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보다 가볍고 더 긴 주행거리… 국산 수소전기버스의 반격
삼성전자 통근버스로 활용… 소음-진동 덜해 승차감 쾌적
전기버스 대비 주행거리 2배… 15분이면 수소 95% 충전 가능
중국산 전기버스 ‘대항마’ 기대… 보조금 늘며 시장 성장 가속화
충전-정비 인프라 확충은 숙제… “보급 물량 늘려 원가 절감해야”
각국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차세대 운송 수단으로 ‘수소 전기버스’가 각광을 받고 있다. 수소 전기버스는 기존 전기버스보다 연료가 가볍고 주행거리도 길다는 장점이 있는 데다 정부가 보조금을 계속 늘리고 있어 향후 보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충전·정비 시설 확대와 가격 경쟁력 개선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주변 환경에 무딘 편인데도 확실히 진동과 소음이 덜한 것 같아요. 특히 저속 구간에서 체감됩니다.”
26일 오전 7시 20분. 서울 잠실역에서 출발해 경기 수원시에 있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으로 향하는 통근용 수소전기버스에서 삼성SDS 직원 송모 씨(47)가 이렇게 말했다.
한 시간가량 수소전기버스에 타보니 실제로 그랬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고급 세단과 견주는 승차감. 엔진으로 구동하는 디젤버스에서 느껴지던 덜컹거림과 배기 소음이 전혀 없었다. 가속과 제동도 부드러웠다.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에 들어서자, 만족도는 배가됐다. 고요함 속에서 쏟아지는 눈꺼풀을 붙잡고 버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고된 출근길, 자투리 수면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은 최고의 직원 복지가 아닐까.》
이날 시승한 통근버스는 현대자동차가 2023년 4월 출시한 수소전기버스 ‘유니버스’다. 고속형 대형 버스 중에서는 세계 최초로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탑재해 에너지 생산부터 운행까지 전 단계에서 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
전세버스 사업자 원더모빌리티는 2023년 12월 유니버스 총 66대를 도입해 이 중 24대를 자회사 ‘온버스’를 통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통근버스로 운영하고 있다. 기업들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강화 기조와 정부의 친환경 정책이 맞물리며 수소전기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선제적인 도입에 나선 것이다.
박환진 원더모빌리티 수소사업총괄 상무는 “올해 수소전기버스 200대를 추가 도입하고 2030년까지 총 2000대 운영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연내 경기도 내 자체 충전소를 준공하는 등 충전 인프라 확충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 상용차의 미래는 ‘수소’… 전기버스 대비 강점
세계 각국이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상용차 부문에서 차세대 이동 수단으로 수소전기버스가 주목받고 있다. 통상 수소버스로 불리는 수소전기버스는 기존 전기버스와 달리 배터리 대신 고압 탱크 속 수소로부터 전기를 얻는다. 수소가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으로 공급되면 연료전지 내에서 수소와 산소가 화학 반응을 일으켜 전기를 생성하고, 이 전기로 모터를 구동하는 식이다.
수소전기버스가 소위 ‘상용차의 미래’라고 불리는 배경에는 기존 전기버스 대비 갖는 다양한 강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거리 운행을 해야 하는 상용차 특성상 무엇보다 주행거리가 중요하다. 전기버스의 경우 주행거리를 늘리려면 배터리 크기를 키워야 하는데 무게 때문에 한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300km가량을 달리는 전기버스 기준 배터리 무게만 약 2t에 달한다. 배터리 크기를 키우더라도 더 많은 충전 시간을 요하게 된다.
차체가 과도하게 무거워지면 노면으로부터의 진동이 차에 전달되는 것을 막아주는 서스펜션이 딱딱해져 승차감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연료 효율도 감소한다. 무거운 차체가 도로에 손상을 입히는 문제도 있다.
반면 수소전기버스는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이 가벼운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만큼 차체도 가볍다. 주행 거리도 2배 수준으로 길다. 유니버스의 경우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최대 635km에 달한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출퇴근하며 하루 약 100km를 주행하는 버스 기준으로 5∼6일에 한 번만 충전소를 방문하면 되는 셈이다.
기존에 약점으로 꼽혔던 충전소 부족 문제도 보완이 가능하다. 특히 노선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버스는 적은 수의 충전 인프라만 확보해도 운영 효율을 보장할 수 있다. 충전 시간도 개선되고 있다. 이일선 온버스 과장은 “신생 충전소들의 경우 95%까지 수소를 채우는 데 15분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 국산 수소버스가 중국산 전기버스 ‘대항마’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국내에 신규 등록된 전기버스 중 중국산 비중은 2019년 23.9%에서 꾸준히 늘어나 2023년에는 54.1%에 달했다. 국내 전기버스 시장의 절반 이상을 중국산이 차지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전기차 구매보조금 등 혈세가 중국 업체 지원에 쓰인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에 환경부는 지난해 2월 배터리의 효율성과 재활용성에 따라 차등을 주는 방향으로 보조금 체계를 개편했다. LFP 배터리는 국산 버스들이 주로 사용하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 대비 에너지 밀도가 낮고 재활용이 어렵다.
현대차는 중국산 전기버스가 주춤한 틈을 타 기술 우위를 점한 수소전기버스를 앞세워 버스 시장 파이를 늘려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수소전기버스에 핵심적인 수소연료전지 기술은 현대자동차, 두산퓨얼셀,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앞서 나가고 있는 영역이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현대차의 지난해 수소전기버스 판매 대수는 623대로 전년(302대)의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현대차는 올해 1000대 이상까지 보급 물량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보조금 확대는 호재… 가격 경쟁력 확보가 관건
정부가 수소전기버스 관련 보조금을 지속해서 확대하는 것도 수소전기버스 시장의 성장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수소전기버스 연료보조금을 이번 달부터 kg당 1400원 인상한다고 밝혔다. 현행 3600원에서 5000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으로 업계는 이를 통해 수소전기버스의 연간 연료비가 전기버스와 유사한 수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소전기버스 관련 보조금 규모도 꾸준히 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수소전기버스 구매 보조금 지원 물량은 2022년 340대부터 2025년 2000대까지 꾸준히 늘었다. 수소전기버스에 배정된 국고보조금도 2024년 4017억 원에서 2025년 4605억 원으로 확대됐다.
다만 충전·정비 인프라 확충과 가격 경쟁력 확보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버스 운영사 입장에서는 운영 단가가 낮아져야 보급을 확대할 수 있다. 근거리에 양질의 충전소가 늘어야 하는 이유다. 정비 인프라 확충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전인성 온버스 현장총괄 전무는 “50여 년간 운영된 디젤버스에 비해 수소전기버스는 역사가 짧다 보니 정비 인프라가 부족해 고장이 났을 때 유지·보수가 정체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신생 충전소들의 경우 아직 연료 공급 체계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못해 수소 보급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버스 자체의 단가를 낮추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 전기버스는 거대한 내수시장에 기반해 대규모 생산량을 확보하고 원가를 절감해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며 “한국 역시 5∼6년간 계획된 수소전기버스 보급 물량을 보다 단기간에 집중해 생산량을 확보하는 한편 충전 인프라, 에너지 수급, 송전망에 대한 장기 계획을 세우는 등 정부 차원에서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원=한종호 기자 hj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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