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골 검사 윤석열, 어쩌다 이렇게 됐나 [아는 척 하기]

조회 9,8462025. 4. 8. 수정

물러난 윤석열
강골 검사에서
파면에 이르기까지

  • 헌법재판소가 8대 0 만장일치로 파면을 결정.
  • 대통령의 상징인 봉황기가 내려지면서, 尹 임기 마감.

통치자의 상징 ‘봉황.’ 상서롭고 고귀한 뜻을 지닌 상상의 새로, 수컷을 봉, 암컷을 황이라고 구분하는데요. 고려는 물론 조선,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 대통령의 상징이 봉황입니다.

과거엔 수컷 봉과 암컷 황을 약간 다르게 그려 한 쌍의 조화를 나타냈지만, 지금은 좌우 대칭으로 통일하였는데요. 한 쌍으로 음양 조화의 의미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으나, 상징의 명확성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봉황 문양이 대통령 상징으로 규정된 것은 박정희 정부 시기인 1967년인데요. 당시 정부는 ‘봉황 두 마리가 마주 서 있고 중앙에 무궁화를 배치한 문양’을 대통령 표장으로 정식 채택했습니다.

1967년 1월 청와대에 처음 봉황기가 게양되었고, 이후 역대 대통령의 임기 동안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 전용 차량, 전용기 등에 항상 태극기와 함께 봉황기를 게양하도록 했습니다.

대통령 재임 중에는 봉황기가 상시 게양돼 국가원수가 건재함을 나타내는 겁니다.

하지만 4일 오전 11시 41분 용산 대통령실 정문 앞. 태극기와 나란히 걸려 있던 봉황기가 내려졌습니다. 임기 종료나 궐위 시에는 이 깃발을 하강함으로써 대통령 직무 공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데요.

청와대에 있던 봉황기가 용산 대통령실로 옮겨진 지 1,061일 만에 하기한 겁니다. 4일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명 만장일치로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 뒤, 19분 만이었죠.

용산 시대 열었던 尹
임기 절반만 채웠다尹

강골 검사 윤석열.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 윤석열은 국정감사에 나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윗선의 수사 개입 의혹을 폭로하면서, 그는 스타 검사로 발돋움합니다. 동시에 박근혜 정부를 때리는 발언을 하면서 그는 대구고검으로 좌천되죠.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뒤, 특검 수사팀장으로 발탁되면서 그는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이후 날개 달린 듯한 모습이었는데요.

문재인 전 대통령은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깜짝 발표’가 얼마나 놀랐던지, 당시 청와대 기자실에서는 탄성이 나왔다고 하는데요.

서울중앙지검장 인사를 청와대가 직접했다는 점과 전임이었던 이영렬 전 검사장에 비해 다섯 기수나 아래인 ‘기수 파괴 인사’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보수 진영에서는 트라우마와 같은 ‘적폐청산’에 일등 공신이 바로 윤석열이었습니다. <중앙일보> 김원일 논설위원은 “(당시 수사를 보면) 보수 세력 입장에선 치를 떨 만했다”고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19년 7월 윤석열은 검찰총장이 되는데요. 문재인 전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하게 임해 달라”고 주문합니다.

그런데 정말 윤석열이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바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 칼날이 예리하게 들어가자, 진보 진영으로부터 ‘공공의 적’으로 규정되죠. 특히 문재인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수사가 본격화되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가게 됩니다.

보수 진영 입장에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의 말이 관통되기도 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신엔 희생이 따르는 법입니다. 일명 ‘윤석열 사단’이라고 불리는 인사는 대부분 좌천되며 윤석열은 ‘식물 총장’으로 평가됐는데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후임이었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검찰총장 최초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며, 수사지휘권이 박탈되기도 했습니다.

윤석열은 그 당시를 “손발을 다 잘라 (참모들을) 지방에 날렸다”며 상당히 괴로웠다고 토로한 바 있죠.

2020년 10월 완전히 갈라선 민주당과 윤석열. 민주당은 국정감사에 참석한 윤석열에게 “자세 똑바로 하라” “답변을 짧게 하라”며 강하게 질타합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의 정의는 선택적 정의”라고 외치는데요. 그러자 윤석열은 “과거엔 저에게 안 그랬지 않느냐”고 맞받았습니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수사 당시에는 환영받았던 윤석열. 그런데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선거개입 의혹에 수사 나서자 달라진 민주당의 행태를 꼬집은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반문(반 문재인)의 중심’이 됐습니다. 그리고 때릴수록 강해졌는데요. 그래서 그의 대선 구호가 “국민이 부른 후보”로 지어진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당시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검수완박’을 추진하자, 그는 검찰총장직을 내려놓게 되는데요. 3개월 뒤 윤석열은 대선 출마를 선언합니다.

