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난민 맞잖아" 절박한데…왜 한국선 인정 안 되나
[편집자주]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한국. 누적 난민 인정률은 여전히 3% 수준이다. 일부 유럽 국가들의 10분의 1 정도다.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사례가 많아서다. 그 사이 진짜 '난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 난민 제도의 현주소와 나아가야할 방향을 짚어본다.
한국보다 앞서 난민법을 제정한 일부 유럽 국가 중에서는 난민 인정률이 50%가 넘는 곳도 있다. 3%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내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21일 유럽난민이주위원회(ECRE)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독일의 난민 신청 건수는 약 33만건으로 난민 인정률은 68%에 달한다. 통상 독일의 난민 인정률은 50~60%대 수준으로 시리아나 아프가니스탄 등 국적에 따라 난민 인정률이 90%대까지 올라간다.
독일은 연방이민난민청(BAMF)을 두고 지방자치단체와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난민들을 분산 거주·심사한다. 중앙 조직에 난민 업무가 집중돼 있지 않다는 뜻이다. 독일 연방이민난민청(BAMF)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난민 심사 평균 기간은 6~7개월이다.
네덜란드는 이민귀화청(IND)이 외국인과 관련된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법무부가 전담하는 한국과 달리 상대적으로 독립된 기구가 관련 업무를 맡는 셈이다. 항소 절차 시엔 행정심판위원회(ACVZ)를 통해 법적 판단이 나온다.
독립 기구가 난민 업무를 맡으면서 난민심사 평균 기간은 1심인 이민귀화청에서 6~9개월, 항소 시에 행정심판위원회에서도 6~9개월이 소요돼 신속하게 진행된다고 평가받는다. 난민 인정률도 1심에서 약 35%, 2심에서 20% 내외로 우리보다 높다.
캐나다는 독립기구인 이민난민위원회(IRB)가 난민 심사를 담당하고 있다. 난민보호과(RPD), 난민항소과(RAD), 이민과(ID), 이민항소과(IAD) 총 4개의 부서가 △난민인정 여부를 결정 △재심사 요구 △입국거부 또는 체류 부적격 판단에 대한 청문회 실시 △이의신청 심사를 나눠 진행한다. 이민난민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캐나다의 난민인정률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55~62%대 수준을 보인다.
캐나다엔 한국에 없는 제도도 있다. 난민신청이 거절된 이들이 추방 직전 마지막으로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절차인 '사전송환위험요소평가'(PRRA)와 '인도적 근거에 의한 체류요청'(H&C)이다.
사전송환위험요소평가 신청 시 퇴거명령은 자동으로 정지된다. 신청자가 본국에 돌아갔을 때 고문, 박해 등을 받을 위험이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며 결정이 날 때까지 강제 송환되지 않는다. 인도적 근거에 의한 체류 요청은 난민 신청이 거절됐더라도 개인적 사정, 아동의 복지 등을 이유로 캐나다에 계속 체류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제도다.
한국은 2012년 아시아 최초로 독립된 난민법을 제정했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르는 동안 난민 신청은 매년 늘었고 인정률은 계속 3% 아래에 머물러 있다. 반복되는 재신청, 브로커 개입, 심사 지연 문제까지 얽히면서 제도 전반의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법 개정 필요성에는 정부와 인권단체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방향을 두고는 입장이 극명히 엇갈린다. 정부는 난민 제도 악용을 막기 위한 규제와 심사 강화에 방점을 찍지만 시민단체는 인권 보호와 난민 심사 공정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난민심사를 체류 연장 수단으로?…"진짜 난민 피해 본다"
현행 난민법에는 재신청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다.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한 난민 신청이 거절돼 행정소송을 거쳐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되더라도 다시 정치적 박해를 이유로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난민 신청자는 본국으로 강제송환이 금지되고 국내 체류자격을 갖게 되기 때문에 이 같은 허점을 노려 난민 심사 제도를 체류 연장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지적이 오래 제기돼왔다. 난민 신청을 해두고 자유롭게 본국을 방문하는 경우에도 이를 제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2012년 9월 단기종합(C-3) 자격으로 입국한 A씨의 경우 2013년 최초 난민 신청 이후 6번이나 난민 신청을 반복하면서 10년 넘게 국내에 체류 중이다. 이처럼 6번 이상 난민 재신청을 한 사람이 6명이나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정부는 2021년 12월 난민 불인정 결정을 받은 사람이 재신청을 할 경우 적격심사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난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적격심사 결과 중대한 사정변경이 없어 부적격 결정을 받은 경우 난민 신청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대상자는 행정심판 청구를 할 수 없도록 했다. 2023년 3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치열한 토론이 이뤄졌지만 끝내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다.
