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지배구조] DB손해보험, 오너家 캐시카우로 지주사 전환용 실탄 창구 전락

이학준 기자 2025. 4. 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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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창업회장, 경영 물러났지만 승계는 아직
DB손보, 최근 3년간 오너 일가에 1350억 배당
밸류업 일환으로 배당 규모 매년 확대될 듯
DB손보서 마련한 실탄으로 지주사 전환 돌파하나
김남호 DB그룹 회장. /DB그룹

DB그룹 금융 계열사의 지주회사 격인 DB손해보험이 오너 일가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 김준기 창업회장과 장남 김준기 DB그룹 회장, 장녀 김주원 DB그룹 부회장이 최근 3년 동안 DB손해보험에서 받은 배당금만 13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너 일가가 DB손해보험을 통해 충분한 현금을 확보한 만큼, DB그룹의 최대 현안인 지주사 전환에 직접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DB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려면 최소 2000억원이 넘는 비용이 발생한다. DB그룹은 지금껏 여러 차례 지주사 전환을 통보받았지만, 물적 분할 등을 통해 이를 회피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오너 일가 지배력 공고하지만…경영권 승계 아직

22일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DB그룹의 지배 구조는 금융 계열사와 제조업 계열사 두 갈래로 나뉜다. 이 중 금융 계열사의 최상위 회사는 DB손해보험이다. 김준기 창업회장이 DB손해보험 지분 5.94%, 김남호 회장이 9.01%, 김주원 부회장이 3.15%, DB김준기문화재단이 5%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DB손해보험은 DB생명보험·DB금융투자·DB캐피탈 등 금융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어 DB손해보험만 지배하면 모든 금융 계열사를 간접 지배할 수 있다. 오너 일가 지분율은 23.1%이지만, 5% 이상 주주가 국민연금공단뿐이라 지배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평가다.

DB손해보험은 기업 가치 제고(밸류업)를 위해 배당을 확대하며 오너 일가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4082억원(주당 6800원)을 배당했다. 이 배당으로 김준기 창업회장은 286억원, 김남호 회장은 433억원, 김주원 부회장은 151억원을 챙겼다. 세 사람이 받은 배당금은 2022년 589억원, 2023년 679억원, 지난해 871억원으로 최근 3년 동안 1350억원에 달한다. DB손해보험의 올해 목표 주주 환원율이 지난해(23%)보다 높은 35%라는 점을 고려하면 오너 일가가 받아갈 배당금이 한 해에 1000억원을 웃돌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래픽=손민균

하지만 경영권 승계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론상 김준기 창업회장이 DB김준기문화재단이 보유한 DB손해보험 지분 5%를 넘겨받으면, 김준기 창업회장이 최대 주주(10.94%)가 되기 때문이다. 김남호 회장이 금융 계열사 경영권을 완벽히 확보하려면 지분을 추가로 물려받아야 한다.

올해 80세인 김준기 창업회장이 계열사 지분을 늘리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김준기 창업회장은 2022년 DB김준기문화재단으로부터 제조업 계열사의 지주사 격인 DB Inc 지분을 넘겨받았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기준 김준기 창업회장의 DB Inc 지분율은 15.91%로 김남호 회장(16.83%)과 큰 차이가 없다. 금융 부문뿐만 아니라 제조업 부문도 경영권 승계가 끝났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당시 시장에서는 김준기 창업회장과 딸 김주원 부회장이 손을 잡고 지분 싸움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DB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철저히 준비된 과정이라기보다 위기 대응의 한 방편이었다. 김준기 창업회장이 2017년 가사도우미 성폭행 혐의 등으로 사임하면서 급작스럽게 세대교체가 단행된 것이다. DB그룹은 이근영 당시 동부화재 고문을 회장으로 세워 전문 경영인 체제를 유지하다, 2020년 김남호 회장 취임을 계기로 2세 경영을 시작했다.

◇ DB손보에서 마련한 실탄, 지주사 전환에 사용될까

DB그룹의 제조업 계열사도 오너 일가의 지배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 제조업 계열사의 최상위 회사는 오너 일가 지분율이 42%인 DB Inc다. DB Inc는 시스템 반도체 회사 DB하이텍 지분 18.6%를 보유한 최대 주주이고, DB하이텍은 DB글로벌칩·동부철구·DB기술·DB메탈 등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문제는 DB그룹이 언제든 지주사 전환을 통보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법상 별도 기준 자산 총액이 5000억원 이상이면서 자회사 지분가액 합계약이 자산 총액의 50% 이상인 경우 지주사로 강제 전환된다. DB Inc의 자회사인 DB하이텍 주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상승하면, DB Inc가 지주사로 전환된다는 뜻이다.

지주사로 전환되면 지주사는 2년 이내에 자회사인 DB하이텍 지분을 30% 이상 보유해야 한다. DB Inc가 DB하이텍 지분 약 12%를 추가 매입해야 하는 것이다. DB하이텍 시가총액이 1조7800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못해도 2100억원이 넘는 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DB Inc의 현금성 자산은 700억원 수준이다.

DB하이텍 부천캠퍼스. /DB하이텍

이 때문에 DB그룹은 지금껏 지주사 전환을 고의로 회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DB그룹은 2021년 지주사 전환을 통보받자 DB하이텍의 설계 사업부를 자회사로 물적 분할했다. 이로 인해 DB하이텍 주가가 급락하면서 지주사 전환 요건에서 벗어났다. 주주들 사이에서는 DB하이텍 주가를 인위적으로 눌러 지주사 전환을 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DB그룹은 지난해 5월에도 지주사 전환을 통보받았으나, DB하이텍 주가 하락으로 다시 요건에서 제외됐다.

일각에서는 오너 일가가 DB손해보험을 통해 충분한 현금 흐름을 마련한 만큼, 지주사 전환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너 일가가 직접 자금을 투입해 DB하이텍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DB Inc가 유상증자를 단행하고 오너 일가가 이에 참여하는 방법 등이 거론된다.

오너 일가가 회사에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2015년 DB메탈이 워크아웃 체제로 접어들자, 김남호 회장은 경영 정상화 협약에 따라 571억원의 유상증자 중 353억원을 부담했다. 김남호 회장은 DB메탈에 빌려줬던 100억원을 주식으로 돌려받는 대여금 출자 전환에도 나선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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