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 '돌봄', 가장 높은 곳에 '비판'…성직 위의 성직 '만인의 아버지'

김고금평 에디터 2025. 4. 2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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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방문 중 충북 음성 꽃동네를 들러 장애아 70여명과 만났다.

1989년 요한 바오르 2세 방문 이후 25년 만에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로 상처받은 한국 국민의 마음을 대통령 대신 어루만지며 연일 위로와 감동의 본질이 무엇인지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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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의 열화일기]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한국에서 보여준 '특별한 감동과 휴머니즘'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나흘째인 지난 2014년 8월17일 오후 충남 서산 해미읍성에서 봉행되는 가톨릭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입장하며 잠시 차를 멈추고 한 아이를 축복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방문 중 충북 음성 꽃동네를 들러 장애아 70여명과 만났다. 일정상 몇 명하고만 악수를 나눠야 했지만, 교황은 일일이 인사하고 악수했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이 때문에 다음 일정이 늦어졌지만 우리 입장에선 이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이어진 한국 수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청빈 서원을 하지만 부자로 살아가는 봉헌된 사람들(수도자)의 위선이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망친다"며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교황의 태도는 늘 한결같았다. 그곳이 바티칸이든, 한국이든 세계 어디든 낮은 곳과 높은 곳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에 따른 적극적인 행동을 놓지 않았다. '빈자의 성직자'라는 새김은 교황이기에 받아야 할 마땅한 명찰이 아니었다. 낮고 부족하고 힘없는 이들에겐 한없는 사랑과 관심을, 허세와 권세를 앞세우는 부자 고위직엔 가감 없는 비판을 던지는 이가 교황 프란치스코였다.

그는 '안정적인 권위'를 행사하는 대신, '고난의 행군'을 자처했다. 최초로 시작해 최고의 찬사를 받았던 과정과 결과들이 이를 증명한다. 최초의 남미 출신이자 예수회 출신, 여성과 무슬림을 배제하지 않고 성소수자까지 끌어안은 최초의 교황. 고급 리무진 대신 소형차를 타면서 교황청 내 전용 숙소도 마다한 '검소하고 겸손한' 성자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23년 8월 4일 포르투갈 리스본의 교구 센터에 도착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AFPBBNews=뉴스1


1989년 요한 바오르 2세 방문 이후 25년 만에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로 상처받은 한국 국민의 마음을 대통령 대신 어루만지며 연일 위로와 감동의 본질이 무엇인지 일깨웠다. 세월호 리본을 단 교황을 향해 어떤 이가 '중립'을 위해 떼는 게 좋겠다고 제안하자, 교황은 "인간의 고통에 관해서 중립적일 수 없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고, 이는 곧 고통에 대한 인간(혹은 신의 대리인)의 해석은 정치적이거나 논쟁적이거나 철학적인 영역이 아닌, 오로지 '마음'의 인식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당시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많은 이들이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교황께서 직접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는 없어도 '알고 있다. 잊지 않고 있다' 이 한마디로 온 국민에 큰 감동을 줬다고 생각한다."

한국 방문 4박 5일 99시간 동안 교황은 아침부터 밤까지 19개 일정을 소화했다. 위로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반복해 부탁했다. 가난한 자와 약한 자들이 품위를 지닌 인간으로 동등하게 존중받으며 살아가도록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자신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온몸으로 증명하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선종했다. 향년 88세. 사진은 교황이 2013년 11월 6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일반 알현에서 신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AFPBBNews=뉴스1


교황은 '검소함'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증명했다. 방한 내내 기아차 '쏘울'을 탔고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는 '빨간 구두' 대신 아르헨티나 고향의 작은 구둣방에서 산 '검은 구두'를 신고 14년 전 50달러(당시 한화 5만1000원)를 주고 산 플라스틱 스와치 시계를 차고 방방곡곡 누볐다.

10여 전 한국 방문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건 언제나 한결같은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교황은 선종 전까지도 가난한 자, 없는 자, 약한 자와 가까이 있었고 "전쟁을 멈추라"며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호소했다.

교황이 몸소 보여준 감동의 말과 실천에 전 세계가 한목소리로 기도하며 바티칸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한동안 '모두의 아버지'를 잃은 고통에 가슴 시린 날들이 계속될 것 같다.

김고금평 에디터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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