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어 문신으로 ‘反이슬람주의’ 드러낸 헤그세스 美국방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2025. 3. 3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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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이교도 뜻하는 ‘카피르’… “이슬람 혐오의 상징” 비판 커져
인도·태평양 지역을 순방 중인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하와이의 군사 기지에서 해군들과 운동을 하던 중 팔뚝의 새 아랍어 문신이 공개됐다. /X

미국 피트 헤그세스(45) 국방장관의 새 아랍어 문신이 공개된 후 논란이 일고 있다. 헤그세스는 기독교·백인 우월주의로 해석되기 쉬운 다양한 문신이 몸 곳곳에 있어 그간 논란을 일으켰는데 이번에 알려진 새로운 문신에 대해서도 반(反)이슬람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논란은 국방장관 취임 후 처음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을 순방 중인 헤그세스가 지난 25일 하와이 군 기지에서 해군 특수부대와 함께 훈련 중인 모습을 담은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 X에 올린 후 불붙기 시작했다. 사진 속 헤그세스의 이두박근 안쪽에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안 보이던 아랍어 문신이 새로 새겨진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그래픽=정인성

이 문신은 아랍어로 ‘카피르’라는 단어로 확인됐다. ‘불신자’ 또는 ‘이교도’를 뜻하며, 이슬람권에선 모욕적 표현으로 간주되기도 한다고 알려졌다. 특히 헤그세스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고 그의 몸에 기독교 극단주의를 상징하는 문신이 많아 예전부터 논란이 됐다는 점에서, 이 아랍어 문신이 이슬람을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 팔레스타인 지지 활동가는 미 언론에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미국의 전쟁을 지휘하는 인물이 드러낸 명백한 이슬람 혐오의 상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헤그세스는 취임 초기부터 ‘이슬람 테러리스트 제거’를 주요 목표로 내세워 왔다.

헤그세스의 이 문신 위에 전부터 있었던 라틴어 문구 ‘데우스 불트(Deus Vult·신의 뜻)' 또한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다. ‘데우스 불트’는 중세 십자군 전쟁 당시 사용된 구호로 기독교 세력이 무슬림(이슬람 신도)으로부터 성지(聖地)를 탈환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문구는 이슬람 혐오로 해석돼 왔고 요즘엔 특히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반이슬람 구호로 쓰는 문구여서 문제가 됐다.

물의를 빚는 헤그세스의 문신은 또 있다. 오른쪽 가슴에 새겨진 커다란 ‘예루살렘 십자가’ 문양은 기독교 민족주의(기독교를 국가 정체성으로 삼으려는 기조)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역시 극단주의적 기독교 신념을 나타낸다고 알려진 문신 때문에 군 출신인 헤그세스는 2021년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취임식 경호 임무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당시 그와 함께 복무했던 부대원들이 문제 제기를 했다고 폴리티코는 보도했다. 헤그세스는 지난해 6월 폭스뉴스에 나와 “부대 지휘관들이 나의 종교 문신 때문에 나를 극단주의자나 백인 우월주의자로 분류했다”고 했지만, 문신에 다른 뜻이 있다거나 이런 함의를 모른다고 변명하지도 않았다.

30대 후반부터 문신을 새기기 시작했다는 헤그세스의 첫 문신은 오른쪽 팔 안쪽에 있는 ‘칼이 꽂힌 십자가’ 문양인데 이 또한 논란거리가 됐다. 이는 성경 마태복음 10장 34절 ‘나는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는 구절을 상징한다고 알려졌다. 헤그세스 본인이 문양을 직접 디자인했다고 한다. 종교적 신념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헤그세스의 문신 중 다수가 폭력이나 극단주의와 연관된다는 점을 미 언론은 반복해서 지적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복무 경험이 있는 헤그세스 문신 중엔 극단주의와 무관한, 자신의 군 복무에 대한 자부심 및 미국에 대한 애국심과 관련된 내용도 많다. 오른쪽 어깨엔 2차 세계대전 당시 글라이더 침투 부대로 활약한 187 보병연대의 문장(紋章)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헤그세스의 군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헤그세스도 2004~2005년 이 연대에서 복무했었다. 오른쪽 팔뚝엔 헤그세스가 이라크에 파병됐을 때 사용했다는 AR-15 소총과 미 건국 초기의 성조기가 결합된 문양의 문신이 있다. 일각에선 이 문양을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즐겨 쓴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편 헤그세스의 오른쪽 팔뚝에 있는 ‘We the people(우리는 국민으로서)’은 미 헌법의 첫 문장이다.

헤그세스는 2020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37~38세 무렵부터 문신을 새기기 시작했다”며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임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문신의 장점으로 “사람들이 내 입장을 정확히 알게 된다. 나는 내 관점을 원래부터 겉으로 드러내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미 국방부는 헤그세스의 이번 새 아랍어 문신과 관련된 언론의 논평 요청에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폭스뉴스 진행자로도 일했던 헤그세스는 고위 군 장성들이 맡던 미 국방장관에 소령 출신 예비군이 처음 임명된 사례다. 그는 지난달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 회의와 지난 6일 미 국방부 청사에서 진행된 미·영 국방장관 회담에 자신의 배우자를 동석시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국방 수장으로서 기밀 유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는 아울러 민간 메신저인 시그널의 단체 채팅방에 예멘 후티 공습 시간과 수단 등을 상세히 올려 공화·민주당에서 모두 비난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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