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발자취 따라 함께 걸어요"...5000여명 몰려 성황
남산 백범광장서 '코리아 메모리얼 로드' 출범식
광복 80주년, 8.15㎞ 코스 거북이마라톤
"독립선언서 읽고 뭉클"… "보훈이 국민 통합 마중물 되길"
"봄맞이 운동 좀 하자는 엄마의 제안에 세 식구가 아침부터 남산에 나왔어요. 걷기 딱 좋은 날씨 덕에 기분도 상쾌하고, 평소 책으로만 공부하던 조국 독립의 역사를 직접 순례길을 걸으며 되새길 수 있다니 뿌듯한 마음까지 듭니다."(참가자 박정민씨)
23일 오전 8시 30분 서울 중구 남산 백범광장에서 국가보훈부와 한국일보가 공동 주최한 '광복 80 코리아 메모리얼 로드 인 서울' 출범식 겸 제489회 거북이마라톤이 열렸다.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포근한 날씨 속에 백범광장은 5,000명이 넘는 참가자로 성황을 이뤘다. 올해 재수를 결심했다는 참가자 박정민(19)씨는 '실패가 아닌 새출발'이란 긍정회로를 가동 중이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잊혀 가는 보훈을 일상에 접목시켜 탄생한 보훈 순례길 '코리아 메모리얼 로드'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딛고 올해 본격 부활한 '한국일보 거북이마라톤'과 닮은꼴이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은 이날 기념사에서 국민 모두가 보훈의 주인공이 되자고 강조했다. 강 장관은 "이제는 우리가 나라를 사랑할 때"라며 "여러분의 걸음걸음이 보훈의 의미를 이해하고,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고, 이성철 한국일보 사장은 "남산이 품고 있는 독립의 역사적 장소들을 걷는 이날 행사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역사순례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3·1운동, 6·10만세운동, 광복절 의미하는 3개 코스
코리아 메모리얼 로드는 보훈부가 광복 80주년을 맞아 전국에 흩어진 독립·호국·민주 등 보훈 사적지를 국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마련한 순례길이다. 이날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거북이마라톤이 진행된 '서울 3길'에서는 김구 선생·이시영 선생·유관순 열사·이준 열사 동상과 옛 조선총독부 터, 안중근 의사 기념관, 3·1독립운동기념탑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이날은 3·1운동, 6·10만세운동, 광복절을 각각 의미하는 3.1㎞, 6.1㎞, 8.15㎞ 길이의 3개 코스가 마련돼 각자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참가자들 중에서도,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유독 많았다. 정길훈(41)씨는 김구 선생 동상 앞에서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딸에게 "만약 우리나라가 독립하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라고 물으며 광복의 의미를 친절히 설명해 줬다. 정씨는 "나 스스로도 코스 소개를 보면서, 잘 몰랐던 6·10만세운동을 다시 한번 공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30세대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전문 동호인 못지않은 러닝 복장을 갖춰 입은 이들부터, 가벼운 산책 차림으로 나선 이들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코리아 메모리얼 로드가 트레킹, 러닝 등을 즐기는 젊은 세대에 맞춤형 보훈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특히 이번 행사는 청년들의 기부·봉사문화와 연계해 MZ세대 봉사단체인 '연봉인상(연마다 봉사를 늘린다)'을 통해서도 참가 신청을 받았는데, 이 단체를 통해 참가를 신청한 약 1,200명 중 80%가 2030세대라고 한다.
'걸음마다 기부' 해피 핏 캠페인, 목표 초과 달성
그중 한 명인 이윤정(34)씨는 "걸음 수만큼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기부할 수 있는 행사라고 해서 참가하게 됐다"며 "평소 자주 남산을 산책하면서도 독립의 역사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오늘 이후론 여기에 올 때마다 독립 사적지를 둘러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보훈부와 함께하는 '해피 핏(HAPPY FEET) 캠페인'에는 이날 오후 6시 기준 8,967명이 참여해 총 3조2,624만5,506걸음을 기부했다. 3·1절과 광복절의 의미를 담아 3억1,000만 원을 기부하는 조건으로 설정한 1조9,458만1,500걸음을 훌쩍 뛰어넘은 성과다. 이 기부금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주거환경 개선에 쓰일 예정이다.
스스로 '아이돌 최초 한국사능력검정시험 3급 보유자'라고 밝힌 걸그룹 출신 전효성씨도 보훈부 초청으로 행사에 참여했다. 전씨는 "누구나 부담 없이 보훈의 가치와 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뜻깊은 행사였다"며 "3·1운동기념탑에 새겨진 독립선언서를 읽어 보니 새삼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보훈이 국민 통합 마중물 되길"
오랫동안 기다렸던 거북이마라톤의 새출발을 반기는 참가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 28년 전 일곱 살 아들을 무등 태우고 거북이마라톤을 완주했던 장상윤(64)씨는 올해 손자까지 3대가 총출동했다. 아들 재형(35)씨가 손자 광현(6)군을 무등 태운 게 달라진 모습이다. 장씨는 "작은아버지가 월남전에서 전사했고, 장인어른은 6·25전쟁 참전용사, 저와 큰 아들은 해군 장교"라며 "보훈 가족으로서 이런 뜻깊은 행사가 좀 더 일상에 스며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군인 가족인 유성수(74)씨는 "요즘처럼 두 쪽으로 갈라진 사회에서 보훈의 가치가 국민 통합의 마중물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다.
보훈부는 이날의 첫걸음을, 전국을 넘어 전 세계로 이어가려는 큰 포부도 품고 있다. '코리아 메모리얼 로드 인 프랑스'처럼 K보훈의 발자취를 지구촌 곳곳에 남기는 대형 프로젝트다. 강 장관은 "우리는 독립·호국·민주를 망라한 보훈 정책을 가진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라며 "모든 국민이 마음을 모은다면 K보훈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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