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도시농부, 바나나 나무 키워 열매 얻다..."복원과 적응이 필요한 시점"

강남 주택 옥상에서 사탕수수, 패션 프루츠 키워 간식으로 먹기도
"지구 온난화가 문제"..."환경 졍책 모니터링하고, 가능한 영향력 행사해야"

변두리이긴 하지만 서울의 노지에서 바나나가 열렸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십중팔구는 "아무리 이상기후라고 하지만 서울에서 바나나가 열린다고?" 반문할 것이다. 이 중 상당수는 싱거운 농담이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실제 필자가 가꾸는 노원구 주말농장에는 바나나 나무에 바나나가 열렸다. 단언컨대, 진실이다.

서울 노원구 불암산 주말농장, 열매 열린 바나나 나무. / 도시농부 오영록

바나나 나무에서 바나나가 열리는게 무슨 신기한 일이 될까 싶지만 그곳은 바나나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난방 시설이 갖춰진 바나나 농장이 아니다. 단지 불암산 자락에 위치한 평범한 주말농장의 맨땅일 뿐이다. 바나나 나무에서 바나나가 열린 게 신기한 일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필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농사일 체험을 지도할 때면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해 수없이 얘기하며 걱정했다.

당시 웃자고 한 얘기였지만 지구가 점점 더워지면 우리가 사는 서울의 뒷산에서 바나나가 열리고 침팬지가 돌아다닐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바나나가 열리는 일은 현실이 돼 버렸다. 아직까지 침팬지는 보지 못했다.

사실 필자와 동료들이 바나나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도시농부라면 누구나 가질법한 '지구 온난화로 한국도 기온이 상승하니 노지에서도 바나나가 자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필자만의 호기심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동참하는 동료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마침내 필자가 속한 ‘노원도시농업네트’에서 같이 활동하는 한 추진력이 강한 동료가 바나나 나무를 가져다 농장에 심었다.

그렇게 심어진 바나나는 처음 몇 해 동안은 잎만 무성하게 자라다 날씨가 추워지면 고사하는 일을 반복했다. 남겨진 자식 순은 온실로 들어 갔다가 다음 해 날씨가 따뜻해지면 노지에 다시 심어지곤 했다.

노지에 심어진 바나나 나무 줄기. /도시농부 오영록

어미나무에 열매가 맺히게 하는 것은 몇 해 동안 어려운 숙제였다. 그러다 3년 전 바나나 나무에 처음으로 꽃이 맺혔다. 처음에는 바나나 꽃이 워낙 크고 활짝 피지 않아 그냥 바나나 잎인 줄 알았다. 시간이 흘러 잎과 색이 달라 이게 바로 바나나 꽃이구나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바나나꽃은 꽃잎이 벌어질 때마다 그 곳에서 우리가 마트에서 흔히 사 먹는 바나나 한 뭉치가 생긴다.

안타깝게도 첫번째 바나나 꽃은 한 여름이 지난 때여서 바나나 열매 모양만 보여주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럼에도 아무런 난방시설이 없는 노지에서 바나나 나무에 열매가 맺혔다는 사실은 세간의 관심거리였다. 모 방송국에서는 이 모습을 촬영해 방송했을 정도다.

그 이후 한 동안 꽃조차 피지 않더니 드디어 올해는 6월 중순 꽃이 피었다. 바나나 열매도 열렸다. 필자와 동료들은 아! 드디어 바나나 열매를 올해는 볼 수 있겠구나하는 마음에 환호성을 질렀다.

환호의 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 '이게 기뻐해야할 일인가?' 싶었다.

수 만년 동안 유지된 온대기후가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있다는 방증인데 이것을 좋아해야 하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환경이나 기상학에 문외한인 필자 입장에서는 지구 온난와의 원인을 인간이 제공한 것인지 아니면, 돌고도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뜨거워지는 것인지 명쾌히 설명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한국의 기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기후가 달라지고 있고 그 방향이 인간의 생존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의 역사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기록이라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도 지구의 역사는 적응하면 생존하고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적응의 역사이다.

우리 도시농부들도 이 변화를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적응을 모색해야 한다.

강남 주택 옥상에서 자라는 사탕수수. / 도시농부 오영록

사실 필자와 필자와 함께 하는 도시농부들은 오래전부터 아열대 작물에 관심을 가져 왔다. 그 중 하나인 하늘나무 박기홍 메이커는 서울 강남에 있는 자신의 집 옥상에서 다양한 열대작물을 기르고 있다.

그는 일부러 전문적인 재배 시설을 갖추지 않았다고 했다. 바나나 뿐만 아니라 낑깡, 대추야자, 두리안, 무화과, 사탕수수, 아보카도, 열매마, 패션프루츠 등 키우는 작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곳에서 수확하는 사탕수수나 패션프루츠는 이 집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이라고 했다.

주말농장 동료가 서울 강남 주택 옥상에서 키운 패션 프루츠. / 도시농부 오영록

점점 뜨거워지는 대한민국의 환경문제는 분명 심각한 상황이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공동의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대승적으로는 환경정책을 꾸준히 모니터링을 하면서 더워지는 원인을 해소하는데 시민으로서 가능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승적인 관점에서는 도시농부들이 변화하는 기후에 맞게 작물이 어떻게 적응하는지에 대해 연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필자와 동료들은 이를 '복원'과 '적응' 투트랙 전략이라고 부른다.

둘 다 쉽지 않을 일임이 분명하다. 인간은 자연의 힘 앞에 보잘것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지금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호하려는 노력과 함께 적응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