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성을 덴마크에서 만나다.

조회 42,9402023. 7. 25.

덴마크. 조금은 낯선 나라다. 한국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한 번 가려면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 생활 주변에 은근히 덴마크가 많이 있다. 어렸을 적 덴마크인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쓴 동화를 읽으며 꿈을 키웠다.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미운 오리 새끼 등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줬다. 책을 읽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는지 엄마는 '데니쉬 페스츄리'라는 상표가 박힌 빵을 내주셨다. 밀가루 밀도가 진한 시장표 빵만 먹다가 켜켜이 얇은 층을 이루는 페스트리는 입맛의 경계를 허물게 해주었다. 

책을 읽다가 지겨우면 방 한켠 박스에 들어있던 '레고'를 쏟아부었다. 머릿속에 그렸던 '해적선'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입이 심심할 때 편의점으로 달려가 '덴마크 드링킹 요구르트'를 마시면서 입안을 달랬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던 '덴마크'였다. 


2023년 여름. 덴마크 하면 떠오를 사람이 한 명 생겼다. 

조규성. 

조규성이 덴마크 미트윌란으로 이적했다. 7월 11일 미트윌란은 조규성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 5년. 10번을 부여받았다. 

현지 시각으로 7월 21일 조규성의 리그 데뷔전을 보기 위해 덴마크 헤르닝으로 날아갔다. 런던 스탄스테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빌룬 공항에서 내렸다. 버스 그리고 기차를 타고 헤르닝에 도착했다. 택시로 갈아탄 후 경기장인 MCH 아레나에 도착했다. 덴마크 수페르리가 1라운드. 미트윌란과 흐비도우레의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다. 

경기장 앞 분위기를 살폈다. 북유럽 사람들답게 경기장 밖에서는 다소 조용했다. 경기장에 등장한 한국인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옆으로 다가와 'CHO?'라고 물었다. 어떤 선수인지 궁금해했다. 월드컵 당시 가나전을 봤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경기 시작. 조규성은 선발 출전했다. 4-4-2 전형의 최전방으로 나섰다. 초반에는 미트윌란이 부진했다. 전반 25분 조규성의 왼발 감아차기가 골대를 때렸다. 이 슈팅을 기점으로 미트윌란이 주도권을 쥐고 나갔다. 

이 한 경기만 놓고 이야기해야겠다. 이 경기에서 조규성은 미트윌란의 '해리 케인'이었다. 최전방은 물론이고 중앙 허리 진영으로 내려와 패스를 뿌려주는 역할도 했다. 조규성의 전방위 활약에 흐비도우레는 흔들렸다. 

후반 11분 조규성의 결승골이 나왔다. 왼쪽 측면에서 미트윌란이 역습을 펼쳤다. 왼쪽 풀백 파울리뉴에게 볼이 연결됐다. 조규성의 움직임이 좋았다. 왼쪽으로 파고드는가 싶더니 방향을 바꿔 오른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흐비도우레 센터백은 조규성을 놓쳤다. 조규성에게 큰 공간이 나왔다. 파울리뉴가 크로스했다. 조규성은 그대로 뛰어들며 헤더, 골망을 흔들었다. 리그 데뷔전에서 데뷔골. 조규성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미트윌란은 1대0으로 승리했다. 

다음날 헤르닝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이카스트. 미트윌란의 훈련장에서 조규성을 만났다.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데뷔전 데뷔골.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강렬했을 것이다. 조규성에게 물었다. 얼마나 여운이 남았는지를.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골을 넣고 나서 잠깐 좋았어요. 그 다음에는 완전히 잊었어요. 그냥 K리그에서 경기 뛰다가 골 넣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당연히 기분은 좋지만, 여운이 엄청나게 길지는 않았어요. 이 골이 끝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빨리 잊어버리려고 했던 것 같아요."

왜 굳이 그 골을 빨리 잊어버리려고 했을까. 계속 그 좋은 기분을 느낄 수도 있었을 텐데. 

"축구선수라는 직업. 운동선수라는 직업이 매 경기 결과를 보여주고, 증명해야 하는 자리잖아요. 이제 한 경기 했을 뿐이에요. 아직 더 보여줄 것이 많아요. 안주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요."

우문현답이었다. 골잡이에게 골은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 다음 골에 대한 기대감과 굶주림이 없다면 골잡이라고 할 수 없다. 조규성은 타고난 골잡이였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후 6개월간 조규성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방송에도 많이 출연했다. 겨울 이적 시장의 핫 가이였다. 그러나 이적하지 않았다. 전북에 잔류했다. 

