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건축-광주 ‘동구 인문학당’] 70년 세월 품은 가옥…‘사유의 꽃’ 피는 인문의 집

1954년 양옥·한옥 접목해 건축
집 주인은 김난도 교수 조부 김성채
2020년 철거 위기 시민들과 극복
동구청, 복합문화공간 리모델링
전시·다실·인문 공간, 공유부엌 조성
음악·요리·강연 등 프로그램 다채
대한민국 공간 대상 대통령상 등 수상
1954년 지어진 동구인문학당 본채는 양옥과 한옥이 어우러진 독특한 형태로 1950년대 근대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야기를 품은 모두의 집’

광주의 핫플 동명동에 자리한 ‘동구 인문학당’(광주시 동구 동계천로 168-5)은 70여년된 근대 가옥과 신축 공간이 어우러진 ‘일상 속 인문형 복합문화공간’이다. 영화에 등장할 것 같은 삼각지붕의 양옥집과 고풍스런 한옥이 ‘하나의 집’을 이룬 독특한 건축미의 본채는 세월의 흔적을 최대한 살려 리모델링했으며 정원을 사이에 두고 새로운 건물을 지었다. 마당의 붉은 벽돌 굴뚝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두 공간을 이어주는 존재다.

◇개인의 공간에서 공공의 공간으로

인문학당은 근대의 역사를 품고 있는 개인의 공간이 공공의 공간으로 확장된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 집의 주인은 완도 출신 김성채(1906~1987)다. 이리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광주도청에서 농업기술직으로 일하던 그는 임양금(1911~1987)과 결혼 후 동명동에 둥지를 틀었다. 해방후 구입한 동명동 일대의 땅을 당시 광주여자중학교(광주동명여중으로 개명) 부지로 저렴한 가격에 매도한 후 자금을 확보한 그는 이듬해인 1954년 지금의 자리에 당시에는 보기 어렵던, 한옥과 양옥을 접목한 집을 지었다.

건물의 내력을 소개하는 자료가 전시된 본채에 들어서면 낯익은 인물이 쓴 글귀를 만날 수 있다. ‘트렌드 코리아’의 저자 김난도 서울대 교수다. “이곳은 저희 조부 김성채 옹께서 직접 보와 서까래를 지어올린 유서 깊은 공간입니다. 어린 시절 여기서 아우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습니다. 현대사의 영광과 상처를 묵묵히 견딘 오랜 추억의 터가 인문형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니, 감회와 감사의 마음이 씨와 날로 교차합니다.” 김성채의 손자인 김 교수는 광주를 찾을 때면 ‘꼭’ 인문학당에서 강의를 한다.

건물은 한옥과 양옥이 결합된, 해방 후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일반주택이다. 일본식 건축과 서양식 건축을 비롯해 전통가옥의 장점이 어우러진 근대 주택건축의 변화를 보여주는 시대적 유산이자, 생활 양식에 맞게 실리적으로 변형해 사용한 실용적 산물이다.

건물은 남서향으로, 왼쪽에는 별도의 입구와 손님맞이를 위한 현관과 거실을 둔 양옥이 자리하고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양옥 거실에서 각방과 부엌까지 연결된 긴 복도를 앞으로 둔 살림채 한옥이 들어서 있다.

양옥 1층에는 접대를 위한 거실과 주거를 위한 방을 두었으며 서쪽과 남쪽에 ‘오르내리 창’을 두어 채광을 고려했고 계단으로 이어진 2층에는 다락방을 두었다.

오른쪽의 한옥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에 전후좌우 퇴가 있는 ‘ㄱ’자형 한옥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일본주택 건축을 반영, 정면에 조망과 방풍을 고려해 유리를 사용한 마루문을 두었고 전통한옥의 우물마루와 달리 복도형의 긴 장마루를 놓은 것도 특징이다.

또 다양한 공간 활용과 휴식, 제사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대청마루가 한옥 공간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방의 배치 등은 남도전통한옥에 일본식 구조를 차용했다.

