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20년 만에 가자 재점령 카드 만지작…“가자는 이스라엘의 미래가 아니다” [지금 중동은]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 (2025년 3월 21일)
"하마스가 인질 석방을 거부할수록 더 많은 영토를 잃게 될 것이며, 이(가자지구)는 이스라엘에 합병될 겁니다."
지난 21일 이스라엘 카츠 국방장관이 던진 이 발언은 중동 외교가에 충격파를 몰고 왔습니다.
가자 전쟁 휴전이 전격 파기된 뒤 나온 이 경고는 이스라엘이 20년 만에 가자지구 재점령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꺼내 들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카츠 국방장관의 발언과 동시에 이스라엘군이 행동에 돌입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주 가자지구 전역에서 대규모 공습에 나섰고, 곧이어 전투사단을 지상 작전에 투입했습니다.
이스라엘 병력은 주요 거점들을 장악하고, 하마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투입 병력을 2개 사단에서 3개 사단으로 늘리고, 헤즈볼라와 대치하고 있는 부대인 36기갑사단을 가자지구로 추가 투입할 계획입니다.
36기갑사단은 최대 1만 명이 소속된 이스라엘 최대 규모 사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네타냐후 "하마스 압박 방안에 가자지구 재점령 포함"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의회 연설 중 (2025년 3월 26일)
"가자지구에서 교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마스가 인질 석방을 거부할수록 더 강하게 압박할 겁니다"
"여기에는 영토를 점령하는 것 등이 포함됩니다."
카츠 장관의 가자지구 합병 발언이 나왔을 때 그 파장이 적지 않았지만, 강경파의 목소리로 치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발언은 분명 다른 무게를 가집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의회 연설에서 가자지구 재점령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이스라엘 내 강경파들이 요구해 온 가자지구 재점령 사안을 수면 위로 완전히 끌어올렸습니다.
극우파로 분류되는 베자렐 스모트리치 재무장관은 "가자지구는 우리가 알던 가자지구가 아닐 것"이라며 이스라엘군이 "일을 마무리"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올해 1월부터 가자지구 재점령 계획 수립"
지난 24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재점령 작전계획을 이미 안보 내각에 제출했습니다.
올해 1월 이후 이스라엘군은 새로운 참모총장의 지휘 아래 자세한 가자지구 재점령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가자지구 220만 명 인구를 지중해 연안의 좁은 '인도주의 구역'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계획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으로 가능해졌다고 전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동안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재점령하거나 영토를 합병하는 것에 반대해 왔습니다.
스모트리치 재무장관은 "가자지구는 우리가 알던 가자지구가 아닐 것"이라며 이스라엘군이 "일을 마무리"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가자지구 재점령을 향한 시계추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다.
이스라엘이 2005년 가자지구에서 철수한 지 20년 만입니다.
■ 샤론의 '분리 전략'과 그 후폭풍
2005년 아리엘 샤론 당시 총리가 가자지구 철수를 결정했을 때, 그의 논리는 명확했습니다.
당시 가자지구 인구 130만 명 중 유대인은 고작 8,500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엄청난 군사적, 경제적 자원을 투입해야 했습니다.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 등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와 자주 충돌을 빚었고, 적지 않은 이스라엘군인들이 숨졌습니다.
무장단체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가 발생해 국제사회의 비판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2004년 가자지구 남부에서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 군인 1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정착촌 철수 논의가 급진전됐습니다.
샤론 총리 측은 정착촌과 군인들이 철수하면 양측간의 충돌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철수 이후 상황은 이스라엘의 기대와는 크게 달랐습니다.
2007년 하마스가 가자지구 통제권을 장악한 이후, 이스라엘은 육상, 해상, 공중에서 가자지구를 봉쇄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는 2008년, 2012년, 2014년, 2021년 네 차례의 대규모 무력 충돌이 있었고, 그때마다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했습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이스라엘 당국에 따르면 약 1,200명이 사망하고 250여 명이 인질로 붙잡혔습니다.
"분리는 실패했다"는 목소리가 이스라엘 사회에서 높아졌습니다. 2005년 정착촌 철수를 '분리 계획'이라고 부릅니다.
강경파 정치인들은 처음부터 가자지구를 떠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중도 성향의 인사들조차 하마스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샤론의 분리 전략을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기 시작했습니다.
■ 2005년과 비슷한 2025년 상황
이스라엘의 재점령 논의는 여러 측면에서 역설적입니다.
샤론 당시 총리가 2005년 가자지구 철수를 결정한 근본적 이유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오히려 더 심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자지구 인구는 2005년 약 130만 명에서 현재 22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 많은 인구를 통치하는 데 따르는 인도적, 정치적, 군사적 부담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가자 전쟁 이후 5만 명 이상이 숨졌는데, 재점령은 더 큰 인명 피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더욱 격화시킬 겁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하마스의 완전한 제거 없이는 이스라엘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군사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재점령을 시도하더라도 단기간 내에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합니다.
18개월 가까이 전쟁을 수행해 온 이스라엘군은 피로감이 누적됐습니다.
또한 장기적인 점령은 그동안의 전례로 볼 때 저항 세력의 게릴라전과 테러 공격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상황을 놓고 보면, 결국 2005년 가자지구 철수를 결정했던 근본적인 딜레마로 돌아가는 셈입니다.
20년 전 샤론 총리는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미래가 아니다"라며 철수를 단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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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형 기자 (the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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