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의 할매 열전]놉은 한 고랑, 아짐은 두 고랑
초등학생 시절, 나는 경애 언니가 제일 부러웠다. 예쁘장하게 생겨서도, 광주 고등학교에 다녀서도 아니었다. 동네서 양동떡으로 불리던 언니 엄마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었던지 그 집에서 잠을 잔 적이 있다. 사춘기 접어든 언니들 이야기 듣느라 날 새는 줄도 몰랐을 테지. 해가 훤히 솟은 뒤에야 눈을 떴는데 다들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그 사이를 기어다니는 굽은 등이 보였다. 양동떡이었다. 양동떡은 혹여 누가 깰세라 조심조심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양동떡이 검지손가락을 입에 대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가. 왜 폴쎄 일나부렀냐. 더 자제. 밤새 노니라 곤했을 것인디…”
우리 엄마는 잔소리 대마왕이었다. 책이 비뚤게 꽂혀 있다, 양말을 뒤집어 벗어놨다, 반도 안 쓴 종이를 버렸다, 뻗친 머리를 물로 다독이지도 않는다, 엄마의 잔소리는 종류도 다양했다. 청소하는데 가만히 누워 있거나 친구들과 수다 떠느라 날밤을 새웠다가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잔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그런데 양동떡은 잔소리는커녕 노느라 고단했을 거라며 이불을 다독다독 덮어주고는 어젯밤의 흔적을 소리도 없이 치운 채 가만히 문을 닫고 나가는 것이었다.
양동떡을 눈여겨본 건 그 뒤부터였을 것이다. 양동떡은 우리 동네서 유일하게 땅콩 농사를 지었다. 섬진강변 모래투성이 밭이 땅콩 농사에 적격이라는 것을 처음 알아낸 사람도 양동떡이었다. 언젠가 새참 나르는 동네 아주머니를 따라 나도 땅콩밭에 갔다. 다른 놉들은 한 고랑씩 잡고 땅콩을 심는데 양동떡만 두 고랑을 잡고 일을 하는 중이었다. 새참이 오자마자 놉들은 호미를 집어던진 채 한달음에 달려왔다. 다른 사람이 시원한 콩국수를 다 먹도록 양동떡은 엉덩이를 들썩들썩, 땅콩을 심느라 바빴다. 빨리 오라고 몇번이나 소리친 뒤에야 마지못해 호미를 놓은 양동떡은 땅콩 심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콩국수를 씹지도 않은 채 들이켰다. 늦봄 뙤약볕에 타들어가는 땅콩 모종에 아짐 애간장도 탔을 테지.
“근디 아짐. 왜 아짐만 두 고랑을 잡고 일을 한대요?”
자기만 두 고랑 잡고 일하는 걸 알아본 내가 기특했는지 양동떡은 빙긋 웃었다. 그때 들은 말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누구든 제 일 할 때와 남의 일 할 때 마음가짐이 다르다. 남 일은 설렁설렁, 제 일은 후딱후딱 하는 게 일반적인 사람 심리다. 한 고랑씩 잡고 일을 하면 주인만 앞서 나가게 마련이다. 그럼 뒤처진 일꾼들은 부담을 느낀다. 그렇다고 주인이 일꾼처럼 설렁설렁 일할 수도 없는 노릇, 고육지책으로 양동떡은 옆으로 두 고랑을 잡은 것이다. 일을 두 배로 해도 나아가는 속도는 같아서 일꾼들 부담이 적기 때문이었다. 마음이란 걸 그렇게 쓰는 사람도 있다는 걸 양동떡에게 처음 배웠다. 덕분에 아무리 일손이 귀할 때라도 그 집만은 일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
부지런하고 마음 따순 양동떡에게도 딱 한 가지, 남편 복은 주어지지 않았다. 잘생긴 남편은 늘 집 밖으로만 돌았다. 논일도 밭일도 집안 살림도 다 양동떡 차지였다. 애 다섯을 서울 명문대에 보낸 양동떡은 환갑도 되기 전에 허리가 굽었다. 병원 한 번 가지 않은 덕에 일찌감치 이가 다 빠져 합죽이였다. 볕 잘 드는 겨울, 툇마루에 앉아 반쯤 닳은 놋숟가락으로 사과를 긁어 먹던 그이의 모습이 어제인 듯 눈에 선하다.
그 허리에 그 치아로도 양동떡은 백세를 살았다. 그 무렵의 양동떡은 희디흰 본색을 되찾고 살이 올라 부처님 같은 얼굴로 지나가는 똥개만 봐도 환하게 웃었다. 주변까지 다 환해지는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그이가 가고 난 뒤 집에서 장부 하나가 나왔다. 알아볼 수 없는 기호가 잔뜩 적힌. 양동떡은 까막눈이었던 것이다. 명문대 나온 자식 다섯이 머리를 맞댔으나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다. 돈 빌려준 장부가 아닐까 짐작하면서도 양동떡 닮아 품 넓은 자식들은 가뿐히 포기했다. 양동떡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 경애 언니가 웃는 얼굴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삼수할 때도, 회사 때려치울 때도, 사업하다 망했을 때도, 이혼했을 때도, 울 엄마는 한 번도 혼을 안 냈어. 나한테는 엄마가 아니라 부처였는데 엄마 없이 나 이제 어떻게 사니?”
나에게도 곧 닥칠 일이라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서늘하다.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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