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오늘 뉴스를 보고 한 가지 소스를 얻고 싶으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테슬라 주식 사세요. [일론 머스크 같은] 천재가 운영하는 회사 주가가 이렇게 싸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지금 같은 저점은 매수의 적기 중 적기예요.
증시를 꼼꼼히 살펴보며 투자할 만한 종목을 추천하는 주식 관련 방송이나 유튜브 채널에서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말입니다. 누구나 투자에 관한 견해는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저 말은 놀랍게도 지난 19일, 폭스 저녁 뉴스에 출연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이 방송 중에 한 말입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특정 기업의 주식을 콕 집어 사라고 부추기는 장관이 있었는지 과거 사례를 한참 뒤져도 찾기 어렵지만, 어쨌든 기존의 관행과 규정에 비춰보면 당장 백악관의 정부윤리국이 러트닉 장관을 조사해 징계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실언이자, (알고도 개의치 않고 한 거라면) 망언이었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Mpk23iV7Tz0 ]
전문가들은 러트닉 장관이 1989년에 제정된 "연방 공무원은 사적 이익을 위해 공직을 이용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 https://apnews.com/article/musk-trump-tesla-stock-lutnick-commerce-secretary-ethics-5a89c2f4a68a9470692630b5c56cffd6 ]규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지금 백악관 정부윤리국장 자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고한 뒤 계속 공석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각 부처의 업무가 정당한 절차를 지켰는지, 비위 사실은 없는지 감독하는 감찰관들도 일제히 해고해 버렸습니다.
[ https://www.ecfr.gov/current/title-5/chapter-XVI/subchapter-B/part-2635/subpart-G/section-2635.702 ]
러트닉 장관이 논란이 일 것을 알고도 저 말을 했다면, 그는 하루 앞서 자기 상사인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마찬가지로 매우 이례적인 행동에서 용기를 얻었을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최근 테슬라를 향한 비판과 보이콧을 "미치광이 좌파들의 선동"이라고 규정하고, 자신이 앞장서서 테슬라를 지지한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빨간색 모델S를 백악관 앞뜰에 세워놓고 머스크와 나란히 서서 테슬라를 향해 칭찬을 늘어놓았습니다. 지난 주말 장외거래에서 테슬라 주가는 다시 어느 정도 최근 낙폭을 만회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러트닉 장관의 '테슬라 지킴이 쇼케이스'는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테슬라 브랜드가 특정 진영의 전유물로 완전히 엮이면서 주가가 더 떨어지는
[ https://www.axios.com/2025/03/13/tesla-trump-white-house-musk ]역효과만 났습니다.
[ https://apnews.com/article/tesla-stock-musk-trump-evs-sales-b3118cbab69fbfaa3abcceb059ba8c58 ]
일론 머스크가 짧게는 지난 선거부터, 길게는 트위터(현 X)를 인수하면서부터 정치에 너무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고, 이것이 테슬라를 비롯해 머스크가 창업했거나 경영하고 있는 기업의 이미지뿐 아니라 실적과 미래 재무제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란 우려의 목소리는 예전부터 나왔습니다. 실제로 테슬라의 주가는 최근 들어 실적 부진에 경영자 머스크에 대한 우려가 겹쳐 계속 내림세입니다. 물론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에게 "올인"했던 머스크의 도박이 트럼프의 당선으로 성공하면서 급등했던 주가가 다시 선거 전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올해 들어 테슬라 주가는 역대 최장기간인 9주 연속 하락하면서 40% 이상 하락했고, 시가총액도 5,360억 달러나 증발했습니다.
테슬라 주주 중에는 창업자 일론 머스크의 혁신적인 비전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팬들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머스크는 트럼프 행정부 들어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겸하면서 정치에 깊숙이 개입해 매우 극단적으로 한쪽 편을 들며 자기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짓밟고 처단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규제 철폐를 외치며 정부 기관에서 오랫동안 일한 공무원들을 무턱대고 대량 해고했다가 부랴부랴 철회하는 어설픈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정부효율부는 아직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했고, 보수 진영 정치 행사 CPAC(보수정치행동회의)에서는 전기톱을 휘두르고, 나치식 거수경례를 하는 등 선을 넘는 일도 잇따랐습니다. 결국, 테슬라 주주 가운데 열렬한 팬층이 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테슬라 주식을 팔아치우며 머스크와 "손절"한 주주들은 "회사 운영보다 정치에 더 몰두하는 CEO의 모습에 회사의 장래가 어둡다"고 판단했고, "테슬라의 브랜드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다"고 진단했습니다.
[ https://www.wsj.com/finance/stocks/tesla-stock-selling-musk-politics-f144dbe5 ]
여기에 테슬라의 구조적인 문제도 곳곳에서 불거지면서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의 판매 실적 부진을 그저 CEO가 정치에 빠져 있어서 그렇다고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테슬라는 최근 주행 중 차체의 외장이 떨어질 수 있다며 사이버트럭 4만 6,096대를 리콜했고, 그러는 사이 중국의 경쟁사
[ https://premium.sbs.co.kr/article/ZJkvAHT-Tx ]비야디(BYD)는 5분 만에 충전을 완료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출시했습니다. 경쟁이 계속 심화하면서 테슬라가 굳건히 지켜온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최고의 전기차"라는 타이틀도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의 아이콘과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트럼프와 힘을 합쳐 규제를 철폐하겠다며 시장의 룰 자체를 자기한테 유리하게 비틀려고 무리수를 두는 머스크의 모습을 바라보는 우려가 주가에 반영되고 있는 겁니다.
[ https://insideevs.com/features/754248/byd-cadillac-podcast-plugged-in-16/ ]
일론 머스크가 문제를 자초하고 더 키운 건 테슬라뿐만이 아닙니다. 항공우주 분야 탐사보도 전문기자 클라이브 어빙이 쓴 칼럼을 보면, 스페이스X도 기술력과 탄탄한 개발, 공정 계획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머스크의 개인적인 카리스마에 기대 사업을 마구 확장해 왔습니다. 어빙은 이런 식으로 쌓은 모래성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합니다.
어빙의 칼럼에서도 인용한 워싱턴포스트의 기사에 따르면, 스페이스X나 테슬라 등 머스크의 기업들은 정부 지원금 없이는 여기까지 성장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지금도 많은 부문에서 정부 조달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수주해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규모를 다 합하면 380억 달러에 이릅니다.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며 규제 당국의 손발을 마구 잘라내는 머스크의 행보는 결국, 자기한테 유리하게 시장의 규칙 자체를 뒤틀려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이해충돌 문제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는 거죠. 게다가 상원의 인사 검증을 거친 정식 장관도 아니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전폭적인 비호를 받으며 상왕 노릇을 하는 머스크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자신을 향한 비판을 깨부수는 데 열중하고 있습니다. 순전히 자기가 잘나고 똑똑해서 테슬라가 성공한 게 아님에도 자신의 영웅적인 혜안과 결단력이 성공의 비결이었다는 서사를 진심으로 믿게 된 머스크가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여기까지 키워준 정부를 산산조각 내려 하는 통에 시장 자체도 커다란 혼란에 빠졌습니다.
[ https://www.washingtonpost.com/technology/interactive/2025/elon-musk-business-government-contracts-fun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