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하나로 계절을 만든 배우강동원, ‘늑대의 유혹’ 그 장면
2004년 개봉한 영화 늑대의 유혹에는 대사가 거의 없는 장면이 하나 있다.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비를 맞으며 등장하고, 말없이 여자 주인공에게 우산을 씌워준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수많은 10대 관객의 기억에 각인됐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은 여전히 ‘비 오는 날 떠오르는 장면’으로 회자된다. 단지 잘생긴 배우가 등장해서가 아니다.
강동원이라는 이름이 대중 앞에 처음 선 순간이자, 그 시절 10대들이 사랑을 꿈꾸던 방식 자체가 그 안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 하나로 로맨스를 설득한 배우
당시 강동원은 신인이었다. 모델 출신이라는 점 외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지만, 늑대의 유혹 개봉 직후 그를 둘러싼 분위기는 단번에 달라졌다.
특히 ‘우산 씌워주는 장면’은 팬들 사이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도 ‘그 장면’이라고 불릴 정도로 회자됐다.
많은 관객이 그 장면을 보고 “사랑이란 게 저런 거라면 해볼 수 있겠다”는 감정을 가졌다고 말한다.
이 장면이 특별했던 건, 멜로 장르에서 보통 말로 설득하던 감정을 말없이 표정과 동작만으로 설득했다는 점이다.
‘멋있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인상을 남겼다.
지금, 강동원은 어디에 있는가
늑대의 유혹 이후 강동원은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 같은 멜로부터 전우치, 검은 사제들, 반도, 브로커에 이르기까지 액션, 스릴러, 드라마를 오가며 ‘외모에 기대지 않는 배우’로 입지를 굳혔다.
최근엔 할리우드 진출 소식까지 전해졌다. 쓰나미 LA라는 제목의 프로젝트에서 주연으로 낙점됐고, 한국 콘텐츠를 넘어 글로벌 무대에서의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동원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건 여전히 늑대의 유혹 속 한 장면이다.
그 장면은 왜 여전히 회자되는가
2000년대 초반, 우산을 씌워주며 아무 말 없이 등장하던 한 남자의 모습은 단순한 영화 한 장면이 아니라 그 시절 우리가 기대하던 관계의 방식이었다.
지금은 로맨스도 더 현실적으로, 더 복잡하게 표현되는 시대지만 그 장면은 여전히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아도 통하던 시절을 상기시킨다.
강동원이 그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장면이었고,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은 그 장면을 기억하며, 그 시절의 감정을 떠올리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