무엇보다 인문학당은 사라질 뻔 한 건축을 시민들의 힘으로 살려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한동안 비어있던 이 집이 2020년 주자창 부지에 편입돼 철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뜻있는 이들이 움직였다. 인근 주민과 전통한옥 복원·연구가, 전문가(건축학과 교수, 건축가)들은 건축적·생활사적 가치가 있는 공간의 보존을 주장했고 당초 공공주차장 용도로 땅을 매입했던 동구청이 이를 받아들여 보존 공간 활용방안 모색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공간 리노베이션은 과거의 흔적을 살리는 방향으로 최소화했다. 양옥의 2층은 내부 미닫이문과 다다미 바닥을 보수했으며 양옥에서 한옥으로 이어지는 긴 마루는 판자로 덮여있던 천장 서까래와 도리를 그대로 살려 재시공했다.

인문학당은 공공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 곳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만하다. 공공미술이라면 으레 연상되는 벽화 작업 대신 인문학당 공간 자체를 변화시키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20년 진행된 공공미술프로젝트 ‘우리동네 미술, 별별별서’는 정유진 디렉터와 신양호 작가 등 지역 예술인 38명이 참여, 워크숍과 토론을 통해 공간을 재해석하고 작품을 제작했다. 그 결과 천정에 걸린 다양한 전등과 현대적 느낌의 병풍, 유리창을 장식한 화려한 스테인드 글래스, 직접 짠 나무 의자와 탁자, 정성들여 빚은 도자기, 쪽염색 패브릭, 티 테이블 등 눈길 닿는 곳마다 아름다움의 향연이 펼쳐진다.

본채(132.1㎡)는 아카이브 전시, 다목적 인문 활동 공간, 누구나 차실마실 수 있는 다실로 이뤄져 있으며 2층 다락방은 추억의 만화방으로 이용하고 있다.

다실에 놓은 공예 작가들의 작품. <동구청 제공>

본채 맞은 편에는 신축 건물인 인문관과 공유부엌이 자리하고 있다. 2층으로 이뤄진 인문관(125.5㎡)은 시민 책방, 도서 기획 전시 및 다양한 인문프로그램 운영, 대관 및 각종 창작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공유부엌(42.75㎡)은 음식 인문 전용공간으로 음식 조리 및 관련 강의가 이루어진다.

인문학당은 인문 자원을 활용한 문화콘텐츠 재생산으로 주민들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는 점을 인정받아 2023년 대한민국공간대상 대통령상, 2024년 아름다운 문화도시 공간상을 수상했다.

동구청이 펴낸 인문학당 관련자료 ‘붉은 지붕에 그리움이 깊었더라’(김정현 저)에서 정광민 건축사는 “인문학당 본채는 서양식 건축과 한옥이 조화를 이루면서 나름의 개성을 찾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며 “우리 서민들의 주택에 대한 변화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광주와 우리 근대 건축의 변화를 보여주는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동구청 관계자는 “건물의 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공간의 기록이자 인문의 기록인 ‘집주인의 가족 이야기’는 당시 광주 생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더욱 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책방이 있는 인문관과 공유부엌으로 이루어진 신축건물.

◇공간을 빛내는 다양한 프로그램

인문학당에서는 1년 내내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지역의 DJ들과 함께 가요, 팝송, 재즈,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나는 ‘다락방 음악여행’, 조대영 인문학당 프로그램 디렉터가 진행하는 ‘영화 인문학 극장’ 등이 대표적이다.

인문관에 들어서면 다양한 책이 꽂힌 시민책방 서가가 눈에 띈다. 지역문화와 5·18을 다룬 책을 비롯해 ‘심가네 박씨’ 등 동구 지역 12개 책방이 철학, 페미니즘 등 서점의 특성에 맞게 추천한 책 등을 비치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특별전도 자랑거리다. ‘어린왕자 특별전’, ‘5·18 도서전’, ‘문고본전’, ‘추억의 소년소녀 도서전’ 등이 열렸으며 현재는 세계 각국의 3000여권의 만화를 만나는 ‘만화책의 향연전’(2025년 1월26일까지)을 진행중이다. 전시와 연계된 강의도 열고 있다.

서다솜·위승연 작가 등이 제작한 도자기 스툴과 오브제 등이 놓인 공유부엌에서는 광주의 오래된 음식점 주인들에게 직접 요리를 배워보는 프로그램 등이 열렸으며 현재는 (사)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강사를 초청 ‘바른 먹거리 기후밥상’을 주제로 강의와 요리실습을 진행중이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광주 #전남 #광주일보 #인문학당 #팔도건축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