초스피드 정계 입문이었는데요. 2022년 3월 제20대 대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윤석열은 대통령에 당선돼, 정치 참여 8개월 만에 대한민국 최고 권력가로 올라서게 됩니다.

대통령실

취임과 동시에 파격의 연속이었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기며 ‘출퇴근 대통령’이 됐고, 매일 출근일 도어스테핑을 열어 대통령의 입장을 들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운도 따랐습니다. 취임 열흘 만에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방문 일정이 잡혀, 곧바로 한미 정상회담을 열 수 있었고요. 지방선거에서는 광역단체장 17곳 중 13곳에서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하지만 봄날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갈등으로, 사실상 ‘이준석 축출’로 비화됐고 지지율은 그야말로 곤두박질쳤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장모 문제,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은 임기 내내 그의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바이든-날리면’ 발언 논란과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이태원 사고, 채 상병 해병대원 순직 사고, 명태균 의혹 등으로 혼란에 빠지죠.

특히 임기 내내 여소야대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꿈꿨던 주요 정책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임기 첫해, 의례적으로 협조해 주던 ‘정부조직법’ 조차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했는데요. 이에 ‘여성가족부 해체’를 외쳤던 그는 탄핵당하는 날까지도 끝내 해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윤석열은 ‘반국가세력’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습니다. 사실상 민주당을 두고 한 발언이었는데요. 사실상 야당을 협치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의중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총선에서 대패하며 처음으로 야당 대표를 만나는 영수회담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후 야당과의 대화는 사실상 없었습니다. 정치가 극단으로 치닫게 된 기점이었죠.

야당은 탄핵소추안, 특검법을 계속해서 강행했고, 윤석열은 거부권을 연달아 행사하면서 정국이 ‘꽉’ 막히게 됩니다.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서로가 ‘남 탓’하고 있죠.

결정적으로 지난해 국회 예산 심의에서, 야당은 대규모 감액을 결단합니다. 반대로 윤석열은 관례로 자리잡힌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과 국회 개원식에 불참하는데요.

대통령과 야당의 갈등이 그야말로 극단으로 치닫게 된 겁니다.

이때 김건희 여사 리스크가 계속해서 커지며, 윤석열을 향한 특검법 통과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여당 내에서도 이탈표가 점점 나왔기 때문입니다.

수세에 몰린 윤석열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이를 두고 <이데일리>는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고, <매일경제>는 “법 테두리를 벗어난 무모한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은 비상계엄이 의회 폭거를 알릴 ‘대국민 호소’였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은 ‘경고성’이라고 했습니다.

야당의 줄탄핵과 예산 감액, 특검 추진 등이 합법이라면, 비상계엄도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겁니다.

그는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울 때마다 정무적인 대처보다 ‘정면 돌파’로 이겨내왔는데요. 그의 거침없는 판단이 ‘비상계엄’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승부는 ‘파면’으로 끝나게 됐습니다.

임기 동안 한·미·일 외교 강화 행보를 보이면서, 미국과 핵 문제를 다루는 양자 협의체인 핵협의그룹(NCG)을 출범시켰고요. 한일 정상의 셔틀 외교를 복원했습니다.

‘노조 회계 결산 공시’ 등 노동 개혁 일부를 성공시켰으며, 문재인 정부가 백지화시킨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했고 지난해 7월에는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선·방산 수출 확대를 외치며 트럼프 정부와의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형님 정치’로 정면 돌파 스타일은 독선으로 비화됐고, 비상계엄 선포로 마지막 반전을 노렸던 것은 파면으로 종지부를 찍게 됐습니다.

대통령 윤석열. 이제는 전 대통령이 됐죠.

그는 1,060일 만에 대통령 임기를 마무리했습니다. 결국 임기 반환점을 갓 넘긴 시점에서 직무가 정지됐고, 이후 111일 만에 대통령직에 파면됐습니다.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큰 영광이었다"며 "부족한 저를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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