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헬스앤뷰티(H&B) 업계 1위인 CJ올리브영이 미국 시장에 다시 도전한다. 관련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매장 확장에 한계를 보이는 상황에서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시장에서 새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서다. 다만 앞서 미국 뉴욕법인을 접은 경험이 있는 만큼 성공적인 진출을 위해서는 차별화된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CJ올리브영에 따르면 회사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현재 미국 내 오프라인 1호점 개점을 위해 여러 부지를 검토 중이며, CJ대한통운 현지법인과 협력해 유통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CJ올리브영의 미국 진출은 처음이 아니다. CJ올리브영(당시 CJ올리브네트웍스)은 지난 2018년 미국에 CJ올리브네트웍스 아메리카, 뉴욕법인을 세웠다. 이듬해 한국 CJ올리브영이 온라인 사업인 '글로벌 몰' 운영을 통해 글로벌 무대 진출 기회를 살폈으나 지지부진했다. 이어 미국 법인의 뉴욕 맨해튼 오프라인 매장 계획도 최종 무산되면서 2020년 뉴욕 법인을 청산했다. CJ올리브네트웍스의 미국법인은 2018년 말 기준 매출 2276만원, 당기순손실 8억5892만원을 기록했다.
타이밍을 제대로 읽지 못한 성급한 확장이 패인이었다. 2018년만 해도 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의 위상은 지금과 달랐다. 당시 K화장품은 대형 유통채널에 입점하기보다 일부 마니아들이 온라인 직구로 소비하는 '비주류' 이미지가 강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8년 9조939억원이었던 글로벌 뷰티 수출액은 2024년 14조8175억원으로 6년 새 62.94% 증가했다. 당시 무르익지 않은 미국 시장에 진출한 선구자로서 혜택을 보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몇 년 새 상황이 달라졌다. K뷰티의 인기가 글로벌 '뉴노멀'이 된 가운데 국내 시장은 성장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CJ올리브영은 국내 H&B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한 절대강자지만 전체 시장 규모는 정체돼 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관련 시장은 2019년 2조44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22년 1조6758억원에서 성장이 멈췄다.
매장 수 역시 포화 상태다. 지난해 기준 CJ올리브영 매장은 1374개로 생활용품점 다이소(1519개)보다 145개 적다. 미국의 대표 H&B 브랜드 얼타뷰티는 미국 전역에서 약 1350개의 매장을 운영하지만, CJ올리브영의 경우 단일국가에서 이보다 높은 밀집도를 보인다. CJ올리브영으로서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라도 미국에 다시 진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계 최대 뷰티 시장인 미국은 글로벌 뷰티 시장의 21%를 차지한다. 특히 최근에는 K뷰티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주요 인디 브랜드들이 미국 오프라인 시장에서 자리를 잡았다. 마녀공장, 조선미녀, 라운드랩 등 K뷰티 브랜드들이 타깃, 얼타, 코스트코 등 주요 유통채널에서 팔리고 있다. 이에 CJ올리브영은 지금이 미국 재진출의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올리브영이 치열한 미국 오프라인 H&B 시장에 안착하려면 K뷰티에 특화된 매장을 넘어 K라이브스타일 매장으로 포지셔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미국 1호 매장을 올리브영 성수N 같은 플래그십스토어 콘셉트로 오픈해 ‘K뷰티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는 방법과 CJ ENM의 K팝 콘서트 ‘KCON’과 연계한 마케팅,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브랜드와 협력해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펴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이밖에 CJ올리브영이 K뷰티 브랜드를 확보하기 위해 입점수수료 할인, 프로모션 지원, 공동 마케팅 등 여러 혜택을 부여하며 이들의 미국 시장 공략을 돕는 ‘파트너’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권재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