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의 패러다임디자인]〈3〉외국어 자막과 더빙, 교육비 줄이고 세계로 가는 길
한국은 교육열이 높고 대학 진학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활용한 콘텐츠 소비도 활발하다. 그러나 외국어 실력은 여전히 사교육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영어 과외와 학원 수강료는 가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난 3월 14일 교육부에서 발표한 사교육비를 보자. 1년 사이 학생 수는 521만명에서 513만명으로 8만명(1.5%) 줄었는데 사교육비 총액은 오히려 29조2000억원으로, 전년보다 2조1000억원(7.7%) 증가했다. 참여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55만1000원이고, 그 중 영어 사교육비는 월평균 26만4000원이다. 영어유치원은 월평균 154만원, 만 5세 아동의 영어에 지출하는 사교육비는 1인당 월평균 43만5000원으로 고등학생 월평균 영어 사교육비(32만원)보다 높다. 교육비 부담을 줄이면서도 외국어 실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해답은 바로 방송 콘텐츠 속 외국어 자막과 더빙 서비스 확대에 있다. 자막을 통해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접하게 되면, 학원이 아닌 일상에서 언어를 익힐 기회가 열린다. 이는 단순한 자막 제공을 넘어, 교육비 절감과 외국어 노출 환경 조성이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유럽 여러 나라는 이미 이런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는 외국 프로그램을 원어 그대로 방송하고 자국어 자막을 제공하는 방식을 채택해 왔다. 아이용 프로그램만 더빙하고, 나머지는 자막 위주다. 이들 국가는 공통으로 영어 구사 능력이 세계 최상위권이다. 국민은 어릴 때부터 영어에 노출되며, 학원 없이도 듣기와 읽기 능력을 자연스럽게 키운다.
스위스의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4개의 공용어를 사용하는 이 나라는 방송에서도 다양한 언어 자막과 더빙을 제공한다. 공영방송 SRG SSR은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원하는 언어 자막을 시청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다문화 사회 통합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들도 방송을 통해 언어와 문화를 익히며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해외 사례는 한국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KBS, EBS, MBC 같은 공영방송이 먼저 앞장서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의 자막을 시범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자막과 더빙 작업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면 효율성과 비용 면에서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시청자들은 디지털 방송이나 OTT 플랫폼처럼 자막 언어를 선택해 시청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첫째, 외국어 사교육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누구나 집에서 TV나 스마트폰만으로 외국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배울 수 있다.
둘째, 외국인이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 외국인 근로자, 유학생, 결혼이주민 등이 자국어 자막을 보며 한국 사회와 언어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셋째, 한국 콘텐츠의 해외 수출과 확장에도 도움이 된다. 자막과 더빙이 미리 준비되어 있다면 한국 드라마나 예능은 더 많은 국가에 빠르게 퍼질 수 있다.
이미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 플랫폼은 다양한 자막과 음성 선택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공영방송부터 변화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자막과 더빙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다. 교육의 도구이며, 문화의 가교이자, 산업의 성장 동력이다.
이 제안의 현실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방송사 사장을 직접 만나 의견을 들어보았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충분히 가능하다. 일자리도 늘어난다”였다.
외국어 자막과 더빙은 기술적, 정책적으로 실현가능한 과제다. 콘텐츠 번역, 감수, 더빙 인력 수요도 함께 증가하며 새로운 고용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단지 교육이나 문화 영역에 그치지 않고, 산업적 측면에서도 확장성이 크다.
이제 우리도 유럽처럼 자막과 더빙을 통해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작은 변화가 교육, 문화, 산업, 통합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외국어 자막과 더빙, 그것이 우리가 세계로 가는 문이다.
이광재 PD(전 국회사무총장) yeskjw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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