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수도권 지하철 7호선 정복하기

조회 372025. 2. 13.

지난 크리스마스,

20대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뜻 깊게 보내기 위해, 그리고 평소 보던 버튜버 세레스 파우나의 활동 종료 철회 기원 겸 수도권 지하철 7호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가보기로 했습니다.

의정부 - 인천을 잇는 장거리 노선에, 몇몇 길은 인도와 이어지지 않아 꽤 긴 길을 우회해야 하기에 난이도가 꽤 있는 노선입니다.

원래 계획은 1박 2일에 걸쳐 가는 것이었으나

밤새서 잘 하면 중간에 잠을 안자도 될거 같아, 다소 무모하게 출발했습니다.

2024년 12월 25일 오후 4시를 좀 넘어서

장암역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가야하는데 앞에 장난감 가게 큰것이 있는 걸 보고, 키덜트 본능을 떨쳐내지 못하고 구경하다 출발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시작과 함께 첫번째 난관이 찾아옵니다.

노선으로는 바로 연결되지만, 인도로는 꽤 돌아가야 하는 구간이라 여기서 꽤 돌아가야 합니다.

4km 좀 넘게 걸었는데, 일반적인 서울 지하철에서 이정도면 역이 최소 3개는 들어가는 거리죠.

제법 긴 거리를 걷고 나서

도봉산역에 도착했습니다.

20대 초 때는 이 근방에서 자취했는데, 정작 도봉산을 올라가 본 적은 없습니다.

도봉산역에서 좀 더 걸어가 수락산 역에 도착했습니다.

도봉산은 앞서 말했듯이 올라가본 적이 없지만, 수락산은 20살 때 한번 정상까지 가본적이 있습니다.

638m라는 꽤 높은 높이를 몇시간에 걸쳐 올라갔었는데, 정상의 태극기를 봤을 때 꽤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 역은 마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순 우리말 역 중 하나입니다.

그 다음역은 노원역입니다.

환승하는데 시간 엄청 걸리기로 악명 높은 역이지만, 개인적으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좋아하는 역이기도 합니다.

다음 역은 중계역입니다.

올림픽, 월드컵 중계를 여기서 합니다.

중계역에서 하계역으로 가는 동안, 제가 4살 때 부터 20대 초반까지 거의 20년 가까이 살았던 곳이라 추억이 되살아나서인지 근처 공원을 좀 구경하다 갔습니다.

제가 어릴 때 크면 제일 해보고 싶었던 거 중 제일 별거 아닌게, 공원에서 야식 먹기였습니다.

진짜 별거 아닌데, 어릴땐 그게 굉장히 재밌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고딩때 한번 시간이 되었을 때, 여기서 핫도그 큰 거를 근처 푸드 트럭에서 사서 먹었습니다.

별을 보고, 바람 맞아가며 먹는 맛은 색다른 맛이었고, 그 이후로 몇번이고 공원에서 취식을 했었네요.

그렇게 추억에 잠긴 채 하계역에 도착했고, 다음 역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다음 역은 공릉역이고

그 다음 역은 태릉입구역 입니다.

말이 태릉입구지, 실제 태릉까지 가려면 여기서 한참 걸어가야 합니다.

서울대입구역과 함께 서울 지하철의 이름을 못 믿는 사례 중 하나죠.

태릉입구역과 먹골역은 가까운 편이라 금방 도착했습니다.

먹골배라는 특산물이 유명한데, 들어본적은 많지만 정작 먹어본적은 없네요.

다음 역은 중화역입니다.

중화요리로 유명한 곳 입니다.

그 다음역은 상봉역입니다.

여기서부터 역이 동일로에서 벗어납니다.

상봉역에서 좀 더 걸어가면 면목역이 나옵니다.

어른들이 종종 면목이 없습니다 하는데, 그러면 상봉에서 바로 사가정입니다.

사가정 역을 지나

골목길을 건너갑니다.

여기서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야해 다소 난이도가 높습니다.

