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조 美 조선시장 열리는데…한국은 집안싸움
[편집자주] 트럼프 2기 출범, AI의 발달, 기후변화 등 글로벌 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매주 일요일 오전, 깊이 있는 시각과 예리한 분석으로 불확실성 커진 세상을 헤쳐나갈 지혜를 전달합니다.
이미 양사 갈등으로 알토란 같은 수주 기회를 놓쳐버린 사례도 등장했다. 지난해 10조원 규모 호주 호위함 사업이 대표적인데 경쟁국인 독일과 일본은 원팀을 구성했지만 우리 업체들은 독자 입찰에 나섰다. 이들이 원팀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앞서 한국형 구축함 사업 수주 경쟁에서 고소고발전까지 벌이며 감정의 골이 깊어진 탓이다. 양사는 각자 가성비를 내세우며 수주를 자신했지만 호주 정부의 요구사항을 파악하는데 실패했고 결국 독일과 일본이 최종 후보로 선정됐다.
폴란드 정부가 3척의 재래식 잠수함을 도입하기 위해 지난해 시작한 '오르카 프로젝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방산 기업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수주에 참여했다. 반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독자 행동을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폴란드 정부는 두 업체의 과열 경쟁으로 계약 불이행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우리 정부에게 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양사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폴란드 정부는 오는 9월께 최종사업자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우리 업체의 수주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미국 함정 건조의 가장 큰 장애물인 법률 규제가 완화될 조짐이어서 한국 조선사들의 사업 참여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는 평가다. 그동안 미국은 자국 조선업 보호하기 위해 '반스-톨레프슨 수정법'에 근거해 군함을 자국 조선소에서만 건조하도록 했다. 그러나 지난달 초 미 공화당 마이크 리 의원 등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회원국이나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국가에서도 미 군함 건조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과 '해양경비대 준비태세 보장법'을 발의했다. 현재 미 군함을 건조할 능력을 갖춘 동맹국은 한국과 일본이 유일하다.
함정 건조 외에도 미 군함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에 대한 기대 역시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정보 분석 기관 비즈윗에 따르면 전세계 함정 MRO 시장은 2030년 705억달러(약 100조원)로 커질 전망이며, 특히 미 해군은 139억달러(약 20조원)에 달한다.
미 해군 선박 건조와 MRO 사업에 있어서 한화오션은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한화오션이 사상 처음 미 해군 군수지원함 '윌리 시라'호에 대한 정비 사업(MRO)을 완료했고 지난해 11월에는 7함대 소속 '유콘' 호의 정기수리사업도 수주해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조선소' 인수에 이어 최근엔 미 해군 4대 공급업체인 호주 기업 '오스탈'에 대한 지분 인수를 마치면서 미 해군 함정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도 지난 7월 미국 해군 보급체계 사령부와 함정 정비 협약(MSRA)을 체결함으로써 미 해군 MRO 사업에 참여할 자격을 확보한 상태다.
양사는 지난 2월 방위사업청의 중재 하에 '함정 수출 사업 원팀 구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수출 사업에선 정부 주도 하에 원팀을 구성하되 각 사의 경쟁력을 고려해 수상함은 HD현대중공업이, 잠수함은 한화오션이 주관한다는 내용이다. 만약 원팀으로 잠수함 10척의 수주를 받는다면 주관업체가 6척, 지원업체가 4척을 각각 맡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양측이 맺은 MOU가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서로 다른 설계 기술과 공급망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최종 납품 모델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민간 기업의 사안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기도 어렵다.
전문가들은 역대급 시장이 열리는데 양사가 지나친 라이벌 의식으로 서로의 발목을 붙잡는다면 장기적인 성장이 저해될 거라고 지적한다. 방산 시장의 특성상 정부의 정책적, 외교적 지원이 없이는 사업 추진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부가 양사의 분쟁을 중재할 명분은 충분하다는 게 중론이다. 최근 방산시장의 국제적 트렌드는 대규모 발주 프로젝트에 대비해 국가의 역량을 하나의 수출 연합체로 집결시키는 추세다. 원팀 구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태평양 함대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변화는 100년 만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김동규 시사문예지 편집장은 "미 군함시장은 한국 조선업체에 놓칠 수 없는 찬스"라며 "정부가 수출에 필수적인 파이낸싱 등의 수단을 적극 활용해 업체 간 갈등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성근 전문위원 박준식 기자 win047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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