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을 중시하다 - 쉐보레 크루즈 시승기
쉐보레가 더 넓어진 실내와 효율성을 높인 엔진, 향상된 주행성능의 2세대 크루즈를 선보였다. 새로운 크루즈의 출시와 함께 서울에서 중미산 천문대까지의 시승을 통해 8년만에 풀모델 체인지된 크루즈를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그간 한국지엠이 임팔라, 말리부 등을 통해 보여주었던 세련된 주행성능, 파워트레인의 장점을 이어가면서 ‘달리기 만큼은 자신있다’는 그들의 주장을 증명했다. 부족한 편의장비는 경쟁모델들과의 비교에서 단점으로 지적된다.
지난 2015년 6월 세계시장에 처음으로 공개된 신형 크루즈는 앞서 말한대로 8년이라는 오랜 시간 만에 출시된 신형 모델이다. 하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다소 실망감을 안기고 있다. 출시해인 2015년 미국시장에서 226,602대가 판매된 신형 크루즈는 2016년 188,876대가 판매되어 17% 판매가 감소했다. 올 1월 19,949대가 판매되며 전년 동월대비 (17,324대) 판매가 증가해 세단 부분 판매 4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연간 판매에 있어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을 보였다. 참고로 현대 아반떼 또한 지난해 미국시장에서 208,319대가 판매되어 전년대비 14% 감소했다. 쉐보레의 가장 큰 판매시장이 된 중국의 경우도 2015년 246,088대에서 2016년 189,106대로 판매가 감소했다. 신차효과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다른 시장에 비해 한발 늦게 출시된 한국시장에서는 다른 시장에서의 소비자 반응과 함께 국내 도로 사정에 맞게 새로운 설정이 적용된 점이 눈길을 끈다. 그간의 소비자 피드백을 반영해 국내시장에서는 다른 시장과는 다른 소비자 반응을 끌어내겠다는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경쟁 모델과의 차별화를 위해 랙 방식의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R-EPS), 74.6%의 초고장력 및 고장력 강판적용과 함께 오히려 110kg의 중량 감소 등 기본기를 강화하는데 더욱 중점을 두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자동차의 기본기에 대한 투자는 칭찬받을 일이다. 지난 해 말리부의 성공적인 런칭은 바로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상품성을 높인 부분을 소비자들이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은 신형 크루즈를 국내에 출시하면서 ‘가격에 부합하는 상품성’이라는 말로 크루즈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국내 시장에 출시되면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가격이었다. 경쟁 모델인 현대 아반떼의 가격대는 가솔린엔진 자동변속기 기준 1560~2165만원, 반면 크루즈의 국내 판매가격은 1890~2478만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모델에 비해 편의장비나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한정적이라는 점은 안타까운 점이다. 아반떼의 경우 최근 1670만원의 밸류 플러스 트림을 통해 2천만원대에서 기대할 수 있는 옵션을 기본 탑재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크루즈를 보며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제품의 성능과 옵션의 우열을 경쟁 모델들과 조목조목 비교해 가며 제품을 기획하는 판매자들과는 달리 소비자들에게는 가격이 그 차의 가치를 보여주는 잣대이다. 제품의 품질을 끌어 올리기 위한 투자로 인해 가격 상승을 피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지만 받아들이기 쉽지않은 부분이다. 지갑을 열어야 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고심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 자동차는 개인의 선호 취향이 극명하게 반영되는 제품이다. 특히, 눈으로 바라볼때와 직접 운전을 해본 후의 인식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한국지엠은 바로 이러한 소비자들을 타겟으로 완성도를 높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크루즈의 달라진 가치는 확인할 수 있는 첫 번째 변화는 바로 파워트레인이다. 153마력의 1.4L DOHC VVT 직분사 터보차저 엔진은 다운사이징을 통해 연비 효율은 높이면서도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를 향상시킨 점이 특징이다. (최고출력 153마력, 최대토크 24.5kgm) 기존 1.4리터 엔진의 토크는 20.5kgm. 24.5kgm로 대폭 향상된 최대 토크는 2,000~4,000rpm에서 발생되는 일반 주행 영역의 성능을 더욱 향상시켰다.
