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터 잡은 청년농부들, 피땀 어린 삶의 터전도 잿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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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30일 경북 청송군 청송읍 거대리에서 만난 청년 농부 장남석(39)씨는 새까맣게 그을려 곧 무너질 것 같은 사과 선별장 앞에서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장씨는 "하루에도 수십 번 밭과 작업장에 가보지만 삽 한 자루 멀쩡한 게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잠 한숨 편히 못 자고 애지중지 키웠는데 하루아침에 모두 날려 너무 속상하고 억울함도 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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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까지 타 버려 복구조차 '막막'
청년들 "떠나지 않게 도와 달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30일 경북 청송군 청송읍 거대리에서 만난 청년 농부 장남석(39)씨는 새까맣게 그을려 곧 무너질 것 같은 사과 선별장 앞에서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5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과수원에서 농사를 시작한 그는 지난 25일 청송 일대를 집어삼킨 산불로 선별장 창고에 한가득 쌓아 둔 사과는 물론이고 최첨단 자동화 선별기와 포장기, 사과를 옮기는 지게차까지 몽땅 잃었다. 산불이 덮친 그날 다급한 마음에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농약 분사기까지 동원해 물을 뿌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장씨는 "하루에도 수십 번 밭과 작업장에 가보지만 삽 한 자루 멀쩡한 게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잠 한숨 편히 못 자고 애지중지 키웠는데 하루아침에 모두 날려 너무 속상하고 억울함도 든다"고 토로했다.
장씨의 사과 밭 건너편 산에서 송이 등을 채취하는 권오용(31)씨 사정도 마찬가지. 산불이 덮치기 전 자연 그대로 양분을 섭취하도록 산속 깊은 곳에 지름 30㎝의 나무토막을 일일이 손으로 세워 수개월에 걸쳐 완성한 표고버섯 재배지는 거대한 숯덩이로 변해버렸다. 산불로 탄 권씨의 송이 산 면적은 130㏊로, 축구장 182개를 합친 것과 맞먹는다. 그는 온 산이 시뻘겋게 불타던 날 대피문자를 받고도 차에 한가득 물을 실어 산을 오르내렸다고 했다.
권씨는 "산불로 훼손된 송이 산이 회복하려면 최소 20년이 걸리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해 미칠 지경"이라며 "아버지가 물려준 송이 산을 잘 가꾸려고 여기서 300㎞나 떨어진 전주 한국농수산대학에서 산림조경학을 공부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번져 9명의 사망자가 나온 영덕군의 청년 농부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영덕군 영덕읍 삼계리에서 발효 곡물에 자연 방사로 닭을 키워 유정란을 생산, 양계업계에서 촉망받는 김동빈(38)·손다원(36) 부부는 이번 산불로 닭과 살던 집까지 잃었다.
이날 오후 찾은 김씨 부부의 양계농장 상황은 처참했다. 김씨 부부와 네 살 큰아이, 지난달 태어난 둘째 아이가 오손도손 살던 농장 입구의 70㎡ 남짓한 조립식 주택은 전소돼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다. 닭 1,400마리가 있던 계사는 몽땅 타 앙상한 철 구조물만 바람에 흔들렸고, 자동화 설비를 갖춘 다른 계사 두 곳은 전기가 끊겨 일일이 모이와 물을 줘야 했다. 영덕읍 일대는 통신까지 연결되지 않아 주문도 전혀 받지 못했다. 김 대표는 전화가 가능한 영덕읍의 카페까지 나와 정기 배송 고객에게 일일이 문자메시지로 양해를 구했고, 손 대표는 불길 속에 산후조리도 덜 끝낸 몸으로 두 아이를 데리고 시댁인 경기 김포시로 피신했다.
김 대표는 "여태 조류독감 한 번 겪지 않은 농장이 산불로 막대한 피해를 입어 억장이 무너질 것 같다"며 "하루빨리 전기가 공급되고 통신이 연결돼야 남은 계사의 닭이라도 잘 키워 달걀을 팔 수 있는데 언제쯤 된다는 말도 없어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배송이 지연되는데도 고객들이 힘을 내라는 메시지를 보내와 조금씩 용기를 얻고 있다"며 "숱한 실패를 딛고 어렵게 싹을 틔운 청년 농부들이 이번 산불로 아픔과 절망만 안은 채 떠나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에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청송·영덕=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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