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년전 오늘] "차비 3000원이 없어서" 대전 다방 살인사건의 전말
"차비가 없어서 그랬습니다."
18년 전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던 강력 범죄자가 만기 출소 2년 만에 더 무서운 괴물이 돼 돌아왔다. 10대 시절 아이와 할머니를 가리지 않고 성폭행하고 살해한 연쇄살인마는 30대가 돼서도 욕망을 참지 못하고 인간이길 포기했다. 범행 동기는 영등포로 갈 차비 단돈 '3000원'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2명의 여성을 칼로 찌르고 달아난 범인
2007년 4월 15일 일요일 오전 8시 40분쯤, 대전 대덕구 신탄진동의 한 건물 지하 다방에서 40대 여성이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망한 A 씨(당시 47세)는 다방 종업원으로 영업 준비를 위해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돈을 훔치기 위해 다방으로 들어온 범인과 마주쳤고, A 씨는 곧바로 "도둑이야!" 비명을 지르며 화장실로 도망갔다. 범인은 A 씨를 쫓아가 미리 준비해 둔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피해자의 시신을 훼손하며 죽음을 확인했다.
얼마 뒤 또 다른 종업원 B 씨(당시 45세)가 다방에 출근했다. B 씨는 A 씨가 보이지 않자 이상함을 느꼈고, 그 순간 범인과 눈이 마주쳤다. 범인은 순식간에 B 씨의 배를 흉기로 찔렀다. B 씨가 쓰러지자, 범인은 다방 카운터에서 돈을 훔쳐 달아났다. 급히 달아나던 범인은 다방에 커피를 마시러 방문한 단골 남성과 어깨를 부딪쳤으나 아무도 그가 살인사건의 범인임을 알아채지 못했다. 단골 남성은 다방 앞 길가에 피범벅으로 쓰러져있던 B 씨를 발견하고 구급대에 신고했다. 당시 B 씨는 탈장까지 될 정도로 복부를 깊게 찔렸다. B 씨의 손에는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칼이 쥐어져 있었다.
◇범인의 몽타주와 기억을 잃은 피해자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현장 조사와 목격자 증언 등을 통해 범인의 몽타주를 만들었다. 30대 후반 가량에 175㎝의 키, 스포츠형 머리, 검정 테 안경의 모습으로 범인의 몽타주가 만들어졌다. 경찰은 특별수사팀을 구성, 범인을 쫓기 시작했다. 경찰은 사건 현장인 다방에서 100여 점의 증거물을 수집해 대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감정 의뢰를 맡겼다. 그러나 다방 내 증거물에서는 피해자들의 DNA만 발견됐을 뿐,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는 DNA가 나오지 않아 그렇다 할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다.
경찰은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B 씨에게 범인의 생김새를 물었으나, B 씨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B 씨의 증언에 따르면 칸막이 뒤에 숨어있던 남자가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배를 칼로 찔렀고, 범인과 몸싸움을 한 B 씨는 범인의 칼을 뺏었다. B 씨가 범인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키가 보통이란 것뿐이었다.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사건 당시의 기억이 사라진 것이다. 경찰은 범행 수법의 대범함과 잔인함 등을 고려, 우발적 살인이 아닌 원한 관계가 있다고 보고 면식범 등 주변 인물을 조사했으나 그럴듯한 단서가 나오지 않아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루미놀 검사와 최초의 성씨 추적
결정적인 증거는 사건 현장 밖에서 발견됐다. 다방에서 500m가량 떨어진 뒷골목에서는 피 묻은 휴지가 발견됐으며 1.5㎞ 떨어진 금강천변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 색 점퍼가 발견됐다. 이미 흐르는 강물에 점퍼에 묻은 피는 지워졌으나, 경찰은 루미놀 검사를 통해 점퍼에서 혈흔을 발견했다. 발견된 혈흔은 총 3개였다. 앞쪽 혈흔은 남성의 DNA로 휴지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했다. 소매 끝 혈흔은 여성의 DNA로 사망한 A 씨의 혈흔이었으며, 안감에선 남성과 여성의 혼합 혈흔이 발견됐는데, 이는 휴지에서 발견된 남성의 DNA와 피해자 A 씨의 혈흔이 혼합된 것이었다. 경찰은 점퍼의 주인인 해당 남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2007년 당시에는 DNA 데이터베이스가 없었기 때문에 용의자의 DNA를 확보하더라도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어 다시 난항을 겪게 됐다.