2023년 K리그 초반 다쳤다. 4월 포항과의 5라운드부터 시작해 5월 열린 인천과의 13라운드까지 결장했다. 암흑의 시간이었다. 

부상 복귀 후 폼이 올라왔다. 16라운드 울산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몸 상태를 끌어올렸다. 21라운드 서울과의 경기를 소화한 후 미트윌란으로 이적했다. 2023년 전북에서 14경기 7골-2도움을 기록했다. 업앤다운의 6개월. 조규성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월드컵 후)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하다보니까 저도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경기력이 안 나오기도 했고요. '내가 너무 혼자 조급하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들이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내가 왜 남들의 그 기대감에 맞춰서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스스로 저한테 기대하고 있었어요. 월드컵을 갔다 와서 잘하고 왔기 때문에 나는 더 잘해야겠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러다 보니 저 자신 스스로 과대평가를 하고 있었어요.

저는 매 순간순간 그냥 열심히 하고 그냥 노력하는 사람인데요. 왜 내가 지금 잘하려고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경기력도 안 나오고, 좋은 모습을 못 보여드린 거 같고 그러더라고요.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냥 열심히 하고 굳이 골에 집착하지 말고 팀플레이에 집중하고 원래 하던 대로 루틴대로 하다 보면 좋은 결과 있을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 시간이 절대 헛되지 않았어요.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정비할 수 있었습니다."

조규성은 그런 선수였다. 그냥 열심히 하고, 하던 대로 하면 좋은 결과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우직하게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흘리는 땀을 믿는 그런 선수였다.

그가 걸어온 길이 잘 보여준다. 엘리트 코스를 밟지 못했다. 청소년 시절 연령별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한때는 축구를 포기할 생각도 했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혹은 수비수를 소화하는 키만 크고 피지컬은 좋지 않던 선수였다.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어렸을 때는 프로 선수가 되고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런데 현실의 벽은 높구나라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됐어요.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더라고요. 광주대 시절 그런 것을 많이 느꼈어요. 내가 프로에 못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광주대 시절 스트라이커로 보직을 변경했다. 근력 운동을 하면서 몸을 두껍게 했다. 수비형 미드필더와 수비수를 본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패스를 뿌려주기도 하고, 제공권 장악에도 유리했다. 새로운 유형의 스트라이커로 변모했다. 우선 지명을 했던 안양이 조규성을 불렀다. 최전방에 세웠다. 대성공이었다. 

"운이 좋았어요. 우선 지명으로 FC 안양에 갔고요. 운 좋게 많은 경기에 출전하고 골도 넣고요."

운이라고 했지만, 운이 아니었다. 조규성 자신의 피땀 어린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조규성 본인의 가치관이 이를 도왔다. 

"높은 위치를 바라보면서 가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한 번도 그랬던 적은 없어요. 그냥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그르다 보니 지금 이 자리까지 왔네요."

"그러면서 사는 것 같아요. 가끔은 한 번씩 제가 좀 물러날 때도 있고, 떨어질 때도 있지만 그때 다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멘탈이 무너지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서 멘탈을 부여잡을 수 있는 철학 같은 것이 있을까. 아니면 자기 암시를 위한 좌우명 같은 것은 없을까. 궁금했다. 

"아... 이거는 제가 인터뷰를 하거나 가끔 장난식으로 하는 말인데요."

무엇일까. 

"그냥 끝까지 가면 내가 다 이겨!"

"예를 들어 경기가 잘 안 풀렸을 때 경기가 끝나고 돌아갈 때 '오늘은 경기가 좀 잘 안됐구나. 그래도 안 다쳤으니까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상황마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긍정적인 생각은 선택에도 큰 도움이 되곤 한다. 조규성은 두 가지 선택을 통해 자신의 축구 인생을 바꿨다. 광주대 시절 포지션 변경 그리고 군입대였다.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봤던 경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될까. 물어봤다. 

"아무래도 수비 쪽을 봤었으니까 수비에 많이 가담하려는 것 같아요."

