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남녀 3명 연쇄 실종 가양역 미스터리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남성은 사라진 지 한 달 만에 강화도에서 시신 하체만 발견
(시사저널=정락인 탐사저널 사건전문기자)
서울 강서구 양천로 가양역 사거리에서 양천향교 방면에는 지하철 9호선 가양역이 위치해 있다. 출구가 10번까지 있어 9호선 노선 중 가장 많다. 이 중 3번 출구는 한강 방향 가양대교 남단과 아주 가깝다. 이곳 가양역 인근에서 2022년 6월부터 8월 사이 성인 남녀 3명이 연쇄적으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지금까지 미해결로 남아있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하다 가양역에서 어디론가 사라진 것일까.
그해 6월27일 서울에는 비가 오락가락하며 하루 종일 흐린 날씨가 계속됐다. 회사원 김가을씨(여·24)는 이날 퇴근 후 서울 강남에 있는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손질했다. 얼마 후 비가 내리며 방금 한 머리를 빗물이 적셨다. 김씨는 인스타그램에 머리 인증 사진을 올리며 "파마하자마자 비바람 맞고 13만원 증발. 역시 강남은 눈 뜨고 코 베이는 동네"라고 적었다. 약간은 짜증이 섞여 있었다.
첫 번째 실종자의 이상한 119 신고 전화
그런 김씨는 오후 9시30분쯤 가족과 통화한 후 돌연 연락이 끊긴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 등이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연결되지 않았다. 이후 이상한 일들이 생긴다. 오후 11시1분쯤 연락이 끊겼던 김씨가 119에 이상한 신고 전화를 건다. 그는 "언니가 쓰러져 있을지 모른다"며 직접 신고한 것이다. 119 구급대가 언니가 살고 있는 강서구 자택으로 출동했으나 언니에겐 아무 일도 없었다. 지방 출신의 김씨는 서울에서 여섯 살 터울의 친언니와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던 언니는 곧바로 동생에게 전화했으나 역시 받지 않았다. 이후에도 전화가 연결되지 않자 가족들은 오후 11시37분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다. 경찰이 김씨의 동선을 파악해 보니 신고에 앞선 오후 10시22분쯤 택시를 타고 가양역 인근에서 하차한 것이 확인됐다. 이어 가양역 3번 출구에서 가까운 가양대교 남단 방면으로 걸어간다. 오후 10시56분쯤에는 가양대교 남단 쪽에 서 있는 모습이 지나가던 버스의 블랙박스에 포착됐다. 시간상으로 보면 이때쯤 119에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후 11시9분쯤에는 같은 지점을 통과하는 버스 블랙박스에 김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후에도 김씨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고, 휴대전화 위치 신호도 가양대교 인근에서 마지막으로 잡혔다. 생활반응도 끊겼는데, 그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경찰은 실종 다음 날부터 가양역과 한강 일대를 수색하고, 가양대교 인근에 드론까지 투입해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김씨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김씨의 언니도 개인 연락처가 들어간 전단지를 제작해 동생을 찾아나섰지만 제보 대신 악성 문자에 시달렸다.
실종 며칠 후 김씨의 자택에서 유서로 추정되는 글이 발견된다. 김씨가 사용하던 태블릿PC에서 '유언, 내 죽음에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음 해'로 시작되는 2쪽 분량의 신변을 비관하는 내용이 나왔다. 김씨는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2021년 1월부터 포털사이트에 개설한 블로그에 자신의 우울증을 공개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글을 써오고 있었다. 여기에서 김씨는 자신이 우울·불안·불면·공황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적었다.
여러 정황상 김씨가 가양대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무게가 실리고 있으나 범죄 피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씨의 우울증은 호전되고 있었고, 실종 당일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자신의 SNS에 관련 사진을 올릴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이런 김씨가 갑자기 심리적인 동요를 일으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은 의아하다.
김씨 실종의 최대 의문점은 실종 직전 119에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언니에게 보낸 것이다. 왜, 무엇 때문에 이런 행동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씨는 키 163cm에 마른 체형이며, 짧은 흑발에 왼쪽 팔에는 타투가 있다. 실종 당일에는 베이지색 상의에 검은색 바지,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레인부츠를 착용하고 있었다.
김가을씨 실종 사건이 일어난 지 41일째 되는 날 가양대교에서 또 한 명이 사라진다. 8월7일 오전 1시30분쯤 이정우씨(25)는 9호선 공항시장역 근처에서 지인들과 헤어졌다. 45분 후인 1시15분쯤 이씨의 모습은 가양역 4번 출구 쪽에 있는 폐쇄회로(CC)TV에서 마지막으로 포착된다. 2시30분쯤에는 여자친구와 통화를 했고, 그 직후 휴대전화 전원이 꺼졌다. 이후 이씨의 연락도 두절됐고, 생활반응도 끊겼다.