결정적인 증거는 점퍼에서 발견된 안약이었다. 안약은 크라비트 점안액으로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만 구입이 가능한 전문의약품이다. 경찰은 전국 병원 기록을 추적, 포위망을 좁혀갔다. 사건 발생 19일째, 경찰은 전국의 점안액 구매자들의 명단을 확보했다. 문제는 크라비트 점안액의 구매자가 1000여 명이라는 사실이었다.
사건은 다시 미궁으로 빠지나 싶었지만, 국과수는 Y염색체의 특별한 성질을 이용한 새로운 분석을 시도했다. Y염색체를 이용해 범인의 성(姓)이 이 씨인지 김 씨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Y염색체는 남성에게만 존재하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유전된다. 국과수는 Y염색체의 유전적 지표(STR)를 분석해 공통점을 찾는다면 같은 성 씨일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국과수는 자체 보유하고 있던 동종 전과자 등 1000여 명의 Y염색체와 대조한 결과 범인의 Y염색체가 오(吳) 씨 성을 가진 2명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경찰은 사건 현장 인근에 오 씨 집성촌이 있는 것을 확인, 집성촌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추가 감정을 진행, 용의자가 오 씨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성 씨 추적이었다.
이후 경찰은 크라비트 점안액 구매자 중 오 씨 성을 가진 사람 50여 명을 추렸고,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후 25번째 오 씨인 '오이균'의 DNA가 용의자의 DNA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차비 단돈 3000원 때문에 저지른 잔혹 범죄
사건 발생 50여 일만인 6월 4일, 경찰은 경기도 광명시에 숨어있던 오 씨를 검거했다. 오 씨의 범행동기는 영등포로 갈 차비 단돈 3000원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범행 전날 오 씨는 충청북도 청원군 현도면의 아버지 묘소에 들렀다가 집으로 갈 차를 기다리는 동안 성인용 오락실을 방문했다. 오 씨는 성인용 게임에 빠져 막차를 놓치고 돈마저 떨어지자, 신탄진역에서 하룻밤 노숙 후 사건 당일 아침 차비를 구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렀다. 우발적 범행임에도 불구하고 범행 현장은 지나치게 잔인했으며, 오 씨는 시체를 훼손하며 성욕을 푸는 엽기적인 행동까지 보였다.
◇17살에 3명을 살해한 연쇄강간 살인범
오 씨의 정체는 10대 시절 2명을 강간하고 3명을 연쇄 살인한 연쇄 강간 살인범이었다. 오 씨는 1989년 1월 11일 충남 연기군 금남면의 한 야산에서 60대 여성 C 씨(69세)를 강간하고 흉기로 살해한 뒤 암매장했다. 같은 해 5월 24일에는 밭일을 하던 여성 D 씨(62세)를 위협해 강간한 뒤 살해했다. 3개월 뒤인 8월 12일, 오 씨는 알고 지내던 7살 E 양이 집 앞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자전거에 태워 뒷산으로 데려갔다. E 양을 강간하려고 했던 오 씨는 E 양이 큰 소리로 울자 발각될 것을 우려,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후 오 씨가 E 양을 자전거에 태우고 가는 것을 본 목격자가 나타나면서 오 씨는 검거됐다. 오 씨는 앞선 2건의 범죄도 시인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17살이었다. 오 씨는 연쇄살인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는데, 이는 당시 미성년자에게 내릴 수 있던 최대 형량이었다. 오 씨는 2005년 만기 출소해 사회로 돌아온 지 2년 만에 다방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
검찰은 백합다방 살인 사건으로 기소된 오 씨에게 사형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죄를 반성하는 점, 반사회성 성격장애와 품행장애를 앓는 점이 고려되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오 씨는 현재 대전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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