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중간이 없어" 엔믹스가 보여준 '믹스팝'의 뚝심

김상화 2025. 3. 2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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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믹스토피아 향한 3부작 마무리 'Fe3O4: FORWARD' 발표

[김상화 칼럼니스트]

 엔믹스 (NMIXX)
ⓒ JYP엔터테인먼트
하루가 멀다 하고 새 노래, 새 그룹이 속속 등장하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조금이라도 남들과는 다른 색깔을 마련하기 위해 저마다 각양각색의 방식을 동원하는 건 제일 기본적인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주 17일 새 미니 음반 < Fe3O4: FORWARD >(에프이쓰리오포: 포워드)와 머릿곡 'Know About Me'(노 어바웃 미)를 발표한 6인조 걸그룹 엔믹스(NMIXX, 해원·릴리·배이·설윤·지우·규진) 역시 마찬가지다.

2022년 데뷔와 동시에 이른바 '믹스팝(MIX POP)'이라는 장르 이종교배를 시도하면서 엔믹스는 다채로운 음악적 실험을 단행한 바 있다. 무대 밖에선 'JYP 공채 개그맨 1기'(?)라는 애칭에 걸맞는 예능감 넘치는 발랄한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화려한 조명과 백업 밴드를 등에 업는 순간 재기 발랄한 6인조는 마치 언제 그랬나는 듯 180도 변신을 이뤄낸다.

국내외 각종 공연을 통해 구멍 없는 보컬 실력과 더불어 화려한 댄스 퍼포먼스, 그리고 독특한 질감의 음악을 선보였던 엔믹스는 비로소 제 몸에 맞는 옷을 찾아냈다. 선공개 싱글 'High Horse'(하이 호스)와 'Know About Me'는 몇 년 사이 발표된 케이팝 음악 중 단연 발군의 완성도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선공개곡 'High Horse'의 파격
 엔믹스 Fe3O4: FORWARD Story Film Part2'의 한 장면
ⓒ JYP엔터테인먼트
JYP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소개된 < Fe3O4: FORWARD >의 'Short Film' 영상들은 마치 SF 단편 영화를 방불케하는 시각적 화려함과 블록버스터급 방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 Fe3O4 >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번 작품은 현실세계('Field')에 머무르던 소녀들이 직접 유토피아를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믹스토피아'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떠나기 위한 기나긴 여정의 마무리로 꾸며졌다.

크리스토퍼 놀란 혹은 스탠리 큐브릭 영화에서나 볼 법한 웅장한 규모의 세계관을 녹여내면서 엔믹스는 그간의 창작 기법에서 살짝 벗어난 형식을 취하고 있다. 피아노 반주와 거친 질감의 드럼 비트, 그리고 어쿠스틱 콘트라 베이스를 중심 삼아 서정성과 몽환적인 분위기를 섞어 놓은 'High Horse'는 해외 유수의 팝 스타가 불렀어도 결코 어색하지 않을 만큼 서구 세계의 느낌을 물씬 뿜어낸다.

여기에 덧붙여진 안무는 기존 엔믹스뿐만 아니라 케이팝 그룹의 퍼포먼스에선 보기 드문, 마치 현대무용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키며 오감을 압도한다. 그동안 '보컬 차력쇼'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폭발력 넘치는 가창력을 자랑하는 이들이지만 이 곡에서만큼은 훨씬 풍부한 감정선을 녹여내는 방식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표현으로 우리들의 귀를 사로 잡는다.

제 방향 찾아낸 엔믹스표 믹스팝
 엔믹스 'Know About Me'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JYP엔터테인먼트
뒤이어 등장하는 'Know About Me'는 이번 음반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멤버들의 언급처럼 무심한 듯 내뱉는 목소리로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다가도 어느 순간 공격적인 랩과 보컬로 변화를 도모한다. 이전처럼 전혀 다른 장르의 악곡 2-3개를 결합시키는 방식에서 살짝 벗어난 형식이지만 이를 통해 훨씬 풍부한 울림을 선사한다.

이 과정에서 이뤄지는 무대 댄스 퍼포먼스에선 더욱 정교한 연출로 눈길을 모은다. 저마다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지면서도 어느 순간 연꽃을 연상케하는 집단을 이루는 등 난이도 높기로 유명한 엔믹스 안무의 정점을 보여준다.

< Fe3O4: FORWARD >의 뒷부분을 책임진 트랙 역시 개성 넘치는 매력을 뽐내면서 듣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세번째 노래 'Slingshot (<★)'은 독특한 제목 표기와 더불어 수시로 이뤄지는 조바꿈, 묘하게 엇갈리는 멤버들의 코러스가 정반합의 실험을 유기적으로 이끌어낸다. 현악기 샘플링을 적극 사용한 'Golden Recipe' 역시 마찬가지다. 정교하게 설계된 프로덕션에 힘입어 엔믹스 표 믹스팝은 비로소 제 방향을 찾아낸 것이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뚝심의 6인조
 엔믹스의 새 음반 'Fe3O4: FORWARD' 표지
ⓒ JYP엔터테인먼트
기계의 힘을 빌려 잘개 쪼갠 보컬 하모니를 인트로에 장식한 'Papillon', 차분한 감성을 한 스푼 얹어 놓은 'Ocean'을 끝으로 이들의 기나긴 믹스토피아행 항해는 마무리 된다. 때론 힙합 래퍼가 됐다가 어느 순간 '중창단'이 되기도 하는 엔믹스의 카멜레온적인 다채로운 능력은 6곡의 트랙을 한껏 풍성하게 완성시켰다.

평이한 멜로디 부터 해석하기 쉽지 않은 복잡하고 고음역 가득찬 노래 상관없이 엔믹스는 탁월한 기량을 바탕으로 그동안 만나왔던 장애물을 슬기롭게 뛰어 넘어왂왔다. 음원 순위라는 대중적인 반응 수치에선 살짝 아쉬움을 드러내곤 했지만 'DASH', 'Sonar', '별별별', 'Beat Beat' , 'Love is Lonley'등으로 이어진 < Fe3O4 >의 험난했던 실험은 이번 음반을 통해 비로소 의미있는 마침표를 찍어 냈다.

"우린 중간이 없어 Well done or rare / 마구 세상을 휘저어 두 팔은 Hurricane"('Golden Recipe')라는 노랫말처럼 엔믹스의 음악은 중간 지점이 없이 "모 아니면 도"에 가까운 무모함이 때론 감지되곤 했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다는 뚝심은 자칫 위태로운 자만심처럼 비춰질 수도 있었지만 이들은 그러한 시선에 전혀 아랑곳 없이 '믹스팝 장인'의 외길 행보를 이어갔다. 이쯤되면 뚝심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아직 2025년이 끝나려면 9개월 여의 기간이 남았지만 < Fe3O4: FORWARD >는 단언컨대 올해 케이팝이 낳은 화려한 열매 중 하나로 손꼽아도 결코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믹스토피아를 앞세운 독특한 세계관의 완성과 더불어 악곡·퍼포먼스의 경이로운 조화는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한 엔믹스만의 결실이다. 과거 비틀즈에게 < 페퍼 상사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 비치 보이스에겐 < Pet Sounds >라는 명반이자 '훈장'이 존재했던 것처럼 겁 없는 6인조의 'High Horse', 'Know About Me'는 이에 견줄 만한 자랑스러운 작품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상화 칼럼니스트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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