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부의 '녹색커튼 예찬론'
공간 부족한 도심에서 수직으로 키우는 식물 '녹색커튼'
에너지 절감은 기본, 시민에게 활기찬 생명력 전달
스트레스 감소, 집중력 향상, 우울증 및 불안 증상 완화에 효과적
몇 해 전 서울 노원구청에 녹색커튼을 설치해준 적이 있다. 회색빛 시멘트에 페인트를 칠해도 여전히 삭막하니 '대안을 찾아보자'고 구청 내부 논의가 있었다고 했다. 필자는 이런 소식을 접하고 '녹색커튼'을 제안했다.
건물 외벽을 넝쿨식물이 타고 오를 수 있도록 하면 회색도심에 지친 사람들은 녹색 식물이 지닌 활기를 얻을 수 있고, 무성하게 자란 잎은 한 여름 뜨거운 태양열을 차단해주는 냉방효과 등 다양한 잇점이 있다는 점을 소개했다.
구청 관계자들은 내부적으로 여러 차례 깊이 있게 논의했고, 결국 필자의 이런 제안을 받아 들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했다. 후일 구청 관계자들에게서 들은 얘기로는 '녹색커튼을 설치한 뒤 구청에서 일하는 직원은 물론이고, 시민들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했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용어일 수 있지만 녹색커튼은 농업을 조경에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사실 관심만 가지면 녹색커튼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도시농업을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농업을 조경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CJ그룹 본사에는 보리와 벼가 심어진 쉼터 공간이 있다. 회사 직원들은 물론이고,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도 그 주변에서 잠깐씩 휴식을 취한다고 했다. 이것도 농업을 조경에 활용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농업조경의 한 가지 예인 그린커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 한다.
그린커튼은 식물을 이용해 장막을 만들어 건물벽을 녹색으로 꾸미는 것을 말한다. 약간 차이는 있지만 담쟁이 넝쿨이 오래된 집의 벽돌을 타고 오르는 모습이 그린커튼과 비슷하다.
물론 녹색커튼에서는 담쟁이를 이용하지 않는다. 담쟁이는 다년생이면서 줄기에 뿌리가 있어 건물 벽에 지나치게 단단히 붙기 때문이다. 심할 경우 구조물에 손상을 줄 수도 있을 정도다.
건물벽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녹색 커튼을 설치할 때는 벽 꼭대기와 건물 옆 바닥에 놓인 화분을 로프로 연결한 뒤 화분에 일년생 넝쿨식물을 심는다. 이후 물주기 등 필요한 수분과 영양분을 제공한다. 화분에 심어진 식물이 로프를 타고 오르면서 무성해지면 녹색의 장막을 만들어진다. 물과 양분은 자동급수장치를 이용해 공급된다.
실제 설치 작업은 설명처럼 쉽다. 하지만 녹색커튼이 인간과 환경에 기여하는 장점은 시간이 한참 필요할 정도로 많다.
우선 녹색커튼을 위해 심어진 식물의 잎 표면에 미세 먼지를 부착시키고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에 따르면, 녹색커튼 1m²당 약 18~26μg의 미세먼지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도시공원 1m²당 제거량에 맞먹는다.
공간 재활용 측면에서도 뛰어나다. 도심에서 평면의 녹색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녹색 커튼은 수직으로 설치하기 때문에 버려진 공간을 이용한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 녹색커튼은 잎의 증산작용을 통해 주변 온도를 낮추는 데에도 효과가 탁월하다. 건물 외벽에 설치된 녹색커튼은 건물을 비추는 직사광선을 차단해 건물 내부 온도 상승을 억제해준다. 그 결과 에어컨 사용을 줄여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게 해준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녹색커튼을 설치하면 실내 온도가 2~3℃ 낮아진다고 한다.
잎과 가지는 주변의 소음을 흡수하고 반사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소음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녹색커튼이 약 5~10dB 정도의 소음을 줄여주는데 도로변 건물이나 공장 인근에 녹색커튼을 설치하면 주민들의 생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또 잎 표면은 유해 물질을 흡수하고 분해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오염물질 정화기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자동차 배기가스나 공장 배출 가스에 포함된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휘발성 유기화합물 등을 제거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밖에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가 될 수 있어 도시 생태계를 개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실제 녹색커튼에 서식하는 곤충은 꽃가루 매개를 통해 식물의 번식을 돕는다. 새들이 둥지를 짓고 먹이를 찾는 장소로 녹색커튼을 활용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리적으로도 녹색 커튼의 장점은 많다.
바로 녹색커튼이 도시 풍경을 아름답게 만들고, 자연과의 접촉 기회를 제공해 시민들의 심리적 안정에도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실제 녹색 공간에 노출된 사람들은 스트레스 감소, 집중력 향상, 우울증 및 불안 증상 완화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녹색커튼의 주요 작물로는 우리에게 친숙한 조롱박, 수세미, 나팔꽃, 작두콩 뿐만 아니라 열매마와 차요태, 향기밤나팔꽃 등도 식재하는데 이들 식물은 중장년층의 향수를 가져다 주고, 가을 수확기가 되면 아이들의 수확 체험활동 소품으로 이용할 수 있어 좋다.
녹색커튼이 가진 이런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녹색커튼 사업을 하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늘나무’라는 농업조경회사와 필자가 운영하는 ‘그린메이커스’ 등이다. 이들 두 기업은 현재 서울 전역의 관공서와 도서관을 비롯한 주민편의시설 등에 녹색커튼 보급활동을 하고 있다.
도시농업 예찬론자로서의 필자는 도시농업을 하는 곳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한다.
생각하는 것을 인간만의 능력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오만이다. 식물도 생각을 한다고 믿는다. 실제 일정한 시간에 식물에 물을 주면 식물이 이를 인지하고, 그 시간에 맞춰 성장을 준비한다. 참으로 신비한 일이지 않는가?
필자는 인간은 멸종할 수 있어도 식물은 지구 종말까지 살아 남을 것라고 믿는다. 식물은 욕심 부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포기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해 가는 식물이야말로 인간보다 현명하고 아름다운 생명체라고 생각한다.
올 여름, '삭막한 도심을 아름다운 생명체가 모여 만든 녹색커튼으로 꾸며보면 어떨까'하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