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우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사연 많고 기록도 많고 언급할 것이 너무 많다. 그런데 취재원으로 최형우는 그렇게 매력적인 선수는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선수인데 지나치게 담백하다. 어떤 기록을 세워도 크게 기뻐하지 않는다. “하다 보니 됐다”가 최형우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목표는 늘 없다고 말하는 선수이다. 그런데 그게 진심이다.
뻔한 질문, 아마추어 같은 질문을 했다가는 역으로 질문을 받을 수 있다. 잘 준비해서 질문을 해야 하는 ‘프로’ 선수다.
미사여구나 과장도 없다. 뭔가를 그럴듯하게 써보려 해도 최형우는 그럴 수 없는 선수다. 야구는 낭만인데 인터뷰는 현실이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최형우와 이런저런 인생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다.
스프링캠프가 그 자리다.
선수와 기자를 떠나, 현장에서 같이 나이 먹는 동료의 느낌으로 나누는 대화라고 할까?
어바인 캠프에서도 최형우와 나란히 앉아 야구 이야기를 했다가, 인생 이야기도 했다가 그랬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최형우와의 캠프 만담은 2020년 플로리다 포트마이어스에서였다.
평소에는 물어도 ‘목표 없음’인데, 플로리다의 기분 절로 좋아지는 날씨의 힘이었는지 한참 이야기를 하던 최형우가 ‘목표’라는 단어를 이야기했다.
‘100억 사나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2017년 고향팀으로 왔던 최형우. 이 해는 그의 FA 마지막 시즌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나이로 38살이었던 최형우는 “42살까지 야구를 하겠다”며 웃었다. 정말 웃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한 전제조건은 있었다. ‘최형우답게’.
“내가 야구를 빨리 시작했으면 뭔가 기록을 갈아치우고 남기고 싶은 게 있겠지만, 야구를 늦게 시작해서 그런 것은 없다. 42살까지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욕심을 내서 더 잘하겠다 이런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할 만큼 열심히 해왔다. 더 오래 야구 잘하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지만 만약 그렇게 안 되더라도 충분히 만족한다. 나는 최선을 다해왔다. 야구 인생을 충분히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들하고 눈치 안 보고 야구를 해왔다. 인터뷰에서도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지내서 후회는 없다. 만약 내가 실력이 안 되거나 팀에서 밑에 선수들을 키워야 한다고 한다면 바로 다음 날 은퇴를 발표할 것 같다.”
그날 그 대화 이후 ‘42살’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깊이 박혔다. 최형우를 볼 때면 42가 생각났다. 워낙에 건강하고 꾸준한 최형우였기에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40대의 벽이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 대화를 나눴던 당시 나이 기준으로 하면 최형우는 올해 43이다. 목표를 이루고도 1년을 넘었다.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올해는 조금 다르겠지? 올해는? 올해는?? 그렇게 흘러온 5년. 최형우는 여전히 최형우다.
“뭐 다른 건 없고 후배들하고 더 많이 재미있게 가을 야구를 하고 싶다”던 최형우는 지난해 정말 재미있게 야구를 했다. 열심히 후배들 끌고 가면서 6번째 우승 반지를 꼈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사실 더 최형우를 의심(?)했다.
“어디 부러지지 않은 이상 뛴다”던 최형우가 정말 부러져버렸기 때문이다.
2023년 9월 26일 KT와의 홈경기에서 최형우는 1루로 전력 질주를 하다가 1루수 발에 걸려 넘어졌다. 최형우가 앰뷸런스에 오르는 것을 보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큰 게 왔구나. 결과는 좌측 쇄골 분쇄골절 및 견쇄관절 손상이었다.
골절 순간 최형우는 ‘끝’을 생각했다. 넘어지면서 최형우 귀에 선명하게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야구가 아니라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넘어지는 순간 으드득하면서 뼈 소리가 크게 났다. 소리를 듣고 내 인생이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했다.”
강했던 최형우가 부러졌다. 자신도 처음 겪는 상황, 최형우는 관람자로 그라운드를 보면서 또 다른 야구를 만났다.
“병원에서 TV와 대화를 하고 있더라”면서 최형우는 팬심으로 팀을 지켜봤다.
