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건강·주식 예측의 출발점은 미적분"…'수학이 생명의 언어라면' 펴낸 김재경 교수
"이 책은 제자에게 건네는 18년 늦은 답입니다."
지난 5일 첫 발행된 뒤 일주일 만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수학이 생명의 언어라면'의 저자 김재경 KAIST 수리과학과 교수를 직접 만났다. 책에 관한 화두를 던지자 이처럼 언뜻 알아듣기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다. 김 교수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수리 및 계산과학 연구단 의생명 수학 그룹 CI이기도 하다. 수학이 생명의 언어라면은 3쇄 인쇄에 들어갈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서울대 수학교육과 출신인 김 교수는 18년 전 공군항공과학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수학 교사였다. 당시 학생들이 찾아와 "수학을 왜 해야 하는 겁니까?"라고 자주 물었다. 그때마다 '수학의 쓸모'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지만 석연치 않았다. 스스로 수학을 쓸모있게 사용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훌쩍 시간이 흐른 지금, 김 교수는 대답할 자신이 생겼다. 그는 수리 모델을 이용해 생명 현상을 탐구하는 '수리생물학'의 최전선에서 연구하고 있는 수학자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생체 리듬, 신약 개발, 수면 패턴, 팬데믹 등에 관한 다양한 문제에 수학이 실제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책에서 친절하게 소개한다. 내용은 모두 김 교수가 수리생물학 연구를 하며 경험한 것이다.
그는 "'이런 유명한 옛날 수학 문제가 있어요'가 아니라 '제가 수학문제를 풀어봤는데 이런 우여곡절과 희노애락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면서 "또 코로나 치료, 암처럼 독자가 직접 내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하는 연구를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책에 소개된 수학문제 중 하나가 '생체리듬'에 관한 것이다. '3장 우리 몸속의 신비로운 세계, 생체 시계'에 잘 나와 있다. 생체리듬은 하루 24시간을 주기로 일어나는 우리 몸속의 과정을 의미한다. 김 교수는 2012년 미국 미시간대 박사과정생일 때 수리모형을 이용해 60년 동안 풀리지 않던 생체리듬에 관한 난제를 풀었다. 생체리듬 연구에는 시간, 주기 같은 개념이 중요하니까 수학이 이 주제에서 큰 역할을 하겠다 싶어서 도전해본 것이었다.
'5장 수학이 발견한 최적의 수면 패턴'도 독자들이 관심있게 읽는 부분이다. 김 교수는 1년에 출석하는 학회 중 반 정도가 의학학회, 그 중에서도 수면 관련 학회다. 수학을 이용해 최적의 수면 패턴을 찾는 연구로 국내 수면 연구의 권위자로 떠올랐다.
김 교수는 하루 7~8시간의 절대적인 수면시간을 지키는 것보다는 언제 잠들고 언제 일어나느냐가 피로가 싹 풀리는 '꿀잠'을 결정짓는다는 연구결과를 낸 바 있다. 책에서는 '같은 시간을 자도 덜 졸린 이유', '시험 시간의 컨디션을 예측하고 조절하기' 등을 소개한다.
이밖에 '투약 시간에 따라 항암제 효과가 달라지는 원인은?', '코로나19 사망자를 최소화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전략은?' 등에 대한 답도 제시한다.
김 교수는 시간이 없다면 책에서 '1장 미래를 예측하는 미적분학'만이라도 독자들이 읽어줄 것을 추천했다. 그는 수리생물학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수학개념은 미적분학 "초중고 수학을 왜 배우냐고 묻는다면 '미적분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미적분학이 수학의 쓸모와 재미를 느끼는 데 탁월한 수학 분야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에 따르면 1장을 읽으면 10분만에 미적분을 대략 이해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과 수학을 이용하는 것은 다르다"면서 "미분방정식 기반의 수리모델링을 이용하면 하나의 생명현상을 이해할 때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패턴과 방정식을 발견해 연구 시간을 줄여주거나 혁신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가 연구하는 생명현상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컴퓨터에 이해시키려면 미적분학이 필요해요. 기후 예측, 건강 예측, 주식 예측 등 모든 예측은 미적분에서 시작합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 더 큰 쓸모가 있을까요?"
지난 5월 김 교수는 고대 의과대학에서 갖고 있는 조울증·우울증 환자 수면 관련 데이터를 이용해 수면, 생체시계와 조울증·우울증의 관계를 밝혀내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주변에 조울증·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정말 많다"면서 "이들을 실질적으로 덜 아프도록 돕는 의학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 책의 대부분을 출장을 위해 탔던 비행기 안에서 썼다며 지난 1년간 '하늘에서 쓴 책'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첫 1·2장은 미국 포틀랜드, 3·4장은 미국 코네티컷, 5·6장은 브라질 출장에서 썼다"며 "비행기가 이륙해서 랜딩할 때까지 한 장은 마무리를 짓는다는 목표로 노트북을 두드렸다"고 했다.
이 책을 통해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수학을 계속할 수 있는 용기를 얻기 바란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가끔 수학 강연을 하다보면 학생들로부터 '수학을 좋아하지만 수학경시대회 메달이 없어서 수학을 진로로 삼기 주저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하지만 책을 읽으시면 알겠지만 수학의 세계는 넓어요. 경시대회에 출전하는 데 필요한 수학적 능력은 수학자가 되는 데 필요한 능력 중 1% 정도일 거라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 그동안 쉽게 알기 어려웠던 수학자, 그중에서도 응용수학자의 삶을 제대로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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