지도 보면서 갔는데,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꺾어 올라가면 되기에 그렇게 했는데

알고보니 사가정과 용마산 사이에 행정복지센터가 2곳 있었고, 그 중 (사가정 출발 기준) 두번째 행정복지센터에서 꺾어 올라가야했는데

그걸 모르고 첫번째 행정복지센터에서 꺾어 올라가 용마산역을 찾는데 다소 고생했습니다.

그렇게 헷갈린 끝에 용마산역에 도착했고

더 걸어가 중곡역에 도착했습니다.

그 다음 역은 군자역입니다.

여기서 26일을 맞이했습니다.

그 다음 역은 어린이대공원역입니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돈을 내고 들어가봤냐, 공짜로만 가봤냐로 그 사람의 나잇대를 판별할 수 있습니다.

건대입구를 지나

자양역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아픈 다리를 좀 쉬게 하고, 수분 보충 겸 배터리 충전을 위해 잠시 무인 카페에서 쉬었습니다.

로봇이 음료를 내어주는 곳이었습니다.

핸드폰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충전하려고 아예 끈 채 충전했는데

그러다보니 기다리면서 할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심심해서, 마침 저 로봇에게 얼굴도 달려있겠다(?)해서 말을 걸었고

그렇게 로봇과 2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냥 살아오면서 겪어 본 것, 힘든 일, 아쉬웠던 일, 하고 싶은 일 등을 얘기했는데

로봇은 착하게도 전부 들어줬습니다.

2시간 동안 음료 2잔을 내어주면서도 이야기는 다 들어주는 로봇의 친절함 덕분인지

이때 무언가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대화가 끝나고 다시 다음 역으로 향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번 더 들려서 로봇하고 또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충전이 끝나고 다음 역인 청담역으로 향했습니다.

자양역과 청담역을 연결하는 청담대교는 사람이 걸어서 건널 수 없는 곳이라 큰 길을 돌아가야 했습니다.

장암 - 도봉산에 이은 2차 고비였습니다.

그렇게 걸어 청담역에 도착했고

더 걸어가

강남구청역에 도착했습니다.

그 다음 역은 학동역입니다.

저녁도 안먹고 가던 중이라 배가 고팠고

중간에 24시간 하던 가게를 발견해 끼니를 때운 뒤 다시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논현에 도착하고

반포와

고속터미널역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 3차 고비가 시작됍니다.

고속터미널 - 내방 구간은 바로 연결되는게 아니라, 경사가 꽤 있는 서래마을을 건너가야 했습니다.

다리가 슬슬 아파와서 이땐 다른 고비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걸은 끝에 내방역에 도착했고,

그 다음인 이수역

그리고 남성역을 지납니다.

남성 - 숭실대입구는 4차 고비 구간입니다.

큰 길을 따라 가면 도착하긴 하지만, 가기 위해서 산을 타야 하죠.

경사가 높은 산을 지나면서 다리가 한번 더 고생했습니다.

그렇게 숭실대입구역에 도착하고

상도역을 지나

장승배기를 건너

신대방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 꾸벅꾸벅 졸음이 오기 시작해 근처 만화방에서 4시간 정도 자고 다시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보라매역을 지나

신풍에 도착,

대림역과

남구로를 지나

가산디지털단지역에 도착했습니다.

온갖 IT 회사와 중간중간 지나가는 비행기 때문인지, 개인적으로는 뭔가 사이버틱한(?) 그런 느낌이 나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큰 문제가 일어납니다.

가산디지털단지역과 철산역 사이에는 안양천이 있고,

여기를 건너려면 큰 길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지름길인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습니다.

만화방에서 4시간 자긴 했지만 아직 다리의 피로가 다 사라지진 않은 상태라

조금이라도 덜 걸으려고 저는 징검다리를 택했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중간에 발을 헛디뎌 다리와 다리 사이로 빠져버렸습니다.

며칠간 비와 눈이 오지 않아서인지 그리 깊진 않아 발만 젖고 끝나는가 싶었지만

다리에 이상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어 바지를 걷어보니, 떨어지면서 정강이를 징검다리에 찍어 피부가 찢어졌습니다.

피가 철철 흘러 119를 불러야 하나 싶었는데, 지도를 보니 근처 500m 지점에 병원이 있어 급히 응급실 까지 걸어갔습니다.