독일 오펠이 개발을 주도한 새로운 아키텍처를 통해 무게를 120킬로그램 감소시킨 신형 크루즈는 74.6%의 광범위한 부분에 초고장력과 고장력 강판 적용해 차체 강성을 높이고 있다. 알루미늄 충격 흡수 범퍼시스템과 차량 사이드 측면의 경우도 충격이 분산되도록 프레임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후면부의 경우도 연료탱크, 베터리 보호를 위해 고장력 강판 범위를 확대 적용했다. 기존 모델에 비해 차체 강성을 27% 증대 시켰다는 설명이다. 0-100km/h 가속은 8 초대. 배기량을 고려한다면 일반적인 소비자들에게는 충분히 만족감을 줄만 한 수치이다.
향상된 엔진 성능과 함께 효율성 또한 높아졌다. 기본으로 장착된 스탑/스타트 기능과 함께 보령제 전자제어식 6단 하이드라매틱 자동변속기를 통해 복합연비 13.5 km/l를 기록한다. 전자식 파워스티어링은 상위 등급 자동차에 적용되는 R-EPS 방식을 적용해 속도에 따라 스티어링의 반응속도를 달리하고 있다. 올해 안에 출시될 예정인 디젤 모델의 경우 더욱 효율성이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100kg 이상의 경량화를 실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모델에 비해 크기는 더욱 커졌다. 휠베이스는 이전 세대의 2,685mm에서 2,700mm로 더욱 길어졌다. 전장도 4,597mm에서 4,666mm로 확대되었지만, 전고는 오히려 낮아졌다. 차량의 디자인과 공력 계수를 낮추기 위한 변화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신형 크루즈의 경우 매끄러운 곡선을 통해 차량의 공기 저항 계수를 0.29으로 낮출 수 있었다고 한다. 실내 공간에 관해서는 좋은 소식과 좋지 않은 소식이 있다. 뒷좌석 레그룸은 899mm에서 917mm로 넓어졌지만, 헤드룸은 앞좌석 뒷좌석 모두 13mm 이상 낮아졌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중미산 천문대까지의 코스는 고속도로와 와인딩로드를 함께 시험해 볼 수 있는 다채로운 도로 환경을 보여준다. 특히 향상된 차체 강성과 파워트레인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코스이기도 하다.
먼저 운전에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넉넉한 토크와 정숙성이 눈에 띈다. 실제 주행시의 소음은로드 노이즈를 포함하여 상당히 억제되어있다. 앞차를 추월하기 위한 가속 성능 또한 만족스럽다. 전반적으로 운전자체를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스티어링의 경우 노면 상황에 대한 피드백은 다소 부족하지만 적절한 무게감을 전해주고 있다. r-eps 타입의 전자식 차속 감응형 스티어링 시스템은 예리한 조향성능 만들어 내는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제조사의 설명처럼 스포티한 성능이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모델은 아니다. 전체적인 균형감, 동력성능과 조향능력, 효율성 등을 모두 이전 모델보다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고 보는게 맞겠다.
노면의 충격을 잘 억제 해주고, 와인딩 로드에서도 좌우롤이 거의 없다는 점은 향상된 차체 강성에 기인한다. 확실히 한국지엠의 설명처럼 즐거운 주행을 이어갈 수 있다. 다만, 엔진회전수에 따른 변속 타이밍이 다소 늦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해 나무랄 데 없는 주행성에 종종 옥의 티가 되기도 했다.
실내에는 7인치 터치 스크린 디스플레이와 함께 애플 카플레이 지원, 휴대폰 무선 충전 기능 등의 편의 장비들이 마련되어 있다. 새로운 안전 기능으로 측면 차량 감지 경보 (SBZA), 리어 크로스 트래픽 경보 (RCTA), 레인 키핑 어시스트 (LKA), 전방 충돌 경보 (FCA) 등의 안전시스템이 도입되어 있다. 미국 사양(10개의 에어백)과는 달리 6개의 에어백이 탑재된 부분과 경쟁모델들에 부족한 편의장비는 크루즈의 가격경쟁력을 말할 때 지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최근 GM이 한국지엠을 통해 국내 자동차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애초 아시아의 전초기지로서 한국지엠을 내세웠지만, 이제 300~500만대 규모로 성장한 중국시장에 밀려 더 이상 한국 시장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는다. GM에 한국GM을 유지하는 것은 유럽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가 철수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이마저, 오펠 브랜드가 유럽시장에서 선전하면서 한국의 유럽 전략 시장 의미도 퇴색된 만큼 한국지엠이 GM에게 있어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 신형 크루즈를 시승하면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지만, 시장의 상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제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최근 한국지엠의 모습과 신형 크루즈의 모습에서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들이 눈에 보였다. 이 숙제를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 갈지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