하루 간격으로 남녀 2명 잇따라 행방불명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이 수색에 나서고 가족들도 전단지를 제작해 이씨를 찾았지만 행방이 묘연했다. 언론에서도 이씨의 실종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이씨의 흔적도 목격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가양역과 한강에서 이씨를 찾고 있을 때 그의 시신은 엉뚱한 곳에서 발견된다. 실종 약 한 달 후인 9월10일 오후 1시46분쯤 인천 강화군 불은면의 광성보 갯벌에서 한 낚시꾼이 성인 남성으로 추정되는 시신 일부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몸통은 사라지고 하반신만 남아있었으며 심하게 부패된 상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 분석 결과 실종된 이씨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의 가족들이 인천해양경찰서로 달려가 시신을 확인해 보니 하반신에 있던 바지와 신발도 이씨가 실종 당일 착용했던 것과 동일했다. 하지만 시신 부패가 워낙 심해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이씨의 가족들은 경찰의 초동수사에 불만을 드러냈다. 이씨의 친척은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늦어도 3~4일이면 시신이 뜨는데 분명 한번쯤 시신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것"이라며 "제대로 수사를 했다면 시신이라도 온전히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경찰 수사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또 "올해 안에 상체를 못 찾으면 강화도 물살이 북한 쪽으로 올라가 시신이 그쪽으로 떠내려갈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사실상 이씨의 나머지 시신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사람이 한강에 투신했을 경우 변사체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이때 발견하지 못하면 물살을 따라 흘러가게 된다. 이씨의 시신 일부가 강화도까지 흘러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이씨 실종 과정과 시신에서 범죄 혐의점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씨는 평소 우울증도 없었으며 실종 전 자살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단순 실종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실종 당시 이씨는 키 172cm에 몸무게 60kg으로 마른 체격이었다. 검은색 반팔 상의와 베이지색 하의를 입었고, 흰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오른쪽 손목과 왼쪽 쇄골에 레터링 타투를 했다.
그런데 이정우씨가 실종된 다음 날 이번에는 30대 여성이 비슷한 장소에서 사라진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박수민씨(38)는 8월8일 새벽 2시7분쯤 집 근처에서 택시를 타고 2시45분쯤 가양역 2번 출구에서 하차했다. 박씨는 가양대교 방면인 3번 출구로 이동한 후 행방불명된다. 실종 당시 박씨는 회색 반팔 티셔츠에 흰색 라인이 있는 검은색 바지를 입었고, 검은색 계통의 운동화를 착용했다. 어깨에는 갈색 가방을 메고 있었다.
사건 발생 3년째, 수사 진척 전혀 없어
가양역 인근에서 연속으로 사라진 김가을씨, 이정우씨, 박수민씨. 이 중 김씨와 박씨의 확인된 마지막 동선은 한강이 있는 가양대교 쪽이었다. 김씨는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유서가 발견됐으며, 박씨는 가정불화로 가출 후 가양대교로 향한 것으로 볼 때 극단 선택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행적이 파악되지 않았고, 이들이 극단 선택을 했다는 증거나 목격자는 나오지 않았다. 또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정우씨의 경우는 좀 다르다. 신변을 비관해 극단 선택을 할 만한 문제가 없었으며 사전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통화한 여자친구에게도 극단적 선택을 암시할 만한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다. 세 명 중 유일하게 시신 일부가 발견됐으나 사망 원인은 여전히 의문이다. 문제는 이들이 실종되거나 시신 일부가 발견된 지 3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수사는 전혀 진척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 영구미제로 남을 수도 있다.
■현행법으로는 일반 성인 실종자 찾는 데 한계
전미찾모 "포괄적인 실종법으로 개정해야"
매년 10만 건이 넘는 실종 신고가 경찰에 접수되고 있다. 이 중 대부분은 해결되고 있으나 가족을 찾지 못해 장기실종으로 분류되는 실종자도 적지 않다.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전미찾모)에 따르면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한 누적 장기실종자가 약 30만 건에 달한다.
경찰은 2005년 제정된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에 따라 실종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현행법에 의하면 실종 사건이 발생했을 때 만 18세 미만 아동, 지적장애인, 치매 환자에 대해서는 위치추적 등 경찰이 적극적인 수사를 벌일 수 있다. 문제는 만 18세 이상의 일반 성인 실종이다. 이들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들어와도 강제로 소재를 파악하는 등의 수사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범죄 상황에 대한 목격자의 진술이 있거나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메시지 등이 있어야 휴대전화 위치추적, 인터넷 접속 기록, 카드 사용내역 등을 영장 신청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실종 사건의 경우 시간을 다투기 때문에 초동대처가 미흡하면 장기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1초가 아쉬운 긴박한 상황에서 얼마나 빠른 대처를 하느냐에 따라 실종자를 찾느냐 못 찾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동안 국회에는 성인 실종자가 발생하면 지체 없이 수색하거나 수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관련법이 발의됐으나 실종 성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사생활 침해, 범죄 목적의 악용 소지 등으로 인해 상임위원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나주봉 전미찾모 회장은 "일반 성인 실종자는 급증하고 있는데 관련법 미비로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일반 성인 실종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현행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을 폐지하고 좀 더 포괄적인 '실종법'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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