KIA가 지면 짜증 나는 밤을 보냈고, 온갖 소리를 하면서 야구를 보다가도 승리로 경기가 끝나면 세상 행복했다.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응원해 주는 이들의 마음도 느꼈다.
그러면서도 큰 부상이었기에 걱정은 했다.
지켜보는 이들의 시선도 그랬지만, 걱정이 무안할 정도로 지난해 최형우는 “나 최형우야”를 보여줬다.
올해도 최형우는 KIA의 4번 타자다.
팀 노히트노런 패를 당할 뻔한 16일 KT전의 유일한 안타, 최형우가 만들었다. 1할, 2할 타자로 라인업이 구성돼 버린 현재 최형우는 17경기에서 0.317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KIA의 나 홀로 3할 타자다. 그라운드도 벌써 2번 돌았다.
다른 시즌이지만 최형우는 똑같다.
“올해 똑같다. 완전히 똑같다. 딱히 막 좋다 이런 것은 모르겠다. 예전에는 초반에 안 좋기는 했는데 최근에는 나이 먹고 초반이 괜찮다. 올해는 3할을 치고 있는데 타점은 적다. 지난해는 2할 후반 중반을 쳤는데 타점이 많았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수치가 낮아도 중요할 때 쳐서 임팩트가 있거나 그런 식으로 출발이 계속 나쁘지는 않았다. 굳이 뭐 바꾼 것은 없다.”
바꾼 것은 없지만 세월이 주는 여유가 초반 흐름을 바꿨다.
“젊었을 때는 초반에 항상 걱정이 있었다. 하도 초반이 안 좋으니까. 그런데 나이를 먹으니까 그전보다는 편하게 시작하는 것 같다. 괜찮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만족은 아니다. MVP급 기록을 내면서 한 달이라도 씹어먹으면 이해를 하겠는데, 이게 좋으면 다른 게 떨어지고, 그렇게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지금 타점을 10개도 못 올리고 있다. 4번 타자로 그게 좋은 건 아니다. 팀 상황상 주자가 없다고 해도 4번 타자라면 홈런을 쳐서라도 타점을 내야 한다. 그게 중심타선이다.”
만족 없는 최형우지만 그는 43세 3할 4번 타자다.
이 놀라운 수치의 비결은 늘 자신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에 담겨있다. “부러지지 않는 이상 뛴다.”
최형우가 후배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부상이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도 부상 앞에서는 부질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 아프니까 뭐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을 쑤든 잘하든 일단 아프지 않아야 뭐든 할 수 있다. 나나 (강)민호가 있으니까 애들은 40 넘어서도 야구를 하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런 선배가 많지 않았다. 선례가 많지 않으니까 39, 40이 됐을 때 ‘진짜 많이 했다’, ‘너무 고생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많은 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있는 최형우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베테랑 후배들을 위한 길도 계속 닦아가고 있다.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을 길을 오늘도 걸어가고 있는 최형우. 언제쯤 이 길의 끝에 이르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최형우의 지금, 오늘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상대팀한테 두려움을 줄 수 없고, 편한 상대가 되는 순간 그만해야 한다. 지금은 그래도 ‘껄끄러운데’ 이런 느낌이 있지 않을까? 아직도 상대 투수들이 나를 조금이라도 무서워하거나 두려운 게 있으면 아직까지 괜찮은 것이다. 성공한 것이다.”
후배들은 최형우의 존재를 여전히 실감한다.
콜업 첫 경기에서 홈런을 터트렸던 오선우도 최형우의 힘을 느꼈다.
“느낌이 형우 선배님이 나오셨을 때는 세게 투구를 하고, 내가 나왔을 때는 쓱쓱 맞춰 잡으려고 했다. 그래서 바로 승부 들어오겠다 생각을 하고 과감하게 돌리려고 했다.”
상대에게는 여전히 전력을 다해야 하는 4번 타자 최형우다.
박수칠 때 떠나겠다는 최형우지만 여전히 박수받으면서 타석에 선다.
그는 언제든 수비 나갈 준비가 돼 있는 외야수이기도 하다.
수비 집중하느라 공격 생각을 못 할 정도로 긴장은 되지만 글러브 끼고 달리는 게 재미있는 최형우다.
내년 이맘때 나는 최형우의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을까?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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