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명에 1명 겪는 '척추이분증' 원인 유전자 첫 규명

이병구 기자 2025. 3. 2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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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 연세대 의대 등 韓美 공동연구팀, 네이처에 발표
척추이분증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된 후 태아의 초기 발달 과정에서 척추가 완전히 닫히지 않는 선천성 질환이다. 척추가 벌어진 틈으로 신경과 뇌척수막, 뇌척수액 등이 튀어나와 주머니 같은 형태를 만든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제공

척추이분증은 선천적으로 태아의 척추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평생 발달장애, 배뇨장애 등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3000명에 1명꼴로 흔히 나타난다. 한미 공동연구팀이 척추이분증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결과와 방법론은 척추이분증 진단·예방 기술과 환경적·유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관여하는 자폐증 등 질환 연구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김상우 연세대 의대 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 교수팀과 조셉 글리슨 미국 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대(UCSD) 교수팀이 공동연구를 통해 척추이분증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밝혀내고 연구결과를 26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했다고 밝혔다.

척추이분증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된 후 태아의 초기 발달 과정에서 척추가 완전히 닫히지 않는 선천성 질환이다. 척추가 벌어진 틈으로 신경과 뇌척수막, 뇌척수액 등이 튀어나와 주머니 같은 형태를 만든다. 피부 밖으로 신경 등이 튀어나와 있어 감염 위험이 크다. 척추이분증 환자는 태어난 지 48시간 내에 응급하게 수술해야 한다.

척추이분증 환자는 이후 발달장애, 보행장애, 배뇨장애 등의 증상을 동반할 확률이 높다. 김 교수는 "척추이분증 환자 한 명을 돌보는 데 평생 약 12억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나 사회적 비용도 굉장히 높다"고 설명했다.

약 3000명 중 1명 꼴로 발병하는 척추이분증은 비교적 흔한 선천성 질환이다. 유전적 원인과 환경적 원인이 모두 작용해 복합적이다. 임산부의 엽산(비타민 B9) 섭취가 부족하면 척추이분증이 발생한다는 것이 대규모 연구결과로 밝혀진 바 있다. 임산부의 엽산 섭취 장려로 척추이분증 발병이 크게 줄었지만 엽산 섭취가 충분한 상황에서도 척추이분증 환자는 계속해서 나왔다.

과학자들은 척추이분증 발병에 환경적 요인뿐 아니라 유전적 원인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척추이분증 발병에 관여하는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를 찾는 것은 까다로웠다. 쥐 실험에서 약 300개의 유전자가 척추이분증에 관여하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이 유전자들은 인간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척추이분증이 부모에게서 나타나지 않아도 자식에서 새로 등장하는 돌연변이 형태인 '드 노보(De novo)'라고 가정하고 미국 연구팀과 협업해 전세계 851명의 척추이분증 환자와 가족 2451명을 대상으로 유전자 분석을 진행했다. 

미국 연구팀이 10년 전부터 모아온 척추이분증 환자와 가족 데이터와 한국 연구팀의 숙련된 DNA 데이터 분석 기법이 결합한 것이다. 김 교수는 "이전 연구 대다수는 수십명 정도 규모고 드 노보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모 유전자 없이 환자의 유전자만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분석 결과 척추이분증의 원인은 단일 유전자가 아니라 수백 개의 유전자들이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유전자가 아닌 기능 단위로 접근해 유전자들의 연관성을 살피는 '네트워크 분석' 기법을 활용했다.

유전자는 다수가 상호작용하며 몸에서 특정한 생물학적 기능을 구현한다. 연구팀은 척추이분증을 일으키는 유전자들이 공통적으로 몸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파악해 해당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척추이분증이 발생한다는 것을 역으로 확인했다. 네트워크 분석 기법은 질환과 관련됐지만 돌연변이 데이터가 없는 원인 유전자도 추가로 찾아낼 수 있다.

척추이분증과 관련된 유전자와 생물학적 기능을 네트워크 분석 기법으로 분석한 결과. 후보군으로 선정된 5개의 생물학적 기능 중 세포골격, 미세소관 형성 기능이 가장 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상우 교수 제공

연구팀은 세포 섬유를 합성해 세포 골격과 구조를 유지하는 기능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척추이분증 발생에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척추가 형성될 때 신경관이 둥글게 말리며 접합되어야 하는데 세포 섬유가 제대로 합성되지 않아 척추가 닫히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연구팀은 분석을 통해 선별된 유전자 일부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실제로 신경관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척추이분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개구리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척추이분증을 치료하는 방향으로 활용되긴 어렵다. 태아 상태에서 유전자를 편집하는 것은 윤리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척추이분증은 태아 상태에서도 등에 주머니가 있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현재도 출산 전 사전 진단은 가능하다. 다만 척추이분증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에 영향을 주는 약물과 환경적 요인을 최대한 제거할 수 있는 물질을 찾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신경계 선천성 기형의 원인 규명뿐만 아니라 향후 질병 예측 모델 개발에도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연구 방법론은 척추이분증 외에도 유전자가 다수 관여해 원인이 복합적인 질환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 교수는 "특정 유전자와 연관돼 0 아니면 1로 발생하는 질환이 아닌 자폐증, 당뇨병, 조현병 등 스펙트럼 형태로 나타나는 인간의 다양한 질환 연구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규모 환자를 모집할 수 있었던 미국 연구팀의 능력과 숙련된 DNA 분석 기법을 가진 한국 연구팀이 협업해 이룬 성과"라며 "네트워크 분석 기술을 활용해 앞으로 국내외 협업을 확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 doi.org/10.1038/s41586-025-08676-x

왼쪽부터 논문 제1저자인 하유진 연세대 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 연구원, 김상우 교수, 조셉 글리슨 미국 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대(UCSD) 교수. 김상우 교수 제공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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