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꼭 매출 내야 하는데”… 발등에 불 떨어진 기술특례 상장사들
매출 조건 유예 끝나자… 사업 추가·흡수합병 잇따라
면역항암 물질을 개발하는 코스닥 상장사 메드팩토는 다가오는 정기 주주총회에 정관 변경 안을 상정했다. 사업 목적에 전자상거래업과 통신판매업을 추가하는 내용이다.
메드팩토가 기존 신약 개발과 거리가 먼 사업에 나선 이유로 기술특례 상장사라는 점이 꼽힌다. 기술특례 상장 후 5년 동안은 상장사 매출액 요건을 유예받는데 지난해 이 기간이 끝났다. 올해부터는 연간 3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야 관리종목으로 지정되지 않는다.
메드팩토는 상장 후 지금까지 매출이 올린 적이 없다. 신약 개발로 단기간에 매출을 올리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대안이 필요했던 셈이다.
5년 전 바이오 열풍을 타고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기술특례 상장사들이 관리종목 지정을 피하고자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동안 매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도 코스닥시장 상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 연간 3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야 상장을 유지할 수 있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신규 기술특례 상장사는 2018년 처음으로 20개를 넘어선 뒤 2019년 21개 → 2020년 25개 → 2021년 31개로 늘었다. 이 가운데 2020년 상장한 기업은 지난해로 관리종목 유예 혜택이 끝났다.
기술특례 상장은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해도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상장 기준을 완화해 주는 제도다. 연구·개발(R&D)로 필요한 돈은 많지만, 당장 성과를 내기 어려웠던 바이오 기업들이 이 제도로 대거 주식시장에 진입했다. 기술특례 방식으로 2020년 상장한 25개 기업 중 16개가 바이오 기업이었다.
그런데 상장 이후 5년이 지나도 매출을 내지 못하는 기업이 상당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술특례 상장사들은 주주총회를 앞두고 정관을 변경해 신사업을 추가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새로 진출하는 분야는 주로 화장품·건강식품·유통업 등으로, 비교적 단기간 내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이다.
항암면역치료제를 개발하는 박셀바이오 역시 주주총회에서 건강식품과 화장품 기구 도매업에 나서기 위해 정관을 변경할 예정이다. 박셀바이오의 지난해 연 매출액은 19억원으로, 30억원을 밑돌았다.
빠르게 매출을 늘리기 위해 인수합병(M&A)에 나서는 사례도 있다.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티움바이오는 지난해 말 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인 페트라온을 흡수합병했다. 페트라온의 2023년 매출액은 44억원이다. 이번 합병을 통해 티움바이오는 즉각 매출 규모를 키울 수 있다.
아울러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사들은 매출액 요건(5년)뿐만 아니라 손실 요건(3년)도 면제받게 돼 있다. 사실상 올해 매출액 요건 면제가 종료되는 기업들은 2023년부터 이미 손실 요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여기서 말하는 손실요건이란, 최근 3년간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 비중이 자본 대비 50%를 두 번 이상 넘게 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는 것을 말한다.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후 이 사유가 해소되지 않으면 상장폐지로 이어질 수 있다.
올해 매출액을 30억원까지 올려야 하는 기업 중 이미 손실 요건을 지키지 못해 거래소로부터 관리 종목 지정 우려를 받은 기업들도 있다. 에스씨엠생명과학과 카이노스메드는 거래소로부터 관리종목 지정 우려를 받은 상태다. 이달 말까지 제출해야 하는 감사보고서를 통해 이 사실이 확정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관리종목에 지정될 가능성이 커지자 두 기업 모두 이달 유상증자 카드를 내놓았다.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을 확충하면 손실 비율을 낮출 수 있다. 다만 주가 하락세를 반전시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상증자 납입이 미뤄지는 등 자금 조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술특례 상장사가 꾸준히 늘어온 만큼 매년 매출 증대와 법차손 개선을 위한 상장사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질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술특례 상장 기업에 투자할 때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갑작스러운 사업 발표나 자본 조달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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