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뒤면 숙련공 못 구해" 위태로운 조선소, 상여금이 해법될까

최나실 2025. 4. 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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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조선하청지회장 고공농성 19일째
원청 정규직 임금 60%만 받는 '하청 본공'
연 550% 상여금 삭감에 최저임금 언저리
"상여금 정상화하고, 재하도급 규제해야"
지난달 18일 김형수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 지회장이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 앞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하청지회는 상여금 인상 및 협력(하청)업체 상용직 고용 확대 등을 한화오션 측에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가 올해 46세인데, 저희 회사(하청업체) 본공(정규직) 중에 저보다 어린 사람 별로 없습니다. 조선업 호황이 앞으로 얼마나 더 갈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상용직 본공은 계속 줄고 젊은 노동자는 조선소를 기피한다면, 제 또래가 퇴직하는 10~15년 뒤에는 돈을 많이 줘도 숙련된 본공을 구할 수 없을 겁니다."

조선소에서 16년간 일한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A씨가 지난해 7월 22일 국회 간담회에서 전한 말이다. 이날은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며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2022년 6월부터 51일간 벌인 파업이 종료된 지 만 2년째 되던 날이다.

유최안 전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2022년 7월 19일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옥포조선소 파업 현장 내 도크 바닥의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 당시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불황기 때 삭감된 임금 회복과 저임금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고 51일간 파업을 벌였다. 거제=연합뉴스

한국 조선업은 오랜 불황기를 거쳐 2025년 초호황기를 맞았으나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노동 강도나 산업재해 위험은 높은 데 반해, 임금은 턱없이 낮은 게 '빈 일자리'의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하청노조는 "떠난 노동자는 안 돌아오고, 젊은 노동자는 기피하고, 일하던 하청 정규직도 물량팀(재하청)으로 빠진다"며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산업계는 저임금 미숙련 이주노동자를 대규모로 들여와 급한 불부터 끄는 상황이다. 조선업 고용 구조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지속가능한 조선업'을 위한 해법을 현장과 전문가에게 물었다.


먹고살려고 고용불안 '물량팀'으로 이탈

2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2022년 조선소 하청노동자 파업을 이끌었던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 지회장은 지난달 15일부터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 앞 30m 폐쇄회로(CC)TV 철탑에서 19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가 지난해 말 22일 단식농성에 이어, 고공농성을 하는 이유는 상여금 인상 문제를 두고 노사 이견으로 단체교섭이 결렬됐기 때문이다. 하청노조는 처우 개선 핵심이 '상여금'이라고 보고 월 기본급의 50%인 상여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16년차 취부사인 A씨의 2024년 6월 월급 명세서. 시급이 1만1,730원으로 적혀있다. 금속노조 조선하청지회 제공

조선업 하청업체의 정규직 임금은 최저임금에 가깝고, 원청 정규직의 60~65%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숙련도가 매우 중요한 취부사(선박 블록을 제작도면에 따라 가조립하는 업무)로 일하는 16년차 A씨의 시급은 지난해 1만1,730원으로, 최저임금(9,860원)보다 불과 1,800원 많았다. 잔업·특근 30시간을 포함해 월 277시간 일한 대가는 세전 325만 원, 세후 280만 원으로 대학생 아들까지 세 식구가 먹고살기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하청 노동자의 상여금이 원래부터 적지는 않았다. 한때 연 550% 상여금으로 부족한 임금을 보전해줬지만 2016년 대규모 불황이 조선업계를 덮친 이후 '전액 삭감'되면서 저임금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이에 대해 한화오션은 '삭감된 상여금은 사내협력사(하청업체)들이 2018년 이후 기본급으로 전환해 급여에 포함됐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이는2018년부터 가파르게 오른 법정 최저임금을 지키기 위해 상여금을 없애고 그 돈으로 기본급을 올렸다는 의미다. 지금의 연 50% 상여금은 2023년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이후 한 차례 올린 결과다.

하청 정규직인 본공들은 당장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마음에 고용안정성을 포기한다. '물량팀'(재하청)으로 자발적 이탈하고 있다. 3개월 단기 계약을 맺는 탓에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지만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급여는 더 많다. A씨는 "돌아온 호황에 기업은 수백억 원의 흑자를 내도 하청노동자 임금은 1년에 고작 몇백 원 오르니, 아예 조선소를 떠나거나 다단계 하청 물량팀으로 가는 사람이 많다"며 "친한 형도 물량팀에 갔는데 노동법 보호를 못 받는 사각지대라 말리고 싶었지만 '매달 살림살이가 100만 원 넘게 빵꾸 난다'기에 차마 잡을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조선업 하도급 실태조사 연구(2023)'에 따르면 그해 본공 월급은 평균 359만 원(시급 1만2,019원), 물량팀원은 465만 원(2만862원)이었다. 또 2023년 상반기 사내협력사 본공 이직률은 58.6%(8,313명 입사·4,868명 퇴사)로 매우 높았다.

2022년 3월 28일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연수원에 마련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린 '하청 노동자가 살아야 한국 조선업이 산다' 기자회견 중 한 금속노조 조합원이 주저앉아 울고 있다. 금속노조는 "위험한 일만큼 보상이 따르지 않는 저임금 구조와 중대재해가 줄을 잇고 있다"며 "불황기에 떠났던 노동자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고 젊은 노동자는 조선소를 기피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뉴스1

이김춘택 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하청 본공 중에는 회사의 자녀 학자금 지원 때문에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며 "하지만 2030 청년 입장에서는 (자녀가 대학에 가는) 20년 뒤를 보고 저임금을 버틸 유인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여금을 과거 550% 수준으로 당장 올리기는 어려워도, 점차 인상해야 본공이 두터워지고 청년층 유입도 늘어나 '숙련 인력 재생산'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게 없이는 조선업 인력 고령화와 인력 유출, 미숙련 이주노동자 확대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조선소 인력 15~20%가 이주노동자로 추정된다.


"하청·재하청 노동자 70~80%는 기형적"

2023년 2월 27일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영빈관에서 열린 '조선업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 협약식'에서 이정식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두겸 울산시장, 조선 5사 원청·협력업체 대표 등이 협약서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조선업 원하청 이중구조 문제 해결을 위해 '적정 기성금 지급' 등을 골자로 하는 상생협약을 체결했으나, 현장의 하청노동자들은 체감되는 변화가 없고 도리어 본공들의 물량팀 이탈, 급격한 이주노동자 확대 등으로 고용의 질이 악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연합뉴스

전문가들도 하청노동자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방향성에 공감한다. 다만 상여금 인상뿐 아니라 △원청·하청노동자 교섭을 위한 제도화 △원청 고용 확대 △재하청에 대한 엄격한 단속 등 여러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선업 원하청 상생협의체에 참여해 온 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는 "본래 원청 정규직이 절반은 돼야 하지만, 현재 조선업은 하청·재하청이 70~80%인 기형적인 구조"라며 "단계적으로 원청 정규직도 늘려가야 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불황기 때 삭감됐던 하청노동자 상여금을 일부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같은 협의체에 참여한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조선업 특성상 어느 나라나 인력이 유동적인 면은 있지만 지금 같은 고용형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재하도급에 대한 규제, 노조법 개정을 통한 원청과 하청노동자 교섭, 상생협의체와 같은 업종별 대화 기구(거버넌스) 운영 등을 병행해 풀어갈 문제"라고 제언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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