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오적과 경술국적에 해당하는 박제순
오랫동안 외부대신을 하고
나라 팔아먹을 때
관직이 내부대신이었으니까
상당히 높은 관직이었죠
박제순은 친일파들 중에서
가장 글을 잘 쓰는데 가장 교활했다는 평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박제순은 같은
친일파들한테 너무 온건하다고도
욕을 먹습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한국에 있으면
개인의 신변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일본으로 넘어갔고
현재 시세 기준
20억의 보상금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매년 그에 준하는 연금을
받기도 했고요
박제순의 아들 박부양은
20살부터
그땐 귀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고
역시 20살 때
한성은행의 대주주가 됩니다
그런데 박부양의 아들
그러니까 박제순의 손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비판하며
광복군으로 활동하고
해방 후에는
서울대 음대 졸업 후
성악가로 활동하다가
강원대학교의 교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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