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비전’, 정주영의 ‘거북선’… 트럼프가 탐낼 K조선 만들었다

노석조 기자 2025. 3. 30.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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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의 외설(外說·ExTalk)]
1970년 美는 차관 요청마저 외면
거북선 500원 지폐로 모래밭에 조선소를 지었다
2025년 K조선은 미국보다 강해
기술이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
박정희와 트럼프의 시공을 초월한 만남 스토리
2025년 한미 조선 협력은 마치 박정희와 트럼프가 50년의 시공을 초월해 만나는 듯하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트럼프 당선 후 한국과 미국 정상간 소통은 지난해 11월 7일 윤석열 대통령과 12분간의 전화 통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현재로서 유일한 이 통화에서 트럼프가 콕 집어 ‘SOS’ 친 것은 쉽빌딩(Shipbuilding), 즉 조선(造船)입니다.

“윤 대통령님, 나는 한국의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이 세계 최고인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선박 수출뿐만 아니라 MRO(Maintenance Repair Overhaul·유지 보수 정비) 분야에서도 한미가 긴밀하게 협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발표자료)

첨단 기술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도 아니고 굴뚝 산업의 표상 같은 ‘조선업’을 한미 전략 사업으로 트럼프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뜻밖이었습니다.

◇조선 생태계 무너진 美, 세계 최고인 K조선

저는 지난해 미 대선이 한창일 때 최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의 철강 도시 피츠버그, 필라델피아 등을 둘러볼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요, 그 때 느낀 낯섦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워싱턴 D.C.와 뉴욕 사이에 있고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배경인 펜실베이니아의 주요 도시는 생각보다 많이 허름했습니다. 괜히 러스트벨트(쇠락한 중공업 지역)라고 하는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철강 도시가 녹슬고 조선업이 무너지면서 미국은 현재 민간 선박은 물론 군함도 새로 건조할 수도, 고장 난 걸 제대로 수리 정비하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전략핵잠수함(SSBN),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을 만들 첨단 기술력은 있지만 그걸 구현해낼 조선업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지경이 됐습니다.

그 사이 ‘제조업 굴기’에 성공한 중국은 해군력을 빠르게 증강했습니다. 전투함의 경우는 보유수가 370척을 넘어서 280척인 미국을 앞질렀습니다.

트럼프는 이 같은 위기를 타개할 핵심 파트너로 영국이나 프랑스가 아닌 한국을 택한 것입니다.

종전 협상을 압박하기 위해 젤렌스키에게 “넌 카드가 없잖아”라고 면박을 주는 뉴욕 부동산 거부 출신의 트럼프가 마냥 한국이 좋아서 그랬을리는 만무합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K조선이 ‘월드 클래스’이기 때문입니다. K조선과 손 잡으면 이득이라는 계산이 나온 것입니다.

◇K조선의 아버지 박정희, 직접 전문가 영입

세계 최고 기술의 K조선은 박정희 시대에 시작됐습니다. 그 때 씨를 심고 싹을 틔우고 키웠습니다. 이견이 없습니다.

작년 11월 트럼프가 조선 협력을 말하며 통화한 대상은 윤석열 대통령이었지만, 윤 대통령의 뒤에는 대통령 선배인 박정희도 있었던 셈입니다.

1945년 해방이 됐을 때 일본인들은 본국으로 철수하면서 큰 선박은 챙겨갔습니다. 남은 건 100t 이하의 작은 배뿐이었습니다. 그것마저도 고장 나면 일본에 끌고갔습니다. 고칠 기술이 없었습니다. 철강 조선은 꿈도 꾸기 어려웠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터졌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엔 철강 조선업을 키워낼 형편이 안 됐습니다. 미국은 자칫하다간 한국이 북진 통일을 기도할 수 있다고 봐 군함 등 중장비 무기를 주거나 관련 기술을 이전하기를 꺼렸습니다.

군인 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고선 조선 전문가를 찾았습니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수출 아니면 먹고 살 길이 없는 처지에서 선박은 필수였습니다.

그는 직접 스카우트에 나섰습니다. 1965년 5월 린든 존슨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방미한 일정 가운데서도 짬을 내 인재 영입에 나섰습니다.

미선급협회(ABS)의 유일한 한국인 신동식 검사관을 호텔방으로 불러 독대했습니다.

“같이 조선을 키우고 나라 경제도 살립시다.”

신동식은 거절을 거듭하다 박정희의 계속된 설득에 진정성을 느껴 넉달 뒤 귀국길에 올랐다고 합니다.

박정희는 그를 극진히 대우했고, 3년 뒤인 1968년 청와대 경제2수석을 신설해 그를 앉혔습니다. 신동식 초대 경제2수석은 구두굽이 닳을 정도로 거제도를 오가며 K조선의 초석을 쌓았습니다.

박정희는 가발·신발 같은 경공업만으로는 경제 성장을 이루는데 한계가 있다고 봤습니다. 특히 남침을 호시탐탐 노리는 북한에 맞서기 위해선 경제와 국방이 동시에 튼튼해야 했습니다. 국력을 격상시키기 위해선 중화학공업이 필수였습니다.

기술과 자본, 그리고 노동 집약적인 중공업은 미래 지향적이고, 전기전자 등 또다른 성장의 발판이 되며, 무엇보다 농사 아니면 소상공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민에게 다른 차원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불굴의 기업인 정주영도 포기했던 조선업

1977년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를 방문한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그의 딸이자 훗날 대통령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 그리고 정주영 현대 회장.

큰 일은 혼자할 수 없는 법. 박정희는 현대 정주영 회장에게 미션을 맡겼습니다. 이미 정주영은 1967년 현대차를 설립해 미 포드와 합작 파트너십을 맺었고, 1968년 현대건설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착공해 2년 5개월만인 1970년 5월 완공해낸 불굴의 기업인이었습니다.