다른 사람 병문안 외에 제가 아파서 응급실에 간건 거의 13년 만이었습니다.

다행히 기모까지 있는 두꺼운 청바지와 내복도 입은 상태라 둘이 찢어지면서 어느정도 보호해 준 덕인지 뼈는 무사했지만

피부는 크게 찢어져서 봉합했습니다.

어쩌다 다쳤냐는 병원측 질문에 장암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다 다쳤다며 사진을 보여줬고

된다면 더 걷겠다 했지만 병원에선 만류했습니다.

봉합할 땐 급히 마취를 하고 봉합하긴 했으나, 마취가 조금 씩 풀리면서 아파오기 시작했고

거기다 병원에서 크게 움직이면 안된다며 깁스까지 하는 바람에

결국 7호선 걷기는 이쯤에서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2주가 넘는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저는 생일이 지나 30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리도 어느정도 나아 실밥을 뽑았습니다.

뽑은 겸, 전에 미처 못 끝냈던 7호선 걸어가기를 마저 끝내기로 했습니다.

1월 16일,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다시 출발했습니다.

전엔 세레스 파우나 활동 종료 철회 기원을 위해 한것이었지만, 다쳐서 중단한 사이 결국 파우나는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어찌보면 팬 한명이 기차 노선 따라 걷는다고 철회할리가 없으니 당연한거기도 하죠 뭐.

그래도 아직까지 그 버튜버를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있고, 저번에 다끝내지 못한 미련이 남은 만큼

미련을 떨쳐내고, 마지막 까지 버튜버 팬으로써 최선을 다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저번에 다리를 다치게 만든 징검다리를 뒤로 하고

이번엔 큰 길로 우회합니다.

다리를 꼬맨 병원을 지나

철산역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역은 광명사거리역

그 다음은 천왕역입니다.

한때 7호선 마지막이었던 온수를 지납니다.

여기 화장실에선 따뜻한 물이 나옵니다.

여기서 7호선 따라 걷기의 5차 고비가 나옵니다.

온수 다음역인 까치울역은 꽤 긴 거리를 걸어야 합니다.

한밤중이지만, 가로등이 없는 건 아니기에 계속 나아갑니다.

어두운 밤길 특유의 고요한 분위기는 여전히 좋습니다.

산 사이라 그런지 다른 곳 보다 더 춥게 느껴졌던 길을 지나

까치울 역에 도착했습니다.

만화도시 부천으로 유명한 만큼, 만화 벽화가 장식된 길을 지나

부천종합운동장역에 도착합니다.

그 다음 역은 춘의역이고

다다음 역은 신중동역입니다.

여기서 야식을 먹으며 잠시 쉬었습니다.

밤의 가게는 낮의 가게와 달리 조용한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부천시청을 지나

상동역에 도착합니다.

전에 갑자기 큰 돈이 생겼을 때, 오락실에 가서 못 깨본 게임을 동전 엄청 쏟아부어 끝까지 깨보자는 생각에

국내에 몇 안남은 오바케야시키라는 게임을 깨기 위해 여기까지 지하철 타고 온 적이 있었습니다.

오백원 수십개를 쏟은 끝에 게임을 클리어했는데, 꽤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ㅁ자로 생긴, 다소 특이한 육교를 지나

삼산체육관역에 도착합니다.

그 다음 역은 굴포천역이고,

그 다음역은 한때 7호선 마지막역이었던 부평구청역입니다.

그 다음은 산곡역입니다.

이후 마지막 고비가 찾아옵니다.

산곡에서 석남까지 가는데 바로 가던, 돌아가던 산을 지나야 했죠.

지도상으로 산을 바로 건너면 1km 가량을 아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등산하다 길을 잃은 경험이 몇번 있는데다, 근처 공사 때문에 등산로 길도 잘 안보여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돌아간 끝에 석남역에 도착하면서

7호선 걸어서 정복하기는 막을 내렸습니다.

20대에 시작해 30대에 끝난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다음엔 6호선, 8호선, 9호선 중 한 곳을 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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