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대피하라’식 재난 안내, 농어촌 노인들 구하지 못했다
사망자 대다수가 60~80대
집 안서 아예 못 나오거나
차량 대피 중 폭발 3명 사망
재난 안내 문자는 무소용
직접 도움 줄 시스템 갖춰야
지난 21일부터 이어진 산불은 어김없이 재난 취약계층인 노인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현재까지 확인된 희생자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이들은 대피 중 사망하기도 했고, 아예 집 안에서 나오지 못한 채 숨지기도 했다. 대형 재난·재해 시 노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피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경찰과 각 지자체에 따르면 경북 북동부로 번진 대형 산불로 인해 사망한 19명 중 대부분이 60~80대 주민들이었다.
이날 오전 11시쯤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한 주택에서 8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남성이 발견된 주택은 산불로 전소된 상태였다. 지난 25일 오후 6시쯤 청송군 파천면 송강2리에서는 80대 여성이 자신의 집 마당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여성은 88세 남편과 함께 인근 초등학교로 긴급대피를 하던 중 불을 피하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25일 밤에는 청송군 청송읍 한 도로 외곽에서 60대 중반 여성이 불탄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같은 날 청송군 진보면 시량리에서는 70대 남성이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긴급대피를 돕기 위해 집을 찾은 마을 이장이 발견했다. 진보면 기곡리에서는 치매가 있는 80대 여성이 실종되기도 했다. 이들은 민가로 번지는 산불을 미처 피하지 못했거나 집을 벗어나던 중 숨진 것으로 보인다. 영덕읍 매정리에서는 요양원 환자 4명을 싣고 피신하던 차량에 불이 붙어 폭발하면서 80대 환자 3명이 사망했다. 경북경찰청 관계자는 “불이 빨리 번지면서 대피를 하지 못한 상황이 많았다”고 말했다.
재난안전 전문가들은 재난·재해 시 발송되는 현행 재난안전 문자는 노인과 장애인 등 이동 약자들에게는 큰 효과가 없다고 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해 ‘사회과학연구’에 발표한 논문에서 “재난의 안내가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 교수는 “안전안내 문자를 보면 노인과 장애인에 대한 지원 관련 내용은 따로 없다. 대피를 도울 인력과 구체적 방법 등은 알려주지 않고, 대부분 각자 힘으로 대피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스로 힘으로 대피하기 힘든 노인들에게 일반적인 내용의 안전안내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도시에 비해 재난에 취약한 농어촌 노인들에 대한 실질적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이재준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조교수는 “재난이 닥쳤을 때 도시 거주 노인들은 농어촌 거주 노인들에 비해 사망 피해가 많지 않다”며 “행정안전부가 농어촌 재난에 대비해 자율방제단을 꾸려 운영하고 있지만 자율방제단조차 대부분 노인들로 구성돼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전안내 문자를 보내고 ‘알아서 대피하라’는 식의 시스템 대신 반드시 누군가 직접 도움을 드리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류인하·백경열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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