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사람을 불구덩이에 내몰 건가…산불대응, 이제는 AI가 답이다 [박용후의 관점]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2025. 3. 2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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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참사, 인력 대응 한계…선진국처럼 드론·무인헬기 등 AI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시사저널=박용후 관점디자이너)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올해 산불은 참사 그 자체였다. 지난 22일부터 경북과 경남, 울산 등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산불은 일주일 가까이 꺼지지 않았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26일 오전 기준, 사망자는 22명, 부상자는 19명에 달한다. 2만7000명이 대피했고, 아직 2만6000여 명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무너진 삶의 터전과 무너진 마음이 남았다.

숨진 이들 대부분은 60대 이상 노인이었다. 경북 영덕에서 7명, 영양 6명, 청송 3명, 안동에서 2명이 목숨을 잃었고, 경남 산청에서는 불을 끄던 진화대원 4명이 순직했다. 산불 연기를 마시고 마당에 쓰러진 채 발견된 70대 여성, 대피 중 차량 근처에서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된 60대 여성. 하나하나가 뉴스 속 숫자가 아닌, 누군가의 가족이고 이웃이었다.

산림과 거주지를 잃은 사람도 많다. 불길은 1만7000헥타르에 달하는 산림을 태웠고, 의성과 안동만 해도 1만5000헥타르가 사라졌다. 주택, 창고, 사찰, 차량, 문화재를 포함해 200여 채 이상의 건물이 전소됐다. 진화율은 여전히 100%에 이르지 못한 지역이 많고, 온양과 언양 등 울산 지역에서는 산불이 현재 진행형이다.

이 같은 대형 산불은 기후위기와 맞물려 이제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그런데 대응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 중심, 인력 중심이다. 유인 헬기가 연기에 갇혀 뜨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은 험한 지형과 거센 불길 속에서 위험을 무릅쓴다. 연기와 야간 시야 부족으로 초동 진화에 실패하면서, 산불은 삽시간에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현장의 소방당국은 입을 모은다. "무인헬기만 있었더라면 달라졌을 것"이라고. 그러나 정작 우리 산불 진화 체계에는 무인헬기 한 대도 없었다. 헬기 내부에 열화상 카메라도 없었고, 실시간 확산 경로를 분석할 수 있는 AI 시스템도 없었다.

30년간 산림청에서 근무한 고기연 한국산불학회 회장도 이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산불이 대형화되는 근본 원인은 숲에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로 인해 작은 불씨 하나로도 쉽게 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는 위험한 환경"이라고 분석하면서, "시계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유인 헬기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안으로 무인헬기와 드론, 인공지능 기반의 대응 시스템을 제안했다. "혁신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구조적 개혁 요청이다.

해외는 이미 다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드론과 AI 시스템을 산불 대응에 전면 도입하고 있다. AI는 1000개 이상의 카메라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해 산불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며, 드론과 소방 자원을 신속히 배치한다. 산불 발생 시 드론이 먼저 현장으로 날아가 열화상 카메라로 불길의 위치를 파악한다. 이 데이터는 AI가 분석해 진화 자원의 최적 분배와 투입 시점을 설계한다. 드론은 낮뿐 아니라 밤, 연기 속에서도 작동할 수 있어 기상 제약도 훨씬 덜하다.

호주는 무인헬기 '파이어버드(Firebird)'를 야간 산불 진화에 투입한다. 이 헬기는 GPS 기반 자동비행, 원격 소화제 투하 기능을 갖추고 있어, 험한 지형이나 야간에도 인명 피해 없이 작전 수행이 가능하다. 위험한 지역에 사람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2020년 대형 산불 당시 이 시스템은 인명 피해 없이 광범위한 지역의 진화를 수행했다.

캐나다는 드론을 산불 예방 단계에서부터 활용한다. 드론으로 수집한 기후, 식생, 지형 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산불 발생 위험지도'를 제작하고, 고위험 지역에 선제적인 간벌 작업이나 출입 통제를 실시한다. 사전 대응이 이뤄지기 때문에 산불이 대형화되기 전에 차단할 수 있다.

한국은 어떤가. 드론 몇 대를 시범적으로 운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고, 무인헬기는 단 한 대도 없다. 예산 타당성, 운용 인력 부족, 제도 미비 등의 이유로 실질적인 체계 구축은 수년째 지체되고 있다. 하지만 매년 되풀이되는 수천억 원대의 피해와 인명 손실을 고려하면, 무인 시스템 도입은 비용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투자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무인 시스템이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지키기 위해 먼저 나서야 한다. 드론과 무인헬기는 산불의 예방, 초기 탐지, 실시간 감시, 정밀 진화까지 전 단계에서 활용될 수 있다. 여기에 AI 기반의 통합 지휘 시스템까지 더해지면, 산불 대응력은 획기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정부는 이번 참사에 대해 재난사태를 선포하고 피해 주민들에게 응급 구호품과 심리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이 모든 지원의 전제는 '산불을 막지 못한 뒤'다. 더 중요한 건, 이 고통을 다시 반복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많은 희생을 치렀다. 무인 시스템 도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안전의 문제다. 산불은 자연재해지만, 그 대응은 인간의 의지와 시스템에 달려 있다. 언제까지 불구덩이에 무작정 사람을 밀어 넣을 것인가? 더는 사람만 앞세우지 말자. 이제는 기술이 앞장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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