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굴기’ 빛나는 中… 밑바닥선 영세상인의 한숨[]

박세희 기자 2025. 3. 2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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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Focus - 경기침체 속 자영업·초단기 근로자 급증
中 AI모델 ‘딥시크’ 열풍 불지만
5명 중 1명 농업 등 1차 산업 종사
과학연구·기술 서비스업 5%뿐
건설업 노동자였던 과일 노점상
불황여파에 월수입 40만원 줄어
배달라이더·공유車 운전기사 등
긱워커 2억명… 경쟁은 더 치열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카슈가르시에 세워진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 동상 앞을 한 상인이 과일이 담긴 손수레를 끌고 지나고 있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권호영 기자

베이징=박세희 특파원 saysay@munhwa.com

최근 딥시크(DeepSeek) 돌풍 이후 중국 내 기술 기업들을 향한 관심이 커지면서 기술 직종 근무를 희망하는 중국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중국의 취업 플랫폼 즈롄자오핀(智聯招聘)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내 구직자 10명 중 6명이 인공지능(AI) 기술자 등 AI 관련 직종 취업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재 중국 경제를 지탱하는 산업은 기술 분야가 다는 아니다. 중국의 1차 산업 비율은 다른 신흥 국가들보다 훨씬 높으며 도·소매업, 서비스업 등 자영업의 비중도 높다. 지난달 1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테크 기업 수장들을 비롯한 민영 기업 대표들을 불러모아 개최한 좌담회에서 큰 관심을 끈 이는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馬雲), 딥시크의 창업자 량원펑(梁文鋒) 등이었지만 이들 사이에는 거대 사료생산업체 신시왕(新希望) 그룹의 류융하오(劉永好) 회장이 있었다.

◇中 1차 산업 비율 22.8%…과학연구·기술 서비스업은 5% = 중국 국가통계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제5차 전국 경제 조사 공보’와 11월 발표한 ‘중국 통계 연감 2024’의 고용 기본 상황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중국 내 총 고용 인원은 7억4041만 명으로, 이 중 약 1억6882만 명이 농업, 임업, 축산업, 어업 등 1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전체 고용의 22.8% 비율이다. 좌담회에 농업을 대표하는 류 회장이 참석할 만큼 중국에서 농업은 여전히 중요한 산업이다. 제조업 종사자 비율도 높다. 1억481만5000명이 제조업에 종사한다. 2·3차 산업 법인 종사자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일하는 업종이 바로 제조업이다.

반면 중국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과학 연구 및 기술 서비스업 종사자 수는 1700만3000명, 정보 전송·소프트웨어·정보 기술 서비스업 종사자 수는 1517만9000명이다. 5년 전인 2018년에 비해선 각각 약 500만 명씩 늘었지만 여전히 전체 고용의 5%에 불과한 수치다. 중국의 ‘기술 굴기’가 전 세계를 위협하지만, 모든 사람이 딥시크와 같은 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부동산 위기에 건설업 종사자 줄고 도·소매업 종사자 늘어 = 중국의 경제 구조는 중국 경제의 흥망과 함께 변화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좋았던 때 건설업, 금융업 역시 호황이었다. 중국이 5년마다 한 번씩 조사해 발표하는 전국 경제 조사 공보는 중국 경제 구조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인데 이번에 발표된 2023년 결과와 그 직전인 2018년 결과를 비교하면 최근 중국 경기 침체 속 경제 구조의 변화가 감지된다. 2023년 기준 건설업 종사자 수는 5117만2000명으로 이전에 비해 691만9000명이 줄었다. 부동산 경기 침체 탓이다. 금융업 종사자 수 역시 583만2000명이 줄어 1248만4000명으로 집계됐다. 중국 정부가 금융업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서 종사자도 크게 줄어든 것이다.

경기 침체, 정부의 단속 강화 등으로 일을 그만두게 된 이들은 어디로 향했을까. 통계로 보면 대다수가 서비스업 및 도·소매업으로 업종을 변경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임대 및 비즈니스 서비스업 종사자 수는 2018년에 비해 1616만5000명 늘었고 도·소매업 종사자 수 역시 1317만3000명이 증가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을 “상인들의 나라”라 칭하며 건설업계에서 일하다 부동산 위기 이후 과일 노점상을 하고 있는 38세 천(陳) 씨에 대해 보도했다. 2021년 부동산 위기 이전엔 허난(河南)성에서 건설업계에서 일하며 평균 노동자 월급 이상인 월 9000위안(약 180만 원)을 벌었던 그는 현재 베이징(北京)의 한 과일 노점에서 일한다. 그의 월수입은 현재 7000위안을 넘지 않는다.

