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뭐 친정 나들이인가 싶었다 [양희은의 어떤 날]

한겨레 2025. 4. 2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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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양희은 | 가수

“그러게, 확실히 사위는 손님이야!!! 미국서 사위가 와서 무얼 해먹이나 하고 장을 보는데 세상에 우리 갈치가 5만8000원인데 살도 두텁지도 않은 것이 값이 그래. 거기다 갈비찜 곁들이니 한끼 상차림에 30만원이 나가더라고~ 세상 도라지, 고사리도 비싸던데 잘 먹더라고. 잘 먹는 걸로 됐지.”

이번에는 노화도에서 부모님 모셔와서 근처에 모여 사는 어린 친구가 받아 이어가기를 “외가 친척이 철마다 이것저것 챙겨 보내는데 생김하고 쑥을 보냈더라고.” “어머, 쑥국 끓였겄네~.” “그치, 된장 약간 풀어 바지락 잔뜩 넣고 끓이니까 너무 맛있더만. 아부지가 이 맛이지, 이게 고향의 맛이다 하시더만. 날김을 갖고는 김국을 끓이는데 쑥국처럼 옅게 된장 풀어서 끓여. 마지막에 참기름 몇방울 떨구면 아주 맛나. 여하튼 어른들 얼굴이 피셨어. 철에 맞게 고향의 맛을 잡수시니까 웃음꽃이 피어~.”

부천 원미산 진달래, 서울 응봉산 개나리, 뒤늦게 4월 하순께 흐드러진다는 서산 개심사 왕벚꽃나무 등등 꽃구경 많이도 다니나 보다. 냉이 캐러 나갔더니 길가엔 냉이 천지인데 산기슭에 거의 없더라 하니 길가엔 개들도 볼 일 보고 자동차 매연 때문에 안 캐니까 많은 거라고 설명해준다. 봄은 심술궂다. 좀 쉽게 와주면 안되니? 꽃 얘기 상차림 얘기가 무성했는데 4월 중순 접어들어 주말에 이삼일 비바람으로 꽃구경도 지나갔다.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인간 세상에서 무엇이 그리 오래 세세토록 있을 것이냐?

늘 얘기하지만 방송스튜디오 안에서 애청자분들이 보내주시는 사연과 사진으로 꽃구경을 대신했지만 올해 나는 원 없이 꽃구경을 했다. 제주4·3희생자추모기념행사에서 노래를 청해서 4월2일 해지기 전 부지런히 제주 도착, 리허설을 마쳤다. 숙소로 가는 길 탐스러운 벚꽃 그늘 아래 행복했다. 꽃 좋아하시던 엄마 생각!

휴일 동생 희경이랑 느닷 없는 강화 나들이–뜬금 없이 눈보라가 치던 날이었다. 발효시킨 쑥으로 여러가지 떡을 만드신다는 분을 찾아 나섰다. 본인이 아팠던 터라 아픈 이들을 위해 혼자서 소량이지만 만드신단다. 거피한 녹두소와 흑임자소를 넣은 송편 두가지. 호박고지와 서리태를 잔뜩 넣은 쑥설기, 쑥개떡 등을 사고 금방 만들어 따뜻하길래 떡집에 앉아 맛보았다. 쑥향이 가득한데 건강차까지 건네신다. 우와! 깊은 맛이 일미였다. 떡장수처럼 떡을 사서 이고지고 마니산방으로 향했다. 옛날 개성상인의 고택을 3년에 걸쳐 수리했다니 끈기가 대단하다. 콩기름 먹인 옛날 장판, 방안의 온기와 콩기름 냄새까지 그윽한 데다, ‘사랑’이라는 개까지 낯설지 않고… 순무김치랑 청계초란, 찐 고구마를 선물로 받으니 나이 먹고 누군가에게 선물 받기가 객쩍었지만 거절하기도 뭐해서 받았다. 여하튼 마니산방 주인 덕에 짧은 반나절에 맛집을 일곱 군데나 돌았다. 방앗간 구경도 했는데 고춧가루에 떡국떡, 참기름까지 선물하시니 이건 뭐 친정 나들이인가? 싶었다. 마침내 온수길에서 만난 독일서 공부했다는 빵집 주인!!! 정직한 원칙대로 빵과 케이크를 굽는 사람이었다. 여고 시절 명동서 일하는 엄마께 가면 늘 아메리칸파이하우스에서 레몬파이를 사주셨다. 가끔 어딜 가면 그런 옛맛을 찾을까? 했는데 바로 그곳에서 앙증맞은 레몬파이를 만났다. 감격 그 잡채!!! 자기 일에 진심인 몇분을 만난 덕에 짧은 강화 나들이가 위로가 되고 힐링이 되었다.

한번 바람이 드니까 들썩이다 내친 김에 두 동생과 짤막한 1박2일 아닌 1박1일 정도의 군산 소풍을 떠났다. 엄마 떠나신 지 1년3개월이 지났는데 딸 셋이 속 얘기를 터놓은 적이 없었다. 엄마는 애면글면 자식바라기도 아니셨지만 살갑게 치마폭에 감싸주시거나 보듬어주시질 않으셨다. 하루에도 두서너번씩 엄마와 전화하던 막내의 허전함은 말해 무얼 하겠나? 가는 길에 우린 주로 막내의 얘기를 들었다. 희경의 지인이 맛집과 숙소예약까지 도맡아주어서 시간도 많이 아꼈다. 일단 호사스럽지 않은 찐맛집 추천을 부탁했고, 짬뽕 골목 안의 짬뽕집, 오징어무국에 대야 오일장 구경까지 더 이상 바랄게 없는 일정이었다. 오일장 안에는 심봉사가 먹다 너무 맛나 눈을 번쩍 떴다는 장터짜장, 옛 햄버거를 파는 빵집도 있었으나 배가 불러서 지나쳤다. 제일 아쉬운 건 고구마순 감자탕을 맛보지 못한 것. 여행길에 다시 오자는 약속은 지키기 어렵더라. 우리 셋은 자투리 시간에 운전 거리 짧은 근교여행을 약속했다. 한달에 한번 내지는 두달에 세번… 알뜰살뜰한 소풍이었다. 특히 새로 지은 호텔에선 새집 냄새도 없었고 조용하고 깔끔해서 잘 쉬었다. 역시 여행은 누구랑 떠나서 어디 묵고 무엇을 먹느냐, 그리고 날씨가 다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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