부적격자의 난민 신청을 부추기는 난민 브로커 문제도 빠른 해결이 필요하다. 난민법에는 난민 신청자가 거짓 서류를 제출한 경우 처벌하는 규정이 있지만 허위, 부정의 난민 신청을 알선하거나 권유한 브로커들에 대한 처벌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이에 법무부가 부정한 방법으로 난민 신청을 권유한 자에 대해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한 난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지난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 난민심사 절차지원 강화…처우개선도 시급
인권 등을 고려해 난민을 적극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인권단체들은 난민 신청·심사 과정에서 통역·변호인 조력 같은 절차적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행 난민법은 난민 면접 시 당국이 통역을 제공하게 돼 있지만 난민 신청서 등을 접수할 때는 통역을 제공할 법적 근거가 없어 신청자가 신청 단계부터 자신의 박해상황을 충분히 주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심사 과정에서 변호인 조력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난민법 제정 초안엔 국선변호인 선임 관련 내용이 포함됐지만 예산 문제로 해당 조항이 삭제되면서 대부분 신청자가 별다른 조력 없이 난민 심사에 응하고 있다고 한다.
난민 심사의 전문성과 신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난민심판원 같은 상설화된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법무부의 1차 심사 결정에 불복하는 경우 난민위원회가 소집돼 해당 이의신청에 대한 심의·의결을 한다. 하지만 회의 때만 모여 심사 속도가 느리다. 상설기구인 난민심판원을 설치하면 심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난민에 대한 열악한 처우개선도 자주 거론된다. 현재 난민신청일로부터 6개월 이내엔 생계비를 지원하고 그 이후부터는 제한적으로 취업을 허가하고 있다. 난민 신청자는 난민심사가 종료될 때까지 국내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난민 신청자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한부모 가정, 노인, 장애인 등 난민 신청자에 대해선 생계비 지급을 의무화해야 한다"며 "다만 생계비 관련 예산이 무한정 확대될 수 없기 때문에 난민 신청자에게 취업 기회가 더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난민 신청자의 △소득 △재산 △부양가족 등 선정기준에 따라 심사를 거쳐 생계비를 지급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생계비 신청자 대비 선정 비율은 54%다. 법무부는 난민 신청자 수 증가추세를 감안해 올해 생계비 예산을 9억1600만원으로 전년 대비 3억4800만원 증액 편성했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는 국민 인식을 바꾸기 위해 난민 중 숙련 노동자를 수용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최원근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제사회 흐름 중 하나가 연구자, 학생 등 전문적 기술이나 학식 있는 난민들을 숙련 노동자로 수용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라며 "난민 수용이 한국 사회에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난민 문제에 대한 시민들 의견은 첨예하게 갈린다. 인구 문제 해결 등을 위해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 자국민의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 "인권 보호해야 한다" vs "안보·범죄 문제 심각해질 것"
법무부가 지난해 4∼5월 전국 1200명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6명은 난민을 '도움을 줘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이 난민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60%에 달했다.
그러나 난민 수용 여부에 대해서는 45.8%만이 찬성한다고 답했다. 난민 수용 여부에 반대 의사를 표현한 사람들은 39.2%였다. 잘 모르겠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15%로 나타났다.
난민 수용 찬성 측은 △난민 인권 보호 △난민 협약 가입국으로서 이행 △노동력 확보, 세수 증가 등 경제적 효과 등을 이유로 들었다.
직장인 최모씨(20대)는 "할머니가 농사를 지으셔서 직접 봤는데 농촌에 일손이 너무 부족하다. 난민을 수용하면 고령화된 농촌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도 세계 도움을 받았고 재건 때도 그랬다. 난민을 수용해서 과거 받은 은혜를 되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30대 여성 구모씨도 "난민은 어쩔 수 없이 한국에 오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 잘 적응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며 "지방은 사람이 없어서 일할 사람이 없다는데 난민도 잘 정착하면 서로 좋은 것 아닌가"라고 밝혔다.
반대 측은 △사회문제(국가 안보 및 범죄 등) 우려 △문화·종교 차이로 인한 갈등 △경제적 부담 등을 근거로 꼽았다.
30대 김모씨는 "경제활동 인구가 줄면서 외국인을 받는 것은 불가피하다. 다만 굳이 난민을 들일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며 "난민보다 한국이 원하고 한국을 필요로 하는 외국인을 받는 게 낫다. 또 우리나라는 문화가 보수적이라 난민 수용시 차별 문제를 피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모씨(20대)는 "한국에 난민이 들어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선진국으로서 인도적 차원에서 수용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일본도 난민을 거의 안 받고 있지 않나. 차라리 국내 복지 사각지대 지원 확대에 난민 관련 자원을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 '단일민족' 한국, 난민 컨센서스는 언제?
전문가들은 난민에 대한 무관심과 경험 부족 때문에 사회적 컨센서스(합의)가 아직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법무부 설문조사에 따르면 54.4%가 난민에 대해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고 답했다. 난민 문제에 무관심한 것으로 해석된다.
난민 신청이 급증하는데 현행 제도로는 한계가 뚜렷이 보이고 있는 만큼 조속한 시일 내에 관련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회교학과 교수 겸 통일융합연구원장은 "한국도 다민족 국가로 가고 있지만 아직 한국인에 대한 정체성이 굉장히 강하다. 단일민족에 대한 익숙함,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다양성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나 규범적으로 제고해야 한다. 공청회, 설명회 등의 모임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아직 큰 이슈가 되지 않고 있지만 미리 이야기를 해놓을 필요가 있다"며 "정부나 시민사회가 선도해서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난민 문제를 대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혜수 기자 esc@mt.co.kr 조준영 기자 cho@mt.co.kr 민수정 기자 crystal@mt.co.kr 박상혁 기자 rafand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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