박정희는 정주영에게 이번에는 조선업을 일으켜보자고 했습니다. 사실 정주영은 건설과 자동차만 해도 족하고 버겁다 생각했다고 합니다.

불굴의 정주영도 조선업은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위에 알아보니 포기하라는 조언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미국도 가보고 일본도 가보았습니다. 차관을 달라고 했지만, 이들은 콧방귀를 끼며 상대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지금와서 보면 그렇게 K조선을 외면했던 미국이 50년이 지난 지금은 K조선에 도움을 요청하는 입장 바뀐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미·일로부터 퇴짜를 맞은 정주영은 청와대를 찾아가 대통령에게 조선업은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정주영은 나중에 기지와 끈기로 조선업 신화를 쓰고 그것이 널리 퍼졌지만, 사실 이렇게 조선업에서는 자포자기했던 순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야당 정치인들의 결사 반대와 방해에도 경부고속도로를 최단기간 완벽하게 지었던 정주영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정주영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엄포를 놓았습니다. 배석한 김학렬 부총리에게 큰 소리로 “정주영 회장이 앞으로 무슨 사업을 하든 도와주지 마시오”라고 했습니다.

정주영은 다시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이번에는 영국으로 날아갔고, 그곳에서 그 유명한 ‘거북선 지폐’ 일화가 탄생했습니다.

조선소 건설의 성패는 외자 확보에 달려있었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바클레이은행과 4300만 달러에 이르는 차관 협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은행은 무엇을 믿고 빌려주냐, 조선 능력과 기술 수준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고 거절했습니다.

벼랑 끝에 몰렸습니다. 1971년 9월 정주영은 바클레이에 영향력을 행사할 인물을 찾아나섰고, 극적으로 선박 컨설턴트 회사 ‘애플도어’의 롱바텀 회장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설명을 한참 들은 롱바텀도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이 때 정주영은 지갑에서 이순신의 거북선 그림이 있는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였습니다.

“우리는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습니다.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서 있었는데, 산업화가 늦어졌을뿐입니다.”

이 재치가 롱바텀의 마음을 움직여 추천서를 쓰게했고, 이걸 계기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일이 하나둘 풀려 1972년 3월 23일 울산 미포만 백사장에서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1966년 발행된 500원권 지폐. 뒷면에 거북선이 그려져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정주영 현대 회장은 "기술도 없는 한국에 차관을 줄 수 없다"는 영국 애플도어사(社) 회장에게 이 지폐의 거북선 그림을 보여주는 기지로 설득에 성공했다. 거짓말 같은 실화고, 비즈니스 신화다. /아산 정주영 기념관 조선일보DB

◇3차 경제개발 계획 9년만에 조선 1위 오르다

정주영은 이날 “세계 조선사상 전례가 없는 최단 공기(工期), 최소 비용으로 최첨단 초대형 조선소와 2척의 유조선을 동시에 건설하겠다”고 외쳤습니다.

1974년 6월 28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준공식 겸 1, 2호선 명명식이 TV로 생중계됐습니다.

K조선이 세계 무대에 데뷔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소 기공식을 가진 지 11년 만인 1983년 건조량 기준으로 조선부문 세계 1위 기업이 됐습니다. 거짓말 같은 실화입니다.

박정희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경공업, 1967년 제2차 개발로 새마을 운동과 공업 기틀 마련에 이어 1972년 제3차 개발에서 중공업·과학기술 육성을 내걸어 ‘조선 강국’ ‘해양 강국’을 선포한지 9년만의 쾌거였습니다.

◇기술력이 나라 운명 바꾼다

한달 전 출간된 외서가 있습니다. ‘세계 건설자들: 기술과 새로운 지정학(World Builders: Technology and the New Geopolitics)’이란 제목입니다. 저자는 포르투칼 고위 외교관 출신이자 저널리스트인 브루노 마새스입니다.

그는 책에서 첨단 기술 시대에는 지정학을 다시 해석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과거엔 이념이나 지리적 요소로 국가간 연대와 협력 사업이 이뤄지는 등 국제 정치와 동맹 관계가 돌아 갔다면, 오늘날에는 첨단 기술력에 따라 국가간 이합집산이 이뤄진다는 것이죠.

그는 미중 패권 경쟁도 첨단 기술의 영토 싸움으로 해석했습니다. ‘세계 건설자들: 기술과 새로운 지정학’이란 외서를 읽으면서 ‘박정희와 트럼프의 만남’이란 제목의 뉴스레터를 쓸 영감을 얻었습니다.

트럼프와 작년 11월 통화한 대상은 2024년 한국 대통령이었지만, 그가 협력하려는 대상인 K조선의 뒤에는 50년 전 박정희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K조선이 월드 클래스가 아니었다면, 트럼프가 당선 이틀만의 짧은 전화 통화에서 양국 제1 협력 사업으로 K조선을 찍으며 잘해보자고 했을까요.

대만이 TSMC 보유국이기 때문에 미국이 각별히 챙겨주는 것처럼 오늘날의 외교에서 첨단기술은 국가 운명을 바꿀만한 ‘결정적 변수’입니다.

며칠 전 디자인팀에 이런 뉴스레터 요지를 설명했더니 이 글 맨 위의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박정희와 트럼프가 새빨간 쇳물과 철강 선박 사이로 마주 본 사진은 세계에서 유일할 듯합니다. 작품명은 ‘K선박으로 시공을 초월한 한미 정상의 만남’입니다.

이번 주 뉴스레터 외설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는 더 강력한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외설(外說)은 미번역 외서와 취재 이야기,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하는 고품격 뉴스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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