갑 부동산1번지 대표는 "최근 소형아파트 가격 급등으로 수도권에서 대형아파트가 훨씬 더 가격경쟁력이 있는 지역도 많다"며 "실물경기도 회복되고 있어 대형아파트 수요가 살아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 대표는 특히 "중대형의 가격메리트가 살아나고 있는 시점에서, 집이 좁아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한다면 오히려 지금이 중대형을 싸게 마련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분양시장에선, 명예회복 나선 중대형=
이처럼 기존 주택 거래시장에서는 집값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전용 85㎡초과 중대형 아파트가, 유독 올해 신규 분양시장에서는 성적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
부동산포털 닥터아파트(www.DrApt.com)에 따르면 올들어 수도권 중대형 분양아파트(주상복합 포함) 3만3544가구 가운에 53%인 1만7682가구가 1순위 마감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도 동일평형 1순위 마감비율(13%, 3664가구)과 비교했을 때 4배 증가한 수치다.
반면 중소형 아파트(전용면적 85㎡이하) 1순위 마감비율은 전년(46%)보다 10%포인트 하락한 36%를 기록하며 선전한 중대형 아파트와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중대형 아파트는 중소형 아파트에 비해 가점 커트라인이 낮고 추첨제 물량이 많아 투자수요가 많은데, 올해 양도세 감면을 비롯해 전매제한 완화 등 투자여건이 좋아진데다가 올해 분양시장을 주름잡았던 인천 청라지구와 송도국제도시, 광교신도시 등 유망지역에서 물량이 많이 공급돼 1순위 마감비율이 상승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용면적 85㎡이하의 중소형 아파트는 분양물량 폭탄으로 미달사태를 빚은 김포 한강신도시, 영종하늘도시 등에 많은 물량이 포진되면서 지난해보다 1순위 마감비율이 하락한 모습을 보였다.
이영진 닥터아파트 리서치연구소장은 "DTI 규제 비적용, 양도세 감면 혜택, 중소형보다는 큰 프리미엄에 대한 기대 등으로 중대형아파트에 투자자들이 몰렸다"고 분석했다.
강주남 기자/namkang@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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