통상적인 답변이었다. 그 뒤에 나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공격을 보던 사람들은요. 각자 하나씩 자기의 무기가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런 것이 매우 부족해요. 제 스스로도 생각해보면 공격수로서 번뜩이는 그런 무기요. 그게 남들에 비해 적지 않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경쟁력을 가지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요. 그게 수비 가담 열심히 하고 더 희생해주는 플레이를 해야겠다는 결론이 나왔죠. 팀원들도 좋아해 주고, 감독님들도 많이들 좋아해 주다 보니 더 많이 가담하게 됐어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경험은 어땠을까. 많은 사람이 조규성의 연계가 좋은 이유를 이 지점에서 찾고 있다. 그런데 조규성은 수비형 미드필더 경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단점 때문에 연계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저는 사실 발밑이 그렇게 좋지 않아요. 솔직히 스탠스가 느리니까요. 공격수로 바꾸고 나서는 최대한 쉽게 하려고 해요. 제가 볼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스스로 못하는 것을 알거든요. 스스로 잡고 빨리 주는 스타일이에요. 앞으로 더 보완해야죠."

입대는 신의 한 수였다. 김청 상무에서 스트라이커로 눈을 떴다. 동시에 군 문제도 해결했다. 

"2020년에 전북에 입단했는데 퍼포먼스를 많이 보여주지 못했어요."

조규성은 2019년 안양에서 36경기에 나와 14골-4도움을 기록했다. K리그 2 베스트 11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2020년 전북으로 이적했다. 이적료 8억 8,000만 원. 안양 역사상 최고 이적료였다. 

2020년 전북에서 34경기에 나와 8골-3도움을 기록했다. 다소 아쉬운 결과였다. 

"저 스스로 뭔가 2021년에 전북에서 경기를 뛸 수 있겠느냐는 생각도 했어요. 군대를 가서 한 층 더 성장해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상무에 가면 더 많은 경기에 나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입대를 결정했어요. 그것이 두 번째 터닝 포인트였지 않았나 싶어요."

입대 후 조규성은 벌크업에 성공했다. 탄탄한 몸을 가지고 K리그2 무대를 누볐다. 엄청난 활동량과 연계 플레이에 피지컬까지 갖추면서 한 층 더 발전했다. A대표팀에 승선했다. 

2022년 9월 전역 전까지 조규성은 김천 상무에서 24경기에 나서 13골-4도움을 기록했다. 공격포인트는 모두 K리그1에서 올렸다. 9월 전역해서 전북에 돌아온 후 8골-1도움을 더 기록했다. 조규성은 총 35경기 21골-5도움으로 K리그1 득점왕에 올랐다. 여기에 월드컵에서 2골(그것도 한국인 최초 한 경기 멀티 골 기록이었다)까지 넣었다. 군대 가서 사람이 바뀐, 드문, 케이스였다. 

잠깐 한 명이 떠올랐다. 군대를 갔다 와서 발전한 케이스. 이동국이었다. 1979년생이자 98학번인 이동국. 1998년생인 조규성. 둘은 2020년 전북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스물한 살 차이가 나지만 여전히 연락할 만큼 친분이 두텁다. 

"아까도 이동국 선배님한테 연락했어요. 덴마크 갈 테니 방 비워놓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언제든지 놀러 오시라고 했죠."

이제 조규성은 외국인 용병의 삶을 시작했다. 안양이나 전북에 있을 때 보기만 했던 외국인 선수의 삶을 직접 시작하는 느낌은 어떨까. 

"소통적인 부분이 힘든 거 같아요. 영어를 배우고 있는데요. 아직 영어로 말하기가 조금 어려워요. 편하게 농담도 하고 공감도 하고 싶은데요. 열심히 노력해야죠. 그래도 많이 챙겨주고 해서 너무 좋아요."

그러면서 유럽에서 뛰고 있는 동료 선수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이제 여기 와서 보니까요. 진짜 유럽에 있던 선수들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다시 한번 느끼고 있어요. 운동할 때 외로웠겠구나. 저도 여러모로 많이 배우고 이겨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으로 유럽에서 뛰는 포부를 물었다. 

"사실 이제 한 경기를 했을 뿐이잖아요. 그냥 포부만 말씀드리자면 매 경기 출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매 경기 나와서 골을 넣는 것이 목표고요. 어딜 가나 변함없는 것 같아요. 저는 공격수이기 때문에 앞에서 열심히 뛰고, 희생한다고 하더라고 결국 골로 증명해야 하니까요. 이제 유럽 무대도 첫 시작이고요.

뭔가 제 축구 인생에 있어서 '이제 절반 정도 왔다'가 아니라 '다시 시작'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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