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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승부>는 조금 지나간 이야기를 다룬다. 조훈현과 이창호. 한국의 전설적인 바둑 기사들의 대결. 위대한 스토리지만 실은 흘러간 이야기다.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둑이라는 소재의 특성 때문이다. 이제 바둑은 더 이상 성인들의 국민 스포츠, 아이들의 필수 교양이 아니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 AI가 바둑을 제패했다는 인식이 생기며 그 신비감은 더욱 줄어들었다. 그로부터 9년이 더 흘렀다. 이런 때에 <승부>는 왜 하필, 바둑을 들고 우리를 찾아왔을까.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승부>는 사실 바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니까. 바둑을 매개로 서사를 이끌어 가지만, 이 영화가 진짜로 전하고픈 메시지는 따로 있다. 그에 관해 말해보려 한다. 아래부터 <승부>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다.
영화는 두 남자로부터 시작한다. 조훈현(이병헌)과 이창호(유아인)다. 초반에 영화는 거대한 스승과 천재 제자에게 관심을 둔다. 재능이 충만한 아이와 엄격한 스승. 전형적인 신동의 성장스토리다. 하지만 이창호가 제법 컸을 때, 서사는 꿈틀대며 변모한다. 제자를 위하는 마음에 자기 방식을 다그치는 조훈현과, 조용히 대치하며 자기 만의 기법을 완성하는 이창호. 스타일 혹은 정체성이 충돌한다. 결국 이창호는 스승으로부터 독립하며 자기만의 바둑을 손에 쥔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승부'의 막이 오른다.
이 영화는 바둑의 기보나 명승부를 복기하는 일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일을 설명하는 데 무심하다. 대신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판 주변에 둘러앉은 인간들이다. 이창호에게 조훈현과의 승부란 여태 자신을 가르친 스승, 그리고 그와 함께 한 시간과 대결하는 일이다. 조훈현에게 승부는 직접 길러낸 제자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이것이 쉬울 리 없다. 바로 이 순간 카메라는 홀연히 등장해 그들 사이를 파고든다.
이 둘의 대결은 이세돌이 알파고와 펼쳤던 경기와 비교해 보면 더 분명하게 와닿는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대상으로 했던 것은 수 싸움이다. 그것이 빛나는 기술의 퍼포먼스다. 하지만 조훈현과 이창호의 대결은 차라리 난타전에 가까우며, 땀이 뚝뚝 떨어지는 육체의 활동이다.
이들이 치르는 '경기'를 기억해 보자. 조훈현은 노래를 부르거나 다리를 떨고 담배 연기를 쉴 새 없이 내뿜는다. 거기에 이창호는 특유의 무덤덤한 얼굴로 고요히 응수한다. 아무리 뛰어나다 하여도 AI는 절대 제공할 수 없는 이런 경험이야말로 둘의 경기를 구성하는 핵심이다.
이들의 승부 또한 마찬가지다. 그것은 단순히 누가 이기고 지느냐의 문제를 넘어선다. 방금 맞붙었던 스승과 제자의 어색한 식사. 방 안에 흐르는 정적. 패배한 스승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떨림. 이기고도 웃지 못하는 제자의 굳은 표정. 지나가는 사람의 빈정거림. 결국 헤어지는 스승과 제자.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들 간의 이별. 이 모든 과정이 바로 조훈현과 이창호의 '승부'다. 그들은 한 판의 바둑을 넘어, 둘을 둘러싼 모든 시간과 관계를 내걸고 뜨겁게 맞붙고 있다.
여기에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차가운 대결에는 없는 끈적하고 뜨끈뜨끈한 숨결이 가득하다. 알파고가 걸어오는 싸움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총알과 같다면, 조훈현과 이창호의 대결은 눈앞에서 상대의 일그러지는 표정과 피 냄새 섞인 입김까지 공유하며, 때로 끌어안으며 또 쓰러지며 이어가는 복싱이다. 이토록 덜컥대고 불편하며 눈물겨운 활동이 바로 이 영화가 포착하는 '승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왜 하필 지금, 바둑인가? 사실 이건 어리석은 질문이다. 바둑의 시대에서 출발해 오늘까지 이어지는 어떤 반짝임을 <승부>는 포착하니 말이다. 스승과 제자의 대결.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으나 언젠가 필연적으로 맞게 되는 그 순간. 냉정을 유지하기 힘든 이 싸움에는 마치 보드라운 맨살처럼 예민하고 투명하게 드러나는 감정과 반응이 있다. 이 모든 순간을 끌어안은 것이야말로 바로 '승부'라고, AI의 시대에 개봉한 어느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