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제 구조물이 전부가 아니다…중국 ‘서해 내해화’ 큰 틀 보고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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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에 설치한 초대형 철제 구조물이 한·중 관계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달 26일 한국 해양조사선이 이 구조물을 조사하려다가 중국의 방해로 무산된 상황이 지난 18일 처음 알려진 뒤, 정치권 안에서는 중국이 양국 해양경계협정이 맺어지지 않은 서해를 ‘내해화’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민의힘은 “서해를 중국화하기 위한 사실상 ‘해양 알박기’”라며 “문재인 정권은 특별한 조치 없이 2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냈”기 때문이라고 전 정부 탓을 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수교 33년 동안 한·중 양국이 쌓아 온 신뢰를 훼손할 수 있는 구조물 설치를 당장 중단하라”며 “현재 설치된 구조물에 대한 한국 쪽의 조사에 협조할 것”(박경미 대변인, 25일 논평)을 중국 쪽에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주한중국대사관은 그러자 26일 대변인 명의로 입장을 내 이 구조물은 “중국 근해에 위치한 심해 어업 양식 시설”이라며 “중국 국내법 및 국제법에 부합하고 한·중어업협정을 위반하지 않으며 협정에 따른 한국 측 권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또 “해양 환경과 항행 안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도 밝혔다.
초대형 철제 구조물의 정체는
현재 서해상에 설치돼 있는 2개의 중국의 초대형 철제 구조물은 선란 1호와 2호로 알려진 시설이다. 선란1호는 2020년 3월 우리 해군이 처음 발견했는데, 중국 언론 보도를 보면 2018년 처음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이어 2024년, 선란 1호의 남쪽에 선란 2호가 추가로 설치된 것을 발견했다. 두 시설 모두 각각 지름 70m, 높이 71m의 거대한 철골 구조물로 알려졌다. 주한중국대사관이 “심해 어업 양식 시설”이라고 밝힌 것처럼, 중국 언론들도 연어 양식 시설이라고 보도해왔다. 최근 들어 구조물 1개가 추가 설치될 것으로 보이는 동향이 포착됐지만, 아직까지 실제로 설치되지는 않은 상태다.
한국 일부 언론에서 이를 ‘불법 시설물’이라고 보도했지만, 현재 한·중 간에 맺어진 어업협정이나 국제해양법 상 ‘불법’은 아니다. 어업협정은 허용 어선 수나 허용 어획량 등은 규정하고 있지만, 구조물 설치에 관한 규정은 따로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구조물이 설치된 지역은 우리가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경계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간선(양국 해안선으로부터 동일하게 떨어져 있는 곳)을 기준으로 중국 쪽에 가까운 쪽이라 법적으로 문제 삼기는 어렵다.
하지만 ‘불법’은 아니라고 해도 양국 해양 경계가 확정되지 않은 수역에서 중국 쪽이 일방적으로 구조물을 설치하고 실제 어업용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한국 조사선을 막는 것은 외교적,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의도 둘러싼 논란
근본적인 문제는 서해에 대해 한·중 양국의 주장이 엇갈려 해양 경계 협정이 맺어지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 한·중은 서해상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선을 정하기 위해 현재 해양경계획정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은 가상의 중간선을 주장하고, 중국은 동경 124도선을 직선으로 긋는 경계선을 주장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인공섬을 만들어 그랬던 것처럼, 이번 구조물 설치를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하려고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존재하던 암초 위에 군사시설 등을 세워 섬으로 만든 뒤 이를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삼았지만, 철제 구조물은 영유권 주장의 근거인 섬이 될 수 없다. 조태열 장관도 24일 국회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구조물을 갖고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해양법 협약상 근거가 없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중국의 구조물 설치가 지니는 ‘안보적 함의’에 대해서는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2010년대 이후 서해에서 군사적, 비군사적 활동들을 강화하면서 서해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이른바 ‘서해 내해화’ 움직임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해양전략연구소의 2022년 보고서를 보면, 중국은 한국 해군에 중국이 주장하는 서해 경계선인 동경 124도 선을 넘지 말 것을 계속 요구해 왔다. 그러면서도 중국 군함과 순시선들은 한국이 경계선으로 주장하는 서해 중간선을 넘는 활동(2019년 290여회)은 계속 늘려왔다. 중국 군용기들의 서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침범도 늘고 있다. 중국이 서해에서 이어도 인근까지 이어지는 지역에 해양관측 부이를 설치하는 것도 한·중 간 갈등의 원인이 되어왔다. 이 부이가 한국과 미국의 잠수함 이동을 탐지하려는 것이라는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논란이 된 구조물인 선란 1호와 2호는 서해를 관할하는 중국 북해함대 사령부가 위치한 산둥반도 칭다오 아래 쪽에 설치되어 있다.
한국이 취해야 할 대책은
정부는 이 철제 구조물 설치 문제에 우선 중국에 외교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협상을 해나가는 한편, 해양과학조사를 통해 중국의 시설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 환경 오염은 없는지 등을 살피고 여러가지 ‘비례적 조치’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이 서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상황에 한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위성락 민주당 의원은 지난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구조물뿐만 아니라 중국의 서해 영향력 확대 노력은 우리에게 심각한 안보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위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중국이 서해에서 한국의 접근을 막으려는 ‘반 접근 전략’을 추구하는 것은 분명한데도 역대 정부 모두 이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며 “서해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할 수 있는 잠수함 전력 등을 충분히 강화하는 한편 서해 경계를 확정해 안정적 법적 장치를 만들 수 있도록 외교 협상을 더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한중 관계의 주요 과제로 등장했다”고 말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도 “중국은 2010년 무렵부터 대양해군 전략을 채택해 남중국해, 동중국해 등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서해에서도 군함과 순시선 활동을 늘리는 동시에 구조물과 부표 설치 등 ‘회색지대 전술’(비군사적인 애매한 방법의 저강도 도발)을 병행해 서해 내해화를 진행해 왔다”며 “정부가 경각심을 가지고 해경 전력을 대폭 강화해 억제력을 강화하면서 외교적 협상을 병행하는 위기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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