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시대"…연상호, 현실의 우화 (계시록)

정태윤 2025. 3. 2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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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atch=정태윤기자] "어쩌면 사회가 잉태한 작품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연상호는 그간 '믿음'에 대한 탐구를 주제로 삼아왔다. '지옥', '사이비', 그리고 '계시록'까지. 이번 작품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담았다.

"지금은 점점 취향을 강조하는 시대 같습니다. 넷플릭스도 '당신의 취향'을 추천하잖아요. 원하는 것만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시대가 된 거죠."

그래서, 넷플릭스 '계시록'을 꺼냈다. 인간 본능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대로 믿고 싶어 하는 인물들의 충돌을 통해 현재를 비춘다.

지금 우리 사회와 닿아있는 이야기, '계시록'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 계시록, 현실의 계시

넷플릭스 '계시록'은 각자의 믿음을 쫓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실종 사건의 범인을 단죄하는 것이 신의 계시라 믿는 목사와, 죽은 동생의 환영에 시달리는 실종 사건 담당 형사가 주인공.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현시대의 우화다. 그는 "욕망하는 것만 보게 되는 현실, 그리고 그것을 방조하는 사회의 분위기를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복잡한 시기(탄핵 정국 등)와 맞물려 있다. 그래서 연상호는 "제가 썼지만, 사회가 잉태한 작품 같다"고 털어놨다.

"자기가 원하는 앵글대로 보는 현상이 점점 심화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키워드는 극단적 분열, 편 가르기와 혐오의 시대이고, 반지성과 맹목적 믿음의 시대이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우연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이 세상에서 벌어진 일을 딱 떨어지게 결론 내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아무 시도도 하지 않고 있을 순 없을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려 합니다. '계시록'엔 그 모습이 담겨 있는 거죠."

◆ 믿음이 직업인 사람들

이번에도 종교와 주제 의식을 연결했다. 목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지옥'에 이어서 또다시 광기 어린 종교인을 등장시켰다.

연상호는 "믿음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이, 영화적으로 굉장히 매력적"이라며 "직업 자체가 주는 극적인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자칫하면, 기독교를 비판하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지 않을까. 연상호는 "그럴 의도는 없었다. 종교인의 특성이 주제 의식을 전달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파레이돌리아'(무의미한 자극에서 의미 있는 형태를 인식하는 현상)가 이 영화의 모티브다. 이를 겪는 사람 대부분이 종교인이기 때문에 설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교가 아닌, 확증편향이 심화되는 사회를 꼬집고 싶었다는 것.

"이 이야기를 하나의 우화로 만들기 위해 종교를 사용했습니다. 다른 직업과 대체해도 무관합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믿음의 근원은 조금씩 다르지만, 내포된 건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류준열, 성민찬의 완성

성민찬(류준열 분)은 영화의 주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인물이다. 아전인수식 사고방식을 가졌다. 작은 교회를 이끌고 살던 중 갑작스럽게 일어난 실종 사건의 범인을 단죄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게 된다.

하루아침에 변화를 맞게 되는 인물이다. 류준열은 입체적으로 민찬을 완성했다. 맹목적인 신념을 켜켜이 쌓아 올린 후, 광기 어린 활화산으로 터트려냈다.

믿음에서 광기로 돌변하는 과정을 납득하게 하며 호평이 이어졌다. 연상호는 "(류준열이) 작품을 깊게 파고들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덕분에 인물의 퀄리티가 올라갔다"고 말했다.

"아주 작은 것 하나, 걸음걸이까지도 '이렇게 걷는 게 맞을까' 생각을 많이 하는 배우입니다. 본인의 연기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죠. 정말 영화 생각밖에 안 하는 것 같았어요."

일례로, 성민찬이 계단을 내려오다 넘어지는 장면. 류준열은 촬영 당시 넘어지는 방식과 모양새만으로도 수십 가지의 방법으로 고민해 완성했다.

"류준열 배우가 미팅 때 '제가 질문이 많은 편인데 괜찮으시냐'고 묻더군요. 실제로 질문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데 쓸데없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하나도 버릴 게 없었죠. 그 물음에 답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톤을 찾아나가기도 했습니다."

◆ "다작하는 이유는…."

연 감독이 인터뷰 때마다 받는 질문이 있다. 바로, 다작. 지난 2년간 5개의 작품에 참여했다. (솔직히) 모든 작품이 대중의 기대를 미치진 못했다. '연니버스'에 대한 피로도도 종종 언급된다.

그러나 이번 실험은 통했다. '계시록'은 공개 3일 만에 글로벌 톱10 영화(비영어) 1위에 올랐다.

연 감독은 "많이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건 아니다. 생활 패턴이 작품을 쓰고 만들고, 쓰고 만들고의 반복적이다. 그걸 계속 유지하고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음 작품은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저예산 영화 '얼굴'이다. 그는 "투자에도 참여했다. 덕분에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며 "5개의 인터뷰가 순차적으로 나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블록버스터 '군체'도 촬영 중이다. 전지현이 약 10년 만에 복귀하는 영화다. 그는 "'부산행'과 '지옥'의 강점을 모아 만든 영화다. 제가 필모 중 가장 상업적인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스포일러했다.

앞으로도 쉬지 않고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단, 탈(脫) '연니버스'를 꿈꾼다.

"연니버스를 키워나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의도치 않은 별명이에요. 업계에서도 연니버스의 가치를 그렇게 높게 보지 않고요. 연니버스가 무의미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다른 걸 하고 싶습니다. 로맨스도 구상에 있고요. 하하."

<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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