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살기로 휠체어 태웠는데…” 요양원 차량폭발, 3명 숨져
26일 오전 경북 영덕군 영덕읍 A요양원은 전날 화마가 할퀴고 간 흔적으로 처참했다. 이 요양원은 지난 25일 밤 불덩이를 피해 입소자를 대피시키던 중 자동차가 폭발해 80대 입소자 3명이 숨진 사고가 일어난 곳이다.
산불을 피해 직원 2명과 입소자 4명이 탄 자동차는 7번 국도로 진입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불씨가 사방에서 날아들어 옮겨붙었다고 한다. 직원이 차에서 내려 뒷좌석에 있던 입소자를 하차시키기 시작했는데 1명이 내리자마자 폭발했다. 요양원 관계자는 “거동이 불편한 입소자도 많아 죽기살기로 휠체어에 태워 옮기던 중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경북을 휩쓴 역대급 산불은 이들을 포함해 모두 2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같은 날 경북 청송군 파천면에 사는 80대 여성도 미처 대피하지 못해 숨졌다. 진보면 진보문화센터로 대피한 남편은 “아내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왔으나 순간 불똥이 튀면서 아내 몸에 불이 붙는 바람에 함께 대피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산불에 폐허로 변한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한 주택에서도 80대 남성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남성은 80대 아내와 함께 살았는데 둘 다 거동이 불편했다고 한다. 경찰은 숨진 남성의 아내를 찾는 한편, 현장에서 발견된 뼛조각을 감식해 신원을 확인하기로 했다.
이 마을에 사는 박종인(59)씨는 “집 문을 열고 나오는데 뒷산에서 날아온 불바람이 가족을 덮쳤다”며 “이 바람에 온 가족이 화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치료 중인 박씨는 “불이 가족을 덮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집과 창고, 농기계에 옮겨붙어 순식간에 모든 게 불탔다”고 설명했다.
산불 당시 진보면으로 대피 행렬이 몰리면서 마을은 아수라장이 됐다. 대피하지 못한 이명식(80)·이태경(75)씨 부부는 기지를 발휘해 목숨을 건졌다. 너른 들판에 차를 세워둔 채 40~50분간 불길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이들은 “창문을 닫고 구조를 기다리던 중 불길이 잦아들어 대피했다”고 말했다.
반면에 이씨 부부 마을 인근에 사는 60대 여성은 대피하지 못했다. 지난 25일 밤 대피 중 승용차가 화염에 휩싸였고, 이튿날 아침 자동차 옆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26일 청송보건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유족들은 “고인은 질환으로 다소 거동이 불편한 남편과 함께 이곳에 살고 있었다”며 “슬하에 딸이 있는데 불과 한 달 전에 결혼한 신혼부부”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번 산불로 경북에서 목숨을 잃은 주민은 대부분 60~80대 고령층이다. 상당수 고령층은 노환이나 질병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고 재난안전문자를 확인하지 못해 제때 대응하지 못한다.
고령의 주민들이 집을 지키려고 떠나지 않다가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대피가 빠르지 못한 노년층 특성을 고려해 보다 신속한 대응이 이뤄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불이 심해진 상황에서 한꺼번에 대피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정체가 빚어진 것도 문제로 꼽힌다. 안동시가 25일 오후 모든 시민에게 대피 명령을 내린 직후 자동차가 일시에 도로로 나오면서 일대는 혼란에 휩싸였다. 불길을 피해 후진하거나 역주행하는 자동차도 많아 도로가 마비됐다.
또 경북북부 지역 특성상 교통이 불편하고 산세가 험하다는 점도 대피가 늦은 이유로 꼽힌다. 사망자 발생 지역이 대부분 농·산촌 마을로, 대피하려면 구불구불한 임도나 국도를 따라 이동하는 수밖에 없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노약자부터 순차적으로 대피해야 혼란을 줄일 수 있다”며 “대피 방송도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이 있고 불길이 어디에 있다는 등의 정보를 전달해야 빠른 대피를 유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영덕·청송·안동=이은지·최종권·손성배, 서지원·박진호·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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