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옵션은 안됩니다"... 퇴직연금 갈아타기 잘 하는 법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가 이제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퇴직연금 계좌에서 운용하던 상품을 그대로 다른 금융사에 가져갈 수 있는 제도인데요. 400조 원 규모의 ‘머니무브’가 예상되는 가운데 금융가도 분주한 모습입니다.

9월 발표된 정부의 연금개혁안에서 시행이 예고됐고, 드디어 오는 31일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원래 15일 시행이 예정돼 있었는데 안정성 제고를 위해 약간 미뤘죠. 덕분에 퇴직연금 실물이전에 대해 좀 더 알아볼 여유가 생겼네요.

퇴직연금 실물이전이란?

‘퇴직연금 실물이전’은 계좌에 담아놓은 예금, ETF 등의 상품을 그대로 다른 금융사의 계좌에 옮길 수 있도록 한 제도를 말합니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금감원의 주도하에 업계가 준비해 온 사업이죠.

종래의 퇴직연금은 상호 간에 이전이 쉽지 않습니다. 45개 퇴직연금사업자가 취급하는 상품이 제각각이다 보니, 퇴직연금을 옮기려면 기존 상품을 모두 현금화한 뒤 옮겨서 새로 포트폴리오를 짜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죠.

번거로움을 감수하더라도 손해가 큽니다. 만기가 남은 예금은 수수료를 떼이고, 주식형 펀드는 옮기는 사이에 급등락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특정 펀드는 처리 기간도 길어서 귀찮기가 이를 데 없죠. 이 제도는 이런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제도는 오는 31일부터 45개 사업자 중 37개 사가 즉시 시행에 나섭니다. 서비스 완비가 늦은 △부산은행 △경남은행 △삼성생명 △하나증권 △광주은행 △iM뱅크 △iM증권 7개 사업자들도 늦어도 내년 4월 안에 시행할 예정입니다.

계좌 개설하고 신청만 하면 끝, 예금·ETF 등 실물이전 가능

실물이전은 계좌를 새로 만들려는 금융기관(수관회사)에서 신청하면 됩니다. 가령 A은행에서 B증권사로 계좌를 옮기려 할 경우, B증권사에서 퇴직연금 계좌를 만들고 소정의 이전신청서만 접수하면 이후는 B증권사가 알아서 진행합니다.

이전 신청을 받은 B증권사는 가입자에게 유의 사항을 안내하고, 최종 의사를 확인합니다. 이전 가능한 상품의 목록을 확인하고, 불가상품은 환매해야한다는 점도 고지합니다. 이후 실물이전을 실행하고 결과를 SMS 등의 방법으로 통보합니다.

퇴직연금 주요 상품들은 대부분 실물이전 대상입니다. 특히 원리금보장상품은 대부분 가능한데요. 은행이 취급하는 정기예금이나 증권사의 파생결합사채(ELB, DLB), 정부보증채권, 보험사의 신탁제공형 이율보증보험(GIC)도 옮길 수 있습니다. 정부보증채권(국채, 통안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원금 손실의 가능성이 있는 실적배당형 상품도 실물이전 가능한 것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상장지수펀드(ETF)입니다. MMF를 제외한 공모펀드 역시 실물이전 대상에 포함되었습니다.

단, 계약 형태나 상품 특성에 따라 실물이전이 어려운 상품들도 있습니다. 이런 상품들은 현금화해서 옮겨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금리연동보험이나 RP, 종금사발행어음은 원리금보장상품이지만 실물이전이 어렵고요.

이외에 파생결합증권(ELS, DLS), 지분증권, 리츠, ELF, MMF, 사모펀드도 실물이전대상이 아닙니다. 각 사에서 운용하는 디폴트옵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물이전 제외 상품, 수관회사 미취급 상품은 확인해야

편리한 제도이지만 한계도 있습니다. 금융기관에서는 자사에서 취급하는 상품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는 실물이전 가능한 상품이라도 매도해서 현금화하여 이전해야 합니다.

이전의 범위도 동일 제도에 한정됩니다. DB형은 DB형으로만, DC형은 DC형으로만, IRP는 IRP로만 이전할 수 있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DC형에서 IRP로도 실물 이전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입니다만, 이번에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실물이전 제외 상품’과 ‘수관회사 미취급 상품’ 여부를 일일이 판단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고용노동부, 금융감독원은 조만간 실물이전가능 여부를 신청 전에 조회할 수 있는 ‘사전조회’ 기능도 조속히 마련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은행 점유율 절반 이상… 증권사로 머니무브 시작되나?

시장에서는 이번 제도의 시행으로 증권사가 유치 효과를 톡톡히 누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은행에 비해 수익률이 높고, 보험사에 비해 취급 상품이 많은 만큼 이전 수요가 몰릴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금감원의 퇴직연금사업자 비교공시 자료에 따르면, 증권사가 5년 장기수익률 평균 3.12%를 기록하는 동안 은행은 2.73%에 그쳤습니다. 반면에 올해 2분기 기준 적립금은 은행이 전체 394조 원 중 207조 원을 차지해 52.5%를 점유합니다.

단, 일각에서는 당분간 큰 변동은 없을 거라는 설명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전체 400조 원 가운데 당장 개인이 용이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적립금의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올해 2분기 기준 적립액 약 394조 원 가운데 202조 원(51.4%)은 개인이 손댈 여지가 없는 DB형이 차지하고 있고, DC형이 103조 원(26.3%), IRP가 88조 원(22.3%)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DC형 역시 회사를 통해서 사업자를 변경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만큼, 실제로 제도 도입과 동시에 근로자들이 퇴직연금을 적극적으로 옮기는 움직임이 나타날지는 미지수”라고 전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