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동성애자인 걸 모르고 결혼한 여성의 최후
위대한 음악가 차이콥스키의 아내 안토니나 입장에서 쓴 슬픈 일기장
영화 <차이콥스키의 아내>
영화는 콜레라로 죽은 차이콥스키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남편의 사랑을 한 번도 받지 못한 안토니나의 병적인 망상은 잦은 환상을 부르는데, 누워 있는 시체가 일어나 안토니나를 보고 혐오하는 상황을 먼저 보여준다. 이때부터 영화는 짧은 결혼 생활 동안 어떤 경멸을 당했는지, 그가 죽을 때까지 곁을 주지 않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추문을 덮기 위해 위선으로 가득한 결혼 후 별거 요구, 아내 안토니나까지 미치게 만들어버린 장본인이 바로 영화 속에서는 차이콥스키라고 가리킨다. 누구의 입장에서 서술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이 흥미롭다.
안토니나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아내가 되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밀어붙였다. 까칠하고 예민하며 신경질적인 데다가 나이도 많을뿐더러, 평생 어떤 여자도 사랑해 본 적 없다는 고백을 그저 음악만 아는 숙맥으로 치부했던 게 화근이었다. 형제애나 담담한 사랑을 원한다면 결혼하겠다고 했는데, 열심히 노력하면 그가 자신을 사랑하게 될 거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결혼식은 장례식 같았으며 아름다운 신부를 하객과 가족은 왕따 취급했다. 모두가 아는 비밀을 혼자만 모르는 바보는 첫날밤을 치르지도 못하고 소박맞는다. 이후 신경쇠약을 핑계로 파리로 도망가 버린 남편의 빈자리를 시댁 식구들과 지내며 채워나가던 중 시누이 사샤에게 남편의 비밀을 듣게 되고 충격에 휩싸인다.
죽어서도 차이콥스키의 아내로 남고 싶어
차이콥스키는 이혼을 원했지만 끝까지 그의 아내가 되고 싶었던 안토니나는 장례식장에 나타나 공식적인 ‘아내’임을 공표한다. 1876년 결혼해 1877년 차이콥스키와 헤어진 후 다시는 보지 못했으나. 영화 속의 안토니나는 상상을 나래를 펴 남편과 자주 재회한다. 죽은 남편 앞에 나타나 기여고 아내임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집착은 기구한 운명 앞에 사라져간 한 여인의 안타까운 삶을 되짚는다. 그녀는 결국 1917년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도시 소요로 인해 며칠 후 암 매장되었다. 살면서도 사랑을 갈구했고, 죽어서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19세기 러시아는 여성의 권리와 자유가 억압당하던 시절이었다. 이혼을 위해서는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어야 했다. 안토니나는 16년의 결혼생활 동안 외로움, 환멸, 배신감을 느끼면서 서서히 시들어갔다. 영화는 철저히 안토니나의 일기, 서신, 메모 등 기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그녀의 시선에서 써 내려간 차이콥스키는 위대한 종교와도 같았다. 따라서 차이콥스키의 입장은 배제된다. 철저히 안토니나의 입장에서만 담아냈다.
태양을 숭배한 대가의 처참함을 몸소 보여준다. 태양에 다가간 이카로스의 비극이 떠오른다. 안토니나의 죄가 뭐냐고 묻는다면 영원한 사랑을 꿈꾼 게 아닐까. 맹목적인 사랑이 만든 욕망, 집착, 광기의 비애, 차이콥스키의 아내란 타이틀에 갇힌 여성의 슬픔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동성애 보다 더한 능멸과 차별의 대상이었던 여성이란 신분과 사회적 폭력이 확연히 드러난다.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레토>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스튜던트>(2016)로 처음 공식 초청된 이후 <레토>(2018), <페트로프의 감기>(2021), <차이콥스키의 아내>(2022), 올해 <리모노프: 더 발라드>까지 칸영화제 경쟁 부분에 4회 연속 공식 초청받았다.
글: 장혜령
- 감독
- 출연
- 나탈리야 파블렌코바,알렉산드르 고르칠린,바르바라 시미코바,블라디미르 미슈코프,미론 페도로프,안드레이 부르코프스키,율리야 아우크,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일리야 스튜어트,무라드 오스만,파벨 부랴,마이크 굿리지,다닐 오를로프,블라디슬라프 오펠리안츠,유리 카리흐
- 평점
- 3.31
damovie2019@gmail.com(오타 신고/제보 및 보도자료)
저작권자 ⓒ 필 더 무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