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터전 잃고 희망마저 타버렸다”… 이재민들 망연자실

배소영 2025. 3. 27. 18: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화마 휩쓴 안동·영덕 르포
“집도 사과밭도 잿더미… 앞길 막막”
체육관 대피소에 텐트 ‘다닥다닥’
여름용 홑이불 덮고 새우잠 청해
실내도 연기 번져 마스크 못 벗어
“먼저 떠난 남편 사진 한 장도 없어”
대피 사흘 만에 찾은 마을 전쟁터 방불
“전부 타서 우리집 맞는지도 모르겠다”

“남편 영정사진 못 챙긴 게 가장 큰 한이 돼요.”

서울의 절반이 넘는 산림(3만6000여㏊)을 잿더미로 만들고 27명의 인명을 앗아간 ‘사상 최악’의 영남권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 대피소가 차려진 경북 안동시 안동체육관. 27일 만난 김정자(86)씨는 ‘멍’하니 그야말로 넋을 놓고 있었다. 김씨는 “먼저 저세상으로 떠난 우리 남편 사진이 이제 한 장도 없다. 우리 애들이 ‘아빠 얼굴은 이제 기억에만 남겨야 한다’고 할 때 숨죽여 눈물을 훔쳤다”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손녀가 선물해 준 아까워 입지 못한 옷이라도 실컷 입어둘 걸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김씨의 두 눈은 벌겋다 못해 핏발이 선 상태였다.
마음도 숯덩이 27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에서 발생한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한 주민이 전소된 집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영양=뉴시스
안동체육관 내부에는 가로·세로·높이 2m짜리 텐트 120여동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이재민 수용 공간을 늘리기 위해 콘크리트 바닥이 깔린 한기가 올라오는 복도까지 텐트가 길게 늘어졌다. 이들은 이불이 부족한 탓에 구호물품으로 배급된 얇디얇은 여름용 홑이불을 서로 나눠 덮고 새우잠을 청했다. 하늘을 뒤덮은 매캐한 연기가 실내까지 번져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마을 주민들과 둘러앉아 한숨을 내쉬던 박대경(82)씨는 “치매가 있는 남편이 자꾸 ‘집에 가자’고 하는데 ‘우리 집이 다 탔다’고 이야기를 해도 알아듣지 못해 울화가 치민다”면서 “6·25전쟁 때 맨몸으로 피란 간 거랑 지금이랑 다를 바가 없다”고 푸념했다. 김옥희(88)씨는 “10분만 대피가 늦었어도 목숨을 잃었을 정도로 집 뒷산에 도깨비 불꽃이 여기저기 튀었다”면서 “유일한 재산인 사과밭이 모두 불에 탔다고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사냐”고 눈물을 글썽였다. 실제로 김씨가 사는 일직면 조탑리는 빈집을 제외한 마을 주택 50채 가운데 22채가 불에 타 잿더미가 됐다.
27일 오후 경북 영덕군 영덕읍 군민체육센터에서 지품면 등 산불 피해 이재민들이 대한적십자사 등 자원 봉사자들이 준비한 식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영남권 산불로 이재민 대피소가 차려진 27일 경북 안동체육관에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모여 서로를 다독이고 있다. 안동=배소영 기자
이날 영덕국민체육센터에서 만난 김부호(77)씨는 영덕군 영덕읍에 있는 작은 어촌마을인 노물항 인근에서 칠십 평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이 같은 평온한 일상은 영덕 산불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김씨는 “30여년 동안 생계의 원천인 2t짜리 고기잡이배인 해진호와 집, 트럭 한 대까지 이번 산불로 몽땅 다 탔다”며 “앞으로 살아야 할 길이 막막하다”며 하소연했다.

이 마을에 사는 윤학범(78)씨와 부인 김미정(74)씨도 이번 산불로 6년째 운영해 오던 펜션 9채가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윤씨는 “당시 펜션을 신축할 때 토지 매입비와 건축비 등 13억원이라는 목돈이 들어갔다”며 “펜션 운영을 통해 생계를 이어왔는데 이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관계 당국의 조속한 대책 수립을 강력히 촉구했다.

27일 경북 안동시 길안면 마을 곳곳이 산불에 타 폐허로 변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이날 오후 찾은 안동시 길안면은 그야말로 전쟁터 같았다. 화마에 사흘 만에 집을 찾은 권모(70대)씨는 집 앞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엉엉 통곡했다. 텔레비전에 냉장고, 세탁기, 옷가지, 집기류까지…. 벽돌만 겨우 형체가 남아 집임을 짐작하게 했다. 권씨는 “몽땅 타 여기가 우리 집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우리 막내딸이 곧 결혼하는데 살림살이에 보태라고 안 먹고 안 입고 500만원을 장롱에 고이 모아뒀는데 불에 다 탔다. 어떻게 모은 돈인데…”라며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27일 경북 영덕군 지품면 원전리 산불 현장에 내리는 비에 한 주민이 우산을 쓰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자(86)씨는 뼈대까지 까맣게 타버려 무너진 집을 쳐다보며 옷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아댔다. 그는 “60년 넘게 머리 뉘어 자던 우리 집이 하룻밤 새 사라졌다”면서 “더는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다. 이 마을에 매캐한 연기가 뒤덮이기 시작한 건 의성 산불 발생 나흘째인 25일 오후 4시쯤부터다. “대피하라”라는 이장의 외침을 듣기 전까지 김씨는 밭일을 나갔다가 집에 잠깐 들어와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고 했다. 김씨가 집 밖을 나섰을 땐 이미 불길이 마을 인근을 둘러싸고 있었다. 결국 김씨는 휴대전화만 챙겨 집을 빠져나왔다. 그는 무릎 장화에 작업복 차림으로 집을 나선 뒤 사흘째 같은 옷차림이었다.

멍하니 다 탄 집을 바라보던 주민 김모(50대)씨는 ‘마음에 까만 재’가 내려앉은 것만 같다고 했다. 손때가 묻은 오래된 폴더폰 속 푸릇푸릇한 논밭 사진을 바라보던 김씨는 “대출로 산 트랙터랑 농기계가 모두 타 버려 농사도 못 짓는다. 희망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며 “가장으로 힘을 내야 하는데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안동·영덕=배소영·이영균 기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