◇경기 침체 속 자영업자 증가…긱 워커도 2억 명 = 부동산 위기로 촉발된 경기 침체가 이어진 최근 5년간 자영업자 수도 크게 늘었다. 2018년 1억4931만200명이던 자영업자 수는 5년 동안 약 3000만 명이 늘어 2023년 1억7956만4000명이 됐다.

경기 불황과 함께 급속도로 늘어난 또 다른 노동 집단은 긱 워커(gig worker)다. 긱 워커란 초단기 노동자를 일컫는데 배달 라이더와 차량 공유 서비스 운전기사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급증했다. 팬데믹 이후 불어닥친 불황의 여파로 전례 없는 규모의 실업자가 나타났고 이들이 운전 면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이 업종에 뛰어든 것이다. 현재 약 2억 명의 긱 워커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내수 침체로 배달 음식 주문량이나 차량 호출 건수는 줄어든 반면, 라이더 및 운전기사의 수는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이들이 가져가는 수수료 단가도 점차 낮아졌다. 열악한 노동 환경과 이로 인한 갈등은 중국의 또 다른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9월엔 항저우(杭州)에서 하루 16시간 넘게 일하며 배달왕이라 불리던 55세 배달 기사가 과로사로 오토바이 위에서 사망해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으며 배달 기사들이 임금 미지급에 집단적으로 항의하는 모습이 포착되는 한편 건물 경비원들과 배달기사들 간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업률이 치솟는 상황 속에서 중국 정부는 긱 워커를 더욱 장려하고 있다. 최근엔 중국 교통부 등 7개 부처가 배달 및 차량공유 플랫폼은 배달원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소득을 보장하고 노동자의 사회보험 적용을 보장해야 한다고 발표하는 등 배달 기사 노동조건 개선을 중요한 과제로 선언했으나 실제로 이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되는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자기 파괴적 근무에 지친 中 MZ들 “996 말고 888”

“996이 아닌 888.”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 중국의 대표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百度)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라 있던 단어다. 언론의 관심은 인공지능(AI) 지원, 대규모 경기 부양책 등으로 향했지만 악명 높은 중국의 근로 시스템 ‘996’(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6일 근무)에 지친 중국 젊은이들은 ‘888 근무제’에 관심을 쏟았다. ‘888 근무제’는 한 인민대표가 제시한 의견으로 8시간 근무, 8시간 휴식, 8시간 개인 시간을 뜻한다.

서방은 ‘996 근무제’를 통해 중국이 기술 개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됐다고 바라보기도 하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과도한 업무 시간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 노동법은 근로 시간을 하루 8시간으로 정했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중국 내에선 0시부터 0시까지 24시간 주 7일 근무제를 말하는 ‘007 근무제’,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8시에 퇴근, 일주일에 6일 일하는 ‘886 근무제’, 오전 7시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1시에 퇴근, 하루 15시간 일하는 ‘715 근무제’ 등도 회자된다.

이에 중국에선 과로사하는 일도 종종 전해진다. 지난 5일엔 중국의 저명한 재료공학자인 류융펑(劉永鋒) 저장(浙江)대 교수가 과로로 사망했다. 류 교수 부인은 남편의 업무용 컴퓨터를 복원한 결과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법정 근무일은 183일이었지만 실제로는 319일 근무했다고 전했다. 오후 9시를 넘어서까지 일한 날은 148일, 오후 10시가 넘어서까지 일한 날은 105일이었다고도 덧붙였다. 지난달엔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시의 한 철도역에서 쓰러진 40대 남성이 응급 조치로 정신을 차린 뒤에도 “출근을 해야 한다”며 병원 이송을 거절했다는 소식이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근 중국 기업들 내에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가전기업 메이디(美的)는 오후 6시 강제 퇴근 조치를 내렸고 평소 직원들이 자정을 넘어 일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드론업체 DJI는 오후 9시 퇴근을 강제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가전기업 하이얼(海爾)은 모든 직원에게 이틀간의 주말을 지킬 것을 지시했다. 대형 잡화 판매 기업 밍촹유핀(名創優品)은 이른바 ‘333 원칙’을 만들어 시행 중이다. 회의는 최대 30분을 넘지 않게 하고 보고서는 3페이지를 넘지 않아야 하며 한 사안에 대해 3번 논의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움직임을 중국 내에선 ‘판네이쥐안(反內卷)’ 활동이라 부른다. ‘네이쥐안’은 안으로 점점 말려 들어가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자기 파괴적인 과도한 경쟁을 지칭한다. 리창(李强) 중국 국무원 총리도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업무보고에서 불필요하게 과도한 네이쥐안식 경쟁을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펑파이(澎湃) 뉴스는 최근 “국가 차원의 움직임에 더해 직장 문화를 재정비하려는 기업들 자체의 노력으로 점점 더 많은 기업이 ‘판네이쥐안’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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