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패럴림픽 국대’…스톤 부부, 미션 파서블?

김양희 기자 2025. 4. 2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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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한 인터뷰] 휠체어컬링 정태영, 조민경
휠체어컬링 정태영, 조민경 부부.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그러니까 둘의 성격은 참 달랐다. 한쪽은 과묵하고 장기 두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한쪽은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더 잘 어울린다”고 했다. 특히 얼음 위에서는 더 잘 맞는다. 차분하게 경기를 분석하는 이가 있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는 이가 있다.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 이들은 지난 2월 끝난 전국겨울장애인체전 휠체어컬링에서 2인조(믹스 더블), 4인조(혼성 단체) 경기 금메달을 따냈다. 더불어 대회 최우수선수(MVP)로도 뽑혔다. 4월초 경기 이천선수촌에서 만난 정태영(54)-조민경(50·이상 창원시청) 부부다.

정태영은 2000년 일을 하다가 낙상 사고를 당했다. 하루아침에 몸 상태가 달라지면서 3~4년은 방황했다. 그의 표현으로는 “피씨(PC)방에서 라면 먹으면서 게임만 했다.” 그러다가 휠체어탁구를 접했고, 경남 탁구 1인자로 우뚝 섰다. 2007년 창원에 휠체어컬링팀이 만들어지면서 탁구와 컬링을 병행했다. “정적인 것을 좋아해서” 컬링과 더 맞는 것도 있었다. “수읽기가 재미있어서” 점점 빠져들었고 점차 성적도 나기 시작했다. 정태영은 “장기처럼 상대의 수를 미리 읽어서 이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게끔 작전을 짜는 게 컬링의 매력”이라면서 “단순하게 보이지만 복잡하다. 경기 도중 얼음 상태도 변하는데 상대는 그것을 못 볼 때가 있다”고 했다. 조민경은 “경기 복기를 잘하는 사람이 스킵일 수밖에 없는데, 남편은 한 엔드, 한 엔드 다 계산해서 경기한다”고 했다.

조민경은 낙상 사고로 29살(2003년)부터 휠체어를 탔다. 재활병원에서 2년간 있다가 수영 등을 시작했다. 휠체어컬링은 경기장이 춥기 때문에 힘들어서 여성의 경우 중간에 많이 그만 둔다. 하지만 팀마다 반드시 여성 1명은 포함돼 있어야만 한다. 정태영과는 2013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함께 컬링을 하면서 “부부라서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컬링 부부가 4팀 정도가 있으나 당시에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주변의 시선이 달랐다. 그래서 2018 평창겨울패럴림픽이 끝나고 2년 정도 운동을 쉬기도 했다. 그래도 쉬면서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도 땄다고 한다.

정태영-조민경 부부는 지난해 3월 강릉에서 열린 세계휠체어믹스더블컬링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장애인, 비장애인 컬링 종목 통틀어 세계선수권에서 우리나라가 우승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정태영은 “사실 세계선수권 전 전국체전 때 예선 탈락을 했었다. 복기를 하고 또 하고, 팀원들과 대화를 계속했다. 그런 뒤에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다. 떨어지고 나면 발전을 하더라”고 했다. 조민경은 “경기에서 지면 남편이 집에 일거리를 잔뜩 들고 온다. 계속 영상을 돌려본다”면서 “컬링을 하다 보면 온도, 습도 같은 변수가 많아서 얼음이 무생물이 아니고 생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남편이 계속 얼음을 관찰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휠체어컬링 조민경, 정태영 부부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면서 웃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아찔했던 경험도 있었다. 2023년 휠체어컬링리그 플레이오프 믹스더블 1위 확정 경기 때 온몸에 핫팩을 붙이고 나섰는데도 5엔드 때 조민경의 몸이 전혀 안 움직였다. 경기 도중 기권을 하고 경기장 밖으로 나오자마자 곧바로 기절했다. 응급실에 가서 검사를 받으니 체내 염증 수치가 너무 높았다.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두 번째 경기에 나섰지만 스톤을 미는 힘이 없어서 졌다. 그나마 다음날 컨디션이 80% 정도 회복되어 경기에서 이겼고, 국가대표도 될 수 있었다. 조민경은 “선발전 때 나 때문에 떨어질까 싶었던 터라 국가대표 선발되고 많이 울었다”면서 “아파보니까 그다음부터는 조심하게 됐다. 이제는 항생제도 미리 준비한다”고 했다.

정태영-조민경 부부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겨울패럴림픽 믹스 더블 출전권을 노리고 있다. 국내 경쟁자들이 많지만 자신이 있다. 정태영은 “무조건 1등을 하겠다”면서 “예전에는 패럴림픽이 막연한 꿈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안 가면 누가 가’ 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내 것만 보여주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조민경은 “내 것을 못할까 봐 하는 불안감은 있지만 자신감은 있다”고 했다. 믹스 더블은 단체전과 달리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가 된다. 정태영은 “믹스 더블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면서 “미리 포기하지 않고, 차근차근히 해 가면서 샷을 잡아가면 된다”고 말했다.

조민경은 휠체어컬링에 대해 “사랑”이라고 했다. “한동안 외사랑이었는데, 이제는 마음을 열어주는 진짜 사랑이 됐다”고 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와서 더 그렇다. 정태영은 현실적으로 “노후 대책”이라고 표현했다. “컬링을 해서 실업팀에 들어갈 수 있었고, 외길로 계속 달려오다 보니 보상도 주어지고 명예도 생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지켜야 할 것도 많아졌는데 둘이서 함께할 수 있는 노후대책도 된다”며 지긋이 아내를 바라보며 “나만 믿고 따라와”라고 했다.

얼음 위 스톤은 조금만 계산이 틀려도 다른 방향으로 간다. 인생도 그렇다. 그럼에도 만회할 스톤이 남아 있다면 희망은 늘 있다. 하나가 아닌 둘이어서 희망은 더 커진다. 조민경은 “어쩌면 컬링은 구루(GURU·힌두교, 불교 등의 종교에서 스승을 일컫는 용어)인 것도 같다. 우리에게 가르침을 많이 준다”면서 “좌절도 주고 기쁨도 주고 친구도 만들어준다. 겸손을 가르쳐주기도 한다”고 했다. 그간의 모든 희로애락을 품고 스톤을 하우스(스톤 타깃 지점) 안으로 굴리고, 또 굴리는 조민경-정태영 부부였다.

이천/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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