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홍보한 '호조태환권' 원판 회수..불편한 진실

임진택 2015. 6. 2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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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문화재 반환은 보통 외교 성과로 홍보되는데요. 하나의 사례가 호조태환권입니다. 호조태환권은 조선 최초의 근대적 지폐를 찍어내던 원판인데요. 2년 전 한미 수사공조를 통해 이 원판을 미국서 다시 찾아왔다고 정부가 홍보해왔습니다. 그런데 취재 결과, 호조태환권 반환 과정에는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들이 참 많았습니다.

호조태환권 반환, 그 이면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임진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지난 2013년 9월. 주한미국대사와 문화재청장이 대검찰청을 찾았습니다.

한미 수사 공조를 통한 첫 문화재 환수를 기념하기 위해섭니다.

62년 만에 국내로 반환된 호조태환권 원판은 구한말 화폐 개혁 당시 구화폐의 교환권을 찍어내던 동판입니다.

이 동판으로 찍어낸 지폐 한 장이 9000만 원에 팔릴 정도여서 그 원판의 가치는 상당할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성 김/주한미국대사 (2013년 9월) : 이번 환수를 가능하게 한 양국의 수사공조는 강력한 한미동맹의 한 예입니다.]

2013년은 한미동맹 60주년이었습니다.

[채동욱/검찰총장 (2013년 9월) : 한국전쟁 당시 미국으로 유출된 호조태환권 원판이 한국과 미국이 동맹을 맺은 지 60년 만에 다시 이 땅에 돌아오게 되니….]

당시 언론들도 이를 앞다퉈 보도했습니다.

지난 2일 한 중년 남성을 인천 공항에서 만났습니다.

2013년 미국 국토안보수사국에 체포돼 호조태환권 원판을 몰수당한 윤모 씨입니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장물범'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그는 식품 유통업을 하는 사업가로 30년 동안 꾸준히 문화재를 수집해 왔습니다.

체포 당시 10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2주 만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습니다.

사건은 지난 2010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윤 씨는 미국의 한 경매사이트에서 호조태환권 원판을 낙찰받았습니다. 물론 적법한 절차였습니다.

얼마 뒤 윤 씨는 주미한국대사관 관계자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호조태환권 원판이 한국 정부 소유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윤원영/문화재수집가 (경매낙찰자) : 이미 내가 경매장에서 다 물건 사고 거의 50% (값을) 치르고 50%를 안 치렀을 때예요.]

잔금을 치르지 않고 기다리던 윤 씨는 한국대사관에서 더이상 연락이 없자 결국 잔금을 치르고 원판을 인수했습니다.

그 뒤 윤 씨는 한 방송사에 원판을 공개하고 유튜브에 관련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경매가 끝나고 3년 가까이 지난 어느 날 새벽 미국 수사관들이 윤 씨를 체포했습니다.

[윤원영/문화재수집가 (경매낙찰자) : 17명의 수사관들이 들이닥쳐가지고. 이게 뭔가 할 정도로. 그냥 진짜 겁에 질려 있었지요.]

영문도 모르고 날벼락을 맞은 윤 씨. 2주간 옥살이를 하고 약 5천만원을 들여 낙찰받은 문화재도 빼앗겼습니다.

과연 2년여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호조태환권 환수 과정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선의의 취득자는 보호한다는 원칙부터 깨졌습니다.

[류병운 교수/홍익대 법학과 : 약탈 문화재인지 모르고 취득했을 때는 당연히 처벌은 안 되죠.]

미국 연방검찰과 법원도 이례적으로 기소철회를 한 게 그 증거입니다.

뉴욕타임즈는 당시 경매와 관련해 유독 윤 씨만 체포됐음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불법으로 취득한 장물이었다면 당연히 원판을 경매에서 판 미국인도 수사를 받아야 하지만 오직 윤 씨만 체포돼 수사를 받은 겁니다.

당초 미국은 이 원판을 장물로 볼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2010년 윤 씨가 수사대상이 아니었던 이유입니다.

[주미한국대사관 관계자 (2010년 당시) : (미국측이) 덕수궁 안에 무슨 재고품 리스트가 있어서 그 리스트가 없어졌는데 그거하고 일치하는지 안 하는지. 이런 것까지 다 확인을 해야된다고 하는데. 한국전쟁 중에 그런 것 확인이 되겠습니까]

더구나 당시 문화재청은 원판 회수에 전혀 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같은 날 130여 점의 다른 문화재가 경매에 나온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주미한국대사관 관계자 (2010년 당시) : 문화재청에서 가지고 가려는 노력을 보여야 하는데 우리 문화재청에서 제대로 감정을 안 해줬어요. 한번 오라고 하니까 오지도 않고.]

미국 수사 당국은 돌연 2012년 5월 원판의 소재를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사이 한국 정부가 이 원판의 '불법 유출'을 증명할 근거를 제공했던 것일까?

취재결과 문화재청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원판이 덕수궁에서 불법 유출됐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덕수궁 수장고 목록 자체가 없었습니다.

[이상찬 교수/서울대 국사학과 : 덕수궁에서 가져갔다는 것을 자료로 증명해야 합니다. 덕수궁에 있었다고 해서 그게 대한민국의 소유냐, 그것을 문화재청이 입증을 해야 합니다.]

몰수의 근거가 된 '불법 유출' 여부가 전혀 규명되지 않은 겁니다.

미국은 그동안 불법 반출 문화재라는 증거를 한국이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돌려줄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호조태환권 원판 직후 반환 결정이 내려진 조선 국새나 문정왕후 어보도 마찬가집니다.

[혜문/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 대표 : '육실대왕대비'라고 써 있잖아요. 이걸 발견해서 종묘 여섯번째 방에서 난 게 증명된 거죠. 문서같은 것을 다 찾아냈고요. 그 다음 6·25 전쟁 당시 미국에 의한 도난품이라는 것을 저희가 증명했기 때문에…]

취재진이 환수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정부는 미국 수사기관에 미루는 듯한 입장을 보입니다.

당시 환수 작업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이를 순전히 '미국의 선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한미수사공조'에 따른 큰 성과물로 포장되는 사이 정작 한 국민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과연 윤 씨가 낙찰을 받지 않고 미국 국민이 낙찰받았다면 미국 정부가 강제로 빼앗아 한국 정부에 돌려줬을까 의심스럽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으로 이뤄진 문화재 반환. 미국 정부는 스스로 적법한 거래라고 했던 한국 교포의 경매물을 강제로 빼앗아 한국 정부에 건넸고 우리 정부는 반환 생색내기에 바빴습니다.

그사이 우리 교민의 인권 문제에는 아무런 관심도 그 이후